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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ug 17. 2020

요즘 힙스터들은 산에 오른다더라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마흔한 번째

어느 봄날, 관악산 연주암에서. 저땐 정말 어려 보인다.

Nikon FG-20

Zoom-NIKORR 35~70mm 1:3.3~4.5 Lens

Fujicolor C200 film

2011년 5월





 믿기 어려운 뉴스를 다. 


 요즘 젊은이, 아니, '힙스터'들은 등산을 즐긴다고 한다. 새롭고 독특한 경험에 목을 매는 청년. 그들에게 어울렸던 연남동 맥줏집이나 홍대 강남의 포차나 이태원의 클럽 따위는 식상한 나머지 이제 더 이상 힙하지가 않을 터. 그동안 아저씨들의 전유물로만 취급됐던 등산으로까지 취향의 눈길이 향하게 된 것이다.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한 물건에 색다름을 느끼듯이, 아저씨가 아닌 세대에겐 아저씨 세대의 취미가 독특한 경험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스타일리쉬하게 입고 산에 올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게 요즘 유행한다고 한다. 배고픈 포식자 같은 그들의 변덕스러운 취향을 고려해 볼 때 금방 달아올랐다 식어 버릴지도 모를 일시적 유행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됐건 자못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기사를 읽다 보니 대학생 무렵, 벌써 10년도 더 지난 '지리산 종주'의 기억이 떠올랐다. 2008년 여름의 어느날이었다. 옛말에 '총명불여둔필'이라고 했던가, 기억은 흐릿하지만 짧게나마 메모를 해 뒀기에 그때를 다시 떠올릴 수 있다.

 

 평소에 등산이라면 치가 떨다. 고등학생 때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이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군대도 회사도 아닌데 행사 때마다 걸핏하면 등산을 가는 이상한 곳이었다. 소풍도 등산, 수련회도 등산, 수학여행 때도 등산 일정을 집어넣더니 급기야는 고3이 되자 전교생이 지리산을 올라가게 했다. 모든 고3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지리산 정상에 오르내린 뒤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는 게 학교 전통 풍습이래나. '진주산악고등학교'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등산에 미친 학교를 다녔으니 이제 두 번 다시는 등산 따위 하고 싶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동기 K의 유혹과 설득은 집요했다. 국토 대장정이나 산악 종주 같은 건 학생으로서 꼭 한 번쯤은 경험해봐야 한다고. 왠지 모르게 설득력 있던 그의 말에 결국 넘어가 버리고야 말았다. 어라, 이게 뭐지, 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어영부영 짐을 싸고 등산 준비를 하고 있다. 할까 말까 하는 일은 해 보고, 살까 말까 하는 건 사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럼 어디 한 번 해 보자, 는 생각에서 그렇게나 싫어하던 등산을 다시 하게 된 걸까. 혹은 나중에 은행 영업사원이 되는 K의 언변이 기막혔던 덕분일까.


 늦은 밤 서울역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옆에 위치한 마트에서 장보기를 시작했다. 햇반, 3분카레, 라면, 김치, 음료수, 오이를 비롯한 과일, 초콜릿바 등의 간식, 일회용 수저와 그릇, 부탄가스 한 통,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단함을 달래 줄 소주까지. 오랜만에 방문한 뷔페에서 목구멍 끝까지 음식이 차도록 먹어대듯 배낭의 끝의 끝까지 등산용 물건들로 가득 채워 넣었다. 모자란 것보단 넘치는 게 낫겠지, 하며 훗날 쳐올 고난을 생하지 않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등산 초보들이 으레 저지르는 실수였다.


 장을 마친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천안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전철을 타고 간다. 당시 고작 2,000여 원 남짓한 돈으로 2시간 만에 천안까지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천안역에서 전남 구례로 향하는 무궁화호 차에 올라다. 천안발(23:56) 구례행(03:23) 기차였다. 그때 푯값은 14,600원. 학생일 때라 서울에서 호남선 KTX를 탈 만큼 지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에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한 선택이었다. 밤 기차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새벽 곧바로 등산에 돌입할 계획이었으나 우리의  처음부터 무참히 산산조각 났다. 어째 밤 기차임에도 남는 좌석이 하나도 없어서 입석으로 출발하게 됐다. 이리저리 메뚜기떼처럼 자리를 옮겨 다니다가 전주역에 이르러서야 구례까지 고작 1시간여를 그나마 좌석에 앉아서 쪽잠을 자며 갈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2박 3일이 아닌 1박 3일이 버렸다.


 새벽 3시 에 도착. 졸린 눈을 비비며 구례역에 내렸다. 다들 커다란 배낭을 둘러메고 있는 걸 보니 우리와 같은 등산객들다. 아직 캄캄한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마치 검은 도화지에 하얀 소금을 점점이 흩뿌려 놓은 듯했다. 매캐한 먼지와 빛공해에 뒤덮여 별 하나 제대로 보기 어려운 서울과는 달리 하늘에 별이 참 많다. 구례역사 바로 바깥엔 화엄사를 거쳐 지리산 성삼재로 올라가는 버스가 대기중이었다. 1시간마다 한 대씩 있는 버스인데 우리는 4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역시나 등산객들이 버스 안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어서 여기에서도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베테랑 기사 아저씨는 운전대를 놀리는 손만큼이나 입을 놀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셨다. 지리산의 전설과 역사와 본인의 개인사, 오늘의 날씨와 더불어 별별 이야기들을 비빔밥처럼 섞어가며 입담을 뽐내신다. 기사님의 설명대로 자그마치 92번에 달하는 커브길을 이리저리 꺾어가면서 해발 1,000미터의 도착지를 향해 달려가는 버스.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리는지라 창 밖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도 않는 길을 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데 멀미가 날 지경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어렴풋이나마 바깥 풍경이 보이기라도 했다면 무서워서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벽 5시, 화엄사를 거쳐서 마침내 성삼재에 도착했다. 아직도 짙은 어둠이 깔려있는 시각이라 K가 준비해 온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둘러 쓰고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했다. 여름이었지만 산의 밤은 쌀쌀했다. 준비해 온 얇은 점퍼를 꺼내 입었다. 바닥을 비추는 희뿌연 라이트에 의존하면서 돌밭길을 올라가다가 종종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은 어느덧 금밭이 무성. 대자루에서 소금을 쏟아 검은 하늘에다 별을 한가득 풀어놨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마치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하얀 소금 알갱이처럼 반짝다. 펄쩍 뛰어오르면 머리에 쿵 하고 별이 닿을 것만 같았다.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들  세 손가락 안에 꼽 만큼 장관. '국제 어두운밤하늘 협회'에서 탐낼 만한 광경이었다. 처음엔 똑딱이 카메라로 어떻게든 별하늘을 담아 보려다가 제대로 찍히지 않아 이내 포기, 내 두 눈으로라도 이 장면을 오롯이 담아 놓으려고 애썼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사진작가로 분한 숀 펜의 대사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다고.


 노고단에서 알간 동이 트는 걸 잠시 감상하다가 이내 발걸음을 바삐 놀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목표는 세석대피소까지 도착해서 1박. 이때까지만 해도 이 목표는 수월할 것이라고 각했더랬다. 지리산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한참을 걸어 임걸령을 거쳐 노루목에서 우리는 잠시 고민했다. 눈앞에 솟아있는 반야봉을 올랐다 갈 것인지 그냥 지나쳐 갈 것인지. 아직까지 힘이 남아돌았던 우리는 반야봉을 오르기로 했고, 이결국 큰 화로 돌아오게 된다. 해발 1,732미터의 반야봉에 오르면서 우리의 오전 시간은 무지막지한 오르막길과 돌밭에 고스란히 날려 버렸다. 힘들 때마다 오이와 사과가 없었다면 쓰러 뻔.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다리는 어느 순간부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움직이고, 지나치게 짐이 많아 무거운 배낭 때문에 어깨 허리도 아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데다가, 이제는 머리까지 어지럽다. 노루목 갈림길에서 우리와 같 고민하다가 반야봉을 포기한 어느 중년 부부의 을 따어야 했다. 아줌마께서는 남편분께 이렇게 말씀하다.


 " 미쳤다고 길 올라갑니! 그냥 빨리 가입시더."


 인생도 마찬가지. 어느 순간에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되는 때가 있다.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을 수도 있는 법. 우리는 애써 둘 다 가지려다 화를 입은 것이었다.


 오전 내내 지옥 같은 반야봉에 기운을 성급하게 써버린 '처 미친' 우리는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침낭을 펴고 쓰러지다시피 누워서 한참을 쉰 후 오늘의 첫 식사를 다. 3분카레와 햇반, 그리고 라면이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사흘 내리 굶은 거렁뱅이처럼 씹는 둥 마는 둥 후루룩 밥을 넘기고서 다음 목적지인 벽소령 대피소로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무리 몸이 지치더라도 밥 한 번 먹으면 기운이 다시 솟아났더랬다.


 삼각봉과 형제봉은 금방 걸어 지나 드디어 벽소령에 도착했다. 보통 우리와 같은 코스로 출발하면 벽소령 대피소에서 1박을 한다고들 하는데, K와 나는 '우린 아직 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를 외치면서 벽소령에서 잠시 쉬었다가 세석까지 걸어가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미친 선택이었다. 지리산 초짜 주제에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다. 오전에 반야봉을 오르지 않았면 모를까.


 벽소령에서 세석으로 가는 길. 거의 5시간이 걸리는 힘든 길이었다. 작년에은 코스로  봤다면서 여기서부터는 이제 쉬운 길만 나오니까 걱정 들어 매라고 큰소리치던 K는 결국  위에 털 드러누웠다. 


"아이고! 나 죽는다. 탈진했나 봐, 어이구. 더는 못 가겠다."

"야 이 미친. 여기 드러누우면 어쩌라고. 빨리 일어나!"


 지리산 전문가인 양 나를 꼬실 때는 언제고 이게 지금 뭣하는 짓이당가. 퍼뜩 일어나 이아. 년에 종주를 해냈다더니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듯 힘들어하는 K의 입에 치즈와 초콜릿을 여넣고 물을 먹였다. 팔다리주물러 주기도 하고 간간이 감정을 실어 뺨을 때리기도 하면서 간신히 기력을 회복시켰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그. 녀석이 쓰러진 순간 친구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실은 무거운 배낭 2개를 내가 다 둘러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심전력으로 K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다. 우리가 이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아마도 오전의 '무리한 반야봉 등정'과 함께 등반길에서 만났던 어느 인심 좋은 영감님이 주셨던 '맛나고 독한 복분자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어르신. 맛있다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연신 잔을 비웠는데 알고 보니 어찌나 도수가 높은 술이었던지. 산에서는 다들 인심이 후해져서 이런저런 것들을 나눠먹곤 하는데 술은 조심해야 된다.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음주등산 이렇게나 위험하다.


 해가 질 무렵에야 간신히 세석산장에 도착한 우리는 기진맥진한 채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하지만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산장 자리를 예약하지 못했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잠자리는 인터넷으로만 예매가 가능한데 15일 전부터만 예약이 가능했다. 과 사흘 전에 결정하고 급하게 오느라 미처 예약을 못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왔다. 우리가 가진 침낭은 고작 하나. 게다가 긴팔 옷도 부족한 상황. 한여름이지만 밤엔 무척이나 추워서 반팔을 입고 있으니 벌써부터 뚝에 소름이 돋으며 덜덜 떨려왔다. 그런데 남는 자리가 없으면 야외에서 바닥에 비닐을 깔고 침낭을 펴고 자야 한다. 그것도 시커먼 남자 둘이서 밤새도록 껴안고 한 침낭에서... 대기자 명단에서 노심초사하던 우리는 다행히도 오지 못한 몇몇의 예약자들 덕분에 빈자리가 나서 산장 안에서 잘 수 있었다. 다음에는 꼭 제대로 예약을 하고 와야.


 지만 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사한 마음도 잠시, 케 잠자리는 마련했지만 씻지를 못해서 영 찝찝하다. 국립공원은 자연보호를 위해서 세제치약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서 대충 고양이 세수만 하고 옷을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 리만 누리고 끝낼 자연이 아니라 후손에게도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이니까, 다들 안내문에 따라서 거품나는 세제 따위 일절 쓰지 않는다. 음식도 남지 않게 딱 먹을 만큼만 만들고, 혹여나 남는 찌꺼기들은 비닐봉지에 꽁꽁 싸매어 배낭에 도로 집어 넣는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침내 들어간 산장. 침실방은 군대 내무반처럼 나무 바닥으로 되어 있고 번호가 앞쪽에 쓰여 있어서 지정된 자리에 다들 나란히 누워서 자 구조다. 1,000원이면 담요도 한 장씩 빌릴 수 있어서 제법 뜻하게 잘 수 있다.


 죽은 듯 곤히 자고 있는데 새벽 6시쯤 K가 날 흔들어 깨다. 지금 출발해야 정상인 천왕봉에서 해를 볼 수 있단다. 


 "으으으으으흐으윽. 나 그냥... 버리고 가. 너 혼자 다녀와."

 "안 돼. 빨리 일어나. 지금 일어나야 일출 볼 수 있다고."


 K가 나를 건드릴 때마다 온몸의 근육과 뼈가 비명을 질러댄다. 이게 내 몸이 맞나.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간밤에 혼은 육신을 떠났고 갈 곳 없는 혼은 정처 없이 떠돌다가 앞자리에 누워있던 영감님 몸으로 들어 거 아닐까. 70대의 낡은 몸이 되어버린 양 팔다리 하나 성히 움직이기가 힘들다. 그래도 새벽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천왕봉 가는 길이 더 힘들 거라는 말에 억지로라도 몸을 으킬 수밖에. 북엇국과 햇반으로 을 해 먹는데 역시나 맛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맨밥에 김치만 먹어도 꿀맛일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 온 김치가 사라졌다. 어제 저녁 대기자 호출에 부리나케 달려가느라 정신없어서 반찬 몇 개를 잃어버렸나 보다. 허전한 마음에 입맛만 다시고 있자 하니 옆에 앉아있던 친절한 아저씨 한 분께서 김치를 나눠주셨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사람 사는 세상. 김치를 받은 우리는  나눠드렸고 같이 오순도순 맛있게 먹었다.


 새벽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천왕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다. 목표는 장터목까지였다. 어제와는 달리 완만한 경사와 나름 푹신한 이 이어져서 여유롭게 산행을 즐겼다. 한가롭게 걷다 보니 어느새 장터목 대피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여기에선 '신의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일찌감치 음료수 따위 다 마셔버렸기에 맹물만으로 입을 축이다가 장터목 음료 자판기에서 펩시콜라 한 캔을 뽑아 마셨던 것. 혀가 녹을 만큼 진득하게 달콤하면서 시원하게 속을 뚫어주는 량한 콜라 맛이란, 가히 천상의 맛이었다. 고작 탄산 넣은 설탕물이 이렇게나 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스티브 잡스는 "평생 설탕물이나 팔 것인가,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꾸겠는가?"라는 말을 하며 펩시콜라의 존 스컬리를 스카우트했다던데, 이 순간만큼은 아이폰이나 매킨토시 따위보다 콜라가 훨씬 더 하고 힙한 이었다.


 쉬운 길이라지만 한참을 걷다보니 오늘도 역시나 만만 않 힘들구나, 는 생각이 들 무렵 저 앞에 아스라이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자욱하게 가려져서 더 신비해 보이는 천왕봉이 앞에 서 있으니 다리가 저절로 빨라졌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33킬로미터 이틀여에 걸쳐 걸어온 끝에 드디어 정상이 코앞이다. 마침내 오른 지리산 정상 천왕봉. 여기가 지라산의 꼭대기다. 자욱했던 안개구름이 바람에 씻겨 날아가니 웅장한 자태가 오롯이 드러났다. 말로는 핍진하게 그 모양을 설명할 수 없는 장엄한 광경이었다. 이걸 보고 있자니 동안의 고생과 피로도 바람을 따라 모두 날려버린 듯하다.


 허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정상에서 맛본 행복감은 잠시뿐. 왠지 모를 불만족스러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조금 지체했더니 일출을 제대로 못 봐서 아쉽네. 어제 조금만 더 고생해서 장터목대피소에서 1박을 했으면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다음번엔 동 트는 걸 볼 수 있게 다른 코스로 올라야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다른 이들은 산에 올라 마음을 비운다던데, 나는 정상을 딛고 서서 오히려 마음에 욕심만 그득하게 채 있는 꼴이었다. 삶의 많은 순간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목표에 도달하기만 하면 행복을 쟁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 향해 달리기만 한다.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을 땐, 행복은 여기가 아니라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거라며 또다시 달릴 준비를 한다. 행복은 대체 언제 누리려고. 그렇게 목표만 존재하지, 그 목표에 왜 달려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고민하지 않는다. 현재를 즐기는 법을 그 어디에서도 배우질 못한 까닭이다.






 나름 성공적으로 종주를 마치고서 다짐했더랬다. 역시나 욕심어린 다짐이었다. 이번 지리산을 시작으로 앞으로 전국의 명산들을 모두 섭렵하리라. 그리고 등산 때마다 초입의 기념품 가게에서 으레 팔기 마련인 '등반코스가 그려진 손수건'을 하나씩 사서 정복의 증거로 간직하겠다. 그날 이후로 내 방 서랍장엔 빨갛고 노랗고 파란 원색의 등산 손수건들이 점점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등산인 비긴즈'가 시작되나 했다.


1박 3일이 걸렸던 구례에서 시작해 산청에서 끝나는 지리산 종주 코스






 하지만 다짐이 무색하게도 당초의 목표는 만족할 만큼 달성하지 못했다. 게 다 도저히 떨쳐내지 못한 으름 때문이다. 야심 찬 포부에 비해 그리 많은 산들을 다니지 못해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등산 손수건은 고작 10개 남짓 모았으려나. 제는 등산을 가고 싶어도 육아 때문에 갈 수가 없다. 이제 갓 100일을 넘긴 아이를 데리고 산에 갈 수 없으니 다음 등반의 순간은 한참이나 기다려야  것 같다. 몇 년이나 더 기다려야 하나. 그때가 되면 아마도 등산은 더 이상 힙스터들의 취미가 아니게 될 거다.


 아래는 그동안 다녔던 등산의 기록이다.



[인왕산] 3호선 독립문역에서 시작해서 정상을 찍고 서촌으로 내려올 수 있다. 서촌 맛집과 맥주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걷다 보면 인왕산 따위야 금방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등산로 곳곳에 청와대 방향으로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보안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북한산-족두리봉 / 백운대] 역시나 3호선 불광역에서 족두리봉까지 가는 짧은 코스가 있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내려와서 '중화원'이라는 중식 맛집에서 특제 누룽지탕과 신라면 맛이 나는 짬뽕, 그리고 고량주 한 잔이면 캬아ㅡ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순간이다. 시간적 여유도 충분하고 북한산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우이동 도선사에서 출발해서 정상인 백운대를 찍고 내려올 수도 있다.



[관악산]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7년을 살았는데 정작 관악산에 오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는 법이다. 좀 더 열심히 다닐 걸. 서울대 정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정상인 연주대까지 올라가는 게 정석 코스다. 나름 '악' 자가 붙은 산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험한 길도 있어서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



[청계산] 청계산에 처음 갔던 건 이효리와 전지현이 자주 간다는 말에 혹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들의 그림자조차도 볼 수 없었다. 대신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종종 들렀으니 나름 성공한 셈이다. 양재역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등산로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에 올 때마다 서울 강남 복판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게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진다.



[지리산] 고등학생 땐 지겨워했고, 대학생 땐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지금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지리산. 다시 가고 싶다 지리산. 목 놓아 불러보는 그 이름이여.



[설악산-울산바위] 아내와 함께 등산을 다니던 때. 정상인 대청봉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울산바위에 올랐었다. 등산을 마치고 속초 시장에서 오징어순대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만석 닭강정' 한 박스 사서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으니 잠이 솔솔. 함께 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해 냈다는 노곤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나는 뼈 있는 닭강정은 별로더라.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478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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