자의 소개
'自' 자.
'스스로 自'가 만들어진 이야기.
자신을 습관적으로 가리킬 때 코를 가리킨다고 해서 코 모양이 상형 변형되어 만들어졌다는 '自'.
자신을 가리킬 때 한 번도 코를 가리킨 적은 없으나 코 모양이 보이는지 가만 눈여겨보아 지게 된다.
'스스로'라는 의지적이고 능동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말이라서 그런지 한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자이다.
누군가 한 번씩 경험해 본 적 있을 것이다. 곤혹스럽기까지 한 남 앞에서의 자기소개. 그럴 때마다 짧은 순간 갈등을 하곤 했다. 주어진 짧은 순간에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말이다. 한 번쯤은 판에 박힌 짜인 말이 아닌, 정리 안되어 혹은 횡설수설한 말 일지라도, 나도 나를 모르는 '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 타인을 얘기하듯 당신에 대해 관찰자 시점으로 조금은 낯선 자를 얘기하고 싶다.
이제 '자'에 대해 들여다보자.
'자'는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 불혹의 시대를 지나 하늘의 뜻 마저 알게 된다는 '지천명' 50의 시대를 코 앞에 두고 있다. 제법 그럴싸하다.
늘 그럴싸해 보이고 싶었다.
타인의 눈이 50 인생을 지배했다. 스스로 나아가야 할 자는 타인이 알려주는 길을 이탈하지 않고 그대로 나아가려고 위태롭게 선을 밟으며 걸어간다. 선을 넘는 순간이 타인의 눈에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 전전긍긍 하면서 말이다. 타인의 길을 알지도 못하면서 내길인양 걸어간다.
미혹되고 싶지 않았으나 바람 앞에 갈대 마냥 타인의 작은 입김에도 이리저리 흔들렸던 자.
자력의 힘으로 꿋꿋하게 버티는 것으로 착각했으나, 결국 누군가의 힘이 아니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던 자.
지나치리 만큼 작은 것에 감정 소모가 많았다. 타인을 의존했으나 타인을 믿지는 못했던 자였다. 뜬금없는 변덕과 불신으로 가만히 있는 타인을 오해하는 묘한 재주가 있던 자는 '신뢰'라는 바탕의 인간관계를 제대로 쌓지 못했다.
내감정을 들여다 본적이 없어 남의 감정을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
그런 자에겐 손으로 살짝만 쥐고 비틀면 바싹 마른 낙엽처럼 바사삭 소리내며 소스라칠 만큼 메마른 건조함만이 있었다.
감정 없이 바싹 마른 건조함의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며 온통 자의 마음엔 하얀 각질들이 떨어져 그자리에 염증을 만들었다. 곪아 터져서야 마음이 참 아프다는걸 알게 되었다. 터뜨리거나 도려내지 않으면 아니 되는데 방법을 알지 못한다.
어느새 자는 아픔을 숨기기 위해 냉소적인 인간이 되었고, 타인을 이유없이 미워하고 조금이라도 내감정에 흠질 내는 이에게 공격적이고 방어적이게 되었다.
내가 아는 자는 내가 모르는 부조리한 자이다.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그리도 지나쳤던 감정의 소모가 어느 날부터인가 '쫙' 하고 심연의 마음속에 가라앉는 거였다.
가라앉는 기분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청소기가 시원치 않아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하던 순간 신기하게 쫙하며 어떤 감정이 가라앉았다.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니 모든 게 미동 하나 없이 고요하게 정지 되어 있었다. 어느 곳에 갑자기 떨어진듯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낮은 자세가 주는 비굴함은 어디에도 없고 낯선 공간 낯선 감정이 뭘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처음 힘들고 어렵기만 한 또 다른 자와 조우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기분 나쁘지 않은 순간이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후로 산책을 하다 쪼그리고 뭔가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낮은 자세의 들여다보기는 참 신기하게도 마음의 정화작용을 일으켰다.
작은 것들에서 느껴지는 초미세 숨소리에 한껏 집중하는 짧은 혹은 긴 시간이 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했고, 그 순간만은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였다. 모든 행하고 행했던 모든 일들을 없애고 다른 내가 되고 싶었던, 백지장 같이 하얀 내가 되어 다르게 살고 싶었다. 살고 싶은데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았었다. 처음으로 스스로의 사고로 행해지는 모든 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궁금해졌고 좋아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알지 못하는 부조리한 자에게 50년 이후의 삶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살아왔던 자도 자였고 살아갈 자도 자인 것을 부정하는 것을 더이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50의 나이는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아니라, 다른 쪽에 서 있는 자를 만나고 알고 인정하는 나이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일의 행함에 있어 타인의 눈 보다 자신의 눈에 더 신뢰를 가질 때라는 것을 인지한다.
더더욱 이제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자에게 스며들어 들여다볼 때이다.
관찰
오해와 이해의 사이
반전과 불변의 진실들
이해 후에 얻어지는 가벼운 진실
자를 낮은 곳으로 임하게 하소서
자를 둘러싼 작은 요소 하나하나를 쪼그리고 들여다보게 하소서
작은 솜털 바람처럼 스치는 움찔한 설렘과 파동을 느끼게 하소서
언제 어느 곳에서도
'스며들어'
낮은 자세로 얻어지는 겸손과 지혜를
손바닥에 올리고 들여다볼 수 있기를
'자'는 시간이 가고 있는 '금일'에도 매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