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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19. 2021

누가 아파트의 감나무를 흔들어 대는가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쉰 번째

여름의 초록이 무성하던 감나무

Rollei XF35

Kodak Proimage 100 film

2020년 6월




어느덧 가을, 감이 주황빛으로 익었다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Kodak Proimage 100 film

2020년 10월




겨울에도 까치밥 두어 개는 남아있다

Nikon FG-20

Nikon Series E 50mm f1.8 lens

Kodak proimage 100 film

2020년 12월





 은평구 응암동 거주 시절엔 산꼭대기에 있는 아파트 꼭대기층에 살았던지라 음이 우거진 장면을  일이 없었다. 바깥을 내다보면 앞 동 건물의 지붕이나 까마득히 아래에 있는 도로의 자동차나 가로등 불빛 따위만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도시에 펼쳐진 콘크리트 숲의 풍경이었다. 비록 한강변의 비싼 아파트는 아니지만 밤 풍경을 보는 맛은 나쁘지 않았다. 높은 층 집에서 창 밖의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있으면 왠지 '성공한 도시 남자'된 듯한 치기 어린 착각도 들었다. 사는 곳의 높낮이 따위가 사람 마음에 이렇게나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생긴 후 높은 산이 아닌 낮은 평지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안거나 유모차를 밀고서 오르막길을 걷는 건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집에 가려다가 길바닥에 쓰러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기에게 땅의 기운을 받도록 하는 게 좋다는 미신적인 믿음 역시 이사가고 싶은 마음에 부채질을 했다. 그래서 서대문구에 있는 처갓댁 근처 아파트로 서둘러 이사 왔다. 졸지에 집 평수는 줄었는데 어째 대출금은 더 늘었다. 새 집은 우리가 원했던 대로 땅과 가까운 2층에 위치했다. 전 집과는 달리 거실 창밖으로는 나무들이 보였다. 창을 열고 손을 뻗으면 나뭇잎에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였다.


 하지만 겨울에 이사해서 그런지 창 밖으로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들뿐이었다. 새 하나 없이  바람에 휘청거리는, 마치 병색이 완연한 모습의 나무들. 색을 하진 않았지만 으로는 적잖이 실망했다. 이런 스산한 꼴을 보려고 힘들여 집을 옮긴 걸까. 괜히 저층으로 이사 왔나. 좀 더 무리해서라도 대출을 더 받아서 고층에 집을 얻었어야 됐나, 하며 늦은 후회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공한 도시 남자였는데 이게 웬일이람.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한 자의 감정 비슷한 게 느껴졌다. 시나 사는 곳의 높낮이 따위가 내 마음을 이리도 흔들어 놓았다.


 봄이 되자 비쩍 마른 나뭇가지 끝동에 새순이 돋아나는 게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올라오더니만 어느 날 갑자기 꽃이 활짝 피어났다. 이 한창일 무렵에는 벚꽃이며 개나리가 흐드러져 에는 찔할 정도였다. 여름 녹음이 우거졌다. 거실 창을 열어두면 집 안에서도 상큼한 풀 내음이 느껴졌다. 심한 밤엔 바람결에 나뭇잎들이 서로를 부비는 소리와 함께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대학생 시절 어느 시골 마을로 MT를 온 기분이었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가 떠오르는 정취였다. 가을에 들어서자 그제야 거실 창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무가 감나무인 걸 알게 됐다. 아직 덜 여문 초록색 열매를 바라보니 과연 감의 형상이었다. 성공한 도시 남자라더니 나는 감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도시 촌놈'이었다. 추석 즈음에는 잘 익주황빛 단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내 것이 아님에도 부해진 듯 배가 불렀다. 종종 까치나 참새가 날아와서 잘 익은 감을 쪼아 먹는, TV의 자연 다큐에서나 보던 장면이, 바로 눈 앞에 펼쳐기도 했다.


 계절이 지남에 따라 변해가는 감나무의 모습. 그걸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나라는 존재가 자연 안에 속해 있나, 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동안 시간의 흐름이라는 건 휴대폰 달력의 시계나 날짜를 보거나, 계절에 맞는 짧은 팔, 긴 팔, 외투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올 때, 퇴근 시각 집에 돌아왔을 때 전등을 켜거나 켜지 않아도 되는  등으로 인지했었다. 그런데 창 밖 나무와 함께하니 하루, 한 달, 계절, 1년이 흘러간다는 걸 으로 접 느낄 수 있었다. 새순을 만나고서 봄이 옴을 알고, 꽃이 피니 봄 안에 있었고, 초록색 잎사귀들과 풀 내음으로 여름을 보내고, 색색의 단풍과 열매들로 충만한 가을에 감사하고,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나뭇가지를 보며 겨울을 맞이했다. 숫자나 기계 같은 문명의 도구들에 묻혀 살 때는 느끼지 못했, 자연의 시간표가 보여주는 시시각각 살아있는 장면들이었다.


 조선시대 의서인 <향약집성방>에 따르면 감나무는 '7덕'과 '5절'을 갖추고 있어 높이 쳐줬다고 한다. 7덕이라 하면 긴 수명, 무성한 잎이 만드는 짙은 그늘,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벌레도 없으며, 가을에는 예쁜 단풍, 맛있는 열매, 낙엽은 훌륭한 거름까지 되는 일곱 가지 장점들을 이른다. 5절이라 함은 잎이 넓어 글씨 연습하기 좋고, 단단한 나무로 화살대를 만들 수 있고, 겉과 속이 같이 붉어 표리부동하지 않으며, 홍시는 이가 약한 어르신들도 쉽게 먹을 수 있게 하는 효를, 서리를 맞으면서까지 늦게까지 매달려 있는 기개까지의 다섯 가지 유용함을 뜻한. 옛사람들에게 있어 한 마디로 좋은 건 다 갖춘 나무 중의 나무가 감나무였던 것이다.


 비단 선조들이 인정해서 뿐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돌도 안 된 우리 아이가 감나무를 바라보는 걸 좋아해서 나도 이제부터 1등 나무는 감나무라고 쳐주기로 했다. 맨 중의 맨은 휴 잭맨, 면 중의 면은 라면, 나무 중의 나무는 감나무다 이거다. 아이를 안고 거실에 가만히 서 있으면 녀석이 창 밖의 나무를 어찌나 열심히 쳐다보는지. "아빠, 잘 안 보이니까 비켜."라고 말하고 싶은 양  얼굴을 피해 고개를 왼쪽 오른쪽으로 이리저리 뻗어가며 나무에게 향하려고 애쓴다. 드러운 바람결에 나뭇잎이 살랑거릴 때, 빗방울이 잎사귀를 톡톡 칠 때, 새벽녘에 이슬이 이파리에 매달려 있다 또르르 굴러 떨어질 때, 눈이 많이 오던 날 나뭇가지에 하얀 소금 같은 눈이 소복히 쌓여있을 때 등등, 아이는 웃고 울고 때로는 반짝거리는 눈빛을 하고서 조용히 감나무의 모든 때와 공명했다.


 감이 익어가던 계절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무색하게도 날씨가 좋은 날이 많았다. 전염병만 아니었다면 아이와 함께 매일같이 나들이를 다녔을 텐데. 집 안에만 있기 너무도 아까운 날들이었다. 그나마 창 밖 감나무가 한 줄기 위로가 되어주던 나날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창 밖의 나뭇가지들이 폭풍우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마구 흔들렸다. 가끔 그랬듯이 커다란 까치 몇 마리가 서로 감을 쪼아 먹으려고 싸우느라 나무가 흔들리는 거로구나. 사람이든 동물이든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나잖아. 그렇게 볼거리를 기대하며 신이 나서 창가로 달려갔다. 그런데 새는 웬걸, 나무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아래를 쳐다보니 웬 노인네가 미친 듯이 나무를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어 어어 어어어, 저럼 안되는데, 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에 무성했던 나뭇잎과 잘 익은 감들이 죄다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그는 그제야 나무 흔드는 걸 멈추고 주섬주섬 감을 줏었다. 손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쥐고 있는 걸 보니 작정하고 온 듯했다.


 세상에나,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감 도둑이 있다. 그것도 아파트 단지 내의 과실수를 노리는.


 불과 몇 분만에 머리가 다 빠져버려 볼품없어진 대머리 나무를 마주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 겨울이 되려면 멀었는데 감나무 홀로 한겨울의 모습으로 바뀌어버렸다. 반 년 넘도록 정들었던 감나무의 처참한 모습에 아내도 나도 마음이 아팠다. 성질이 나서 숨을 씨근덕거렸다. 인터폰으로 관리실에 연락했지만 감 도둑 할아범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창 밖엔 마른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감나무가 아픈 듯 부르르 떨고 있다.


 "아니, 요즘 세상에도 저런 할배가 다 있어. 미친 거 아냐 진짜."


 그러면서 괜히 걱정 아닌 걱정도 했다.


 "그런데, 저 감을 먹어도 되는 거야? 아파트 조경 관리한다고 시도 때도 없이 소독약 뿌려대던데, 저런 걸 먹어도 괜찮으려나."


 예상도 못한 순간에 무참히도 파괴된 자연이었다. 물론 겨울이 되면 잎사귀가 모두 떨어지긴 할 테지만, 왜 잠시의 기다림참지 못하고서 일찍이 부수려 드는 걸까. 가만히, 떨어지는 감을 지켜보고 있으면 안 되는 걸까. 인간의 욕심이 문제다. 하지만 불시에 재앙을 맞닥뜨렸지만 자연의 힘은 경이로웠다. 그렇게나 마구 흔들어댔음에도 기어코 감 두어 개는 나뭇가지 끝둥에 단단히 붙들려 있는 게 아닌가. 거친 파고를 버텨 낸 감 열매들은 겨우내 오고 가던 새들의 밥이 되어줬다. 아이는 새가 까치밥을 쪼아 먹을 때마다 역시나 예의 반짝거리는 눈으로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봤다. 감나무 열매 마지막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담아 두겠다는 듯이.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살랑거리는 날이 돌아왔다. 앙상했던 감나무 가지에는 다시금 새순이 돋아나는 게 보인다. 금세 초록이 무성해지고 한번 더 주황빛  열매가 익어갈 테다. 감나무를 흔들던 검은손 따위 아랑곳없이 다시 한 번 자연의 순환이 시작됐다. 그러고 보니 지난봄에 태어난 아이와 모든 계절을 함께 보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맞이한 봄. 언제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나 싶다. 아이는 언제까지 지금처럼 짝거리는 눈으로 감나무를 바라봐 줄까. 혹여나 몇 년 후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게 되더라도 거실 창 밖 감나무만큼은 꼭 기억했으면 한다. 여기에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 덧. 까치가 감을 쪼아 먹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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