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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Feb 23. 2022

도시 노동자의 단상

직장 생활에 대해, 길게 쓰기엔 모자라고 짧게 쓰기엔 넘치는 이야기들


 7개월 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휴직 기간 동안 앞자리가 5**인 회사 번호로 뜨는 전화가 오지 않음에 안도했다. 한편으로는 불안함에 젖어드는 양가적 감정도 느껴졌다. 침묵을 유지하는 전화기는 별일 없다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나의 쓸모'라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할까 봐. 일을 멈춤으로써 생긴 빈틈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자라났다. 이를테면 나는 왜 직장생활을 하는가, 하고 있는 일은 의미 있나, 나남 없이 걷는 길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같은 해답을 찾기 어려운 고민들.


 기실 일하는 시간에도 내내 했던 생각들이다. 햇수로 따져보니 회사를 다닌 지 벌써 12년째다. 급속도로 고령화되는 사회. 언젠가 60대 중반 정도로 정년이 연장된다고 하면, 직장생활도 이렇게 두 번만 더 되풀이하면 끝날 테다. 남은 20여 년은 또 어떤 생각들을 하며 살까. 그동안 했던 것들과 비슷하려나, 아주 많이 다르려나. 직장 생활과 고민에 대한 글은 쓸 만큼 썼다 싶었는데 자투리들을 모아 보니 제법 된다. 다음은 길게 쓰기엔 모자라고 짧게 쓰기엔 넘치는, 어느 도시 노동자의 이야기들이다.




 1. 바코드 인간

 출근 첫째 날, 사원증을 받았다. 앞면에는 졸업앨범에 싣느라 찍었던, 어색하게 지어 낸 미소를 머금은 얼굴 사진이 박혀 있었다. 뒷면에는 이름과 생년월일과 사원번호와 A라는 혈액형과 출입문에 갖다대는 바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그때가 스마트폰이라는 걸 처음 마주했을 무렵. 다음이나 네이버 앱의 카메라로 바코드를 찍으면 상품명과 제조일자, 가격 따위 정보 화면에 다. 혹시나 싶어 사원증에 있는 바코드를 찍어 봤다. '검색 불가'라는 안내문구가 떴다. 나는 한낱 상품이나 숫자로 치환되지 않는 더 나은 차원의 존재구나, 하고 안심했다.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아예 상품가치라고는 없는 쓸모없는 존재일 수도 있잖나.


 선배 W에게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

 "쓸데없이 뭘 그런 걸 고민하고 있어?"



 2. 24시간 신점

 선배의 말마따나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있을 여유는 없었다. 신입 시절에는 정신없이 바빴다. 야근이며 주말 근무를 밥 먹듯이 했다. 왜 때문인지는 몰라도 회사의 모든 일을 나 혼자서 하는 것만 같았다. 애꿎은 전화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자판이 부서져라 두들기고, 쉴 새 없이 한숨을 뱉어내는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 퇴근길에서 전단지 하나를 발견했다. 길바닥에 버려진 점집 광고 전단지. 굵은 궁서체로 쓴 '24시간 신점'이라는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어째서인지 마음속의 화가 다소 누그러졌다. 신통방통한 신령님마저도 휴일이고 쉬는 시간도 없이 일을 하시는데, 한낱 인간인 나는 불평 말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구먼.


 아니다. 열심히 사는 신들은 따로 있을 거다. 신계에서도 원청이 있고 하청이 있어서 야간과 주말 고객 응대는 급 낮은 신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닐까.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다들 불로불사의 존재일 테니 산재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다.



 3.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그렇다고 내가 특출나게 근면성실한 직장인이었던 건 아니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말이다.


 예전 부사장과 전라도에 출장 갔을 때. 출장이 으레 그렇듯 저녁에는 끝 모를 술자리가 이어졌다. 아재들이 좋아라 하는 건배사와 함께. 예를 들어 '청바지',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들을 때마다 징그러웠던 '오바마',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 따위 구호들. 다음날 아침, 쓰린 속을 부여잡고 숙소 앞 콩나물국밥집으로 기어갔다. 부사장은 이미 식사 중이었다. 뚝배기 그릇이 절반이나 비워져 있었다. 멀끔한 얼굴에서는 숙취 따위  수 없었다.

 "부사장님, 속은 괜찮으세요?"

 "뭐, 얼마나 마셨다고. 아침에 한 바퀴 뛰고 와서 먹으니까 좋네."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는 그. 옷차림을 보니 운동화에 츄리닝, 등허리는 땀으로 젖은 채였다. 듣자 하니 매일 새벽 1시간 여의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한단다. 곧이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이 이어졌다.


 나는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능력 계발, 자기 관리, 인맥 형성, 술자리와 기타 온갖 것들을 죽도록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것. 그때 어렴풋이 생각했다.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되는 건 이번 생에는 글렀다고.



4. 새삼 느끼는 세대 차이

 MZ세대, 혹은 90년대생으로 대충 싸잡아서 표현되는 '요즘' 직장인들은 성공에 대한 개념이 다르단다. 빠른 승진, 많은 급여, 자부심과 명예 같은 것보다는 워라밸, 자아실현, 자기 발전 가능성 등에 더 가치를 둔다고. 이런 게 세대 차이려나.


 휴직 전 부서원들과 밥을 먹던 때. 추운 날씨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20대인 후배 J에게 별생각 없이 말했다.

 "청춘이라 그런지 얼죽아네요."

 그러자 주변의 나이 지긋한 선배들이 궁금해했다. 대체 얼죽아가 무슨 말이냐고. 얼굴 마담? 얼리어댑터? 얼간이? 중구난방의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 광경을 보고서 J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대의 경우도 겪었다. 어쩌다가 그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2000년대 초반 학번인 우리가 대학생 때의 연애담을 풀어놓던 때. 신촌에서 학교를 다닌 H형이 세이클럽에서 채팅으로 만남을 성사하는 대목에까지 이르자, 역시나 20대인 Y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세이클럽이 뭐예요? 신촌에 있는 클럽이에요?"

 00학번인 H형도, 03학번인 나도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자네 혹시 MSN 메신저나 싸이월드라는 건 아는가.


 우리는 얼죽아를 모르는 선배들과, 세이클럽을 모르는 후배들과 함께 일한다.



 5. 노동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시대

 세이클럽도 MSN도 싸이월드도 모르고, 2002년 월드컵은 너무 어릴 때라 기억나지 않는다는 젊은 계약직 친구들과 밥을 먹던 중. 사무실에서는 무채색이던 그들의 낯빛이 일순 바뀌었다. 화사하게 핀 얼굴로 주고받는 대화의 주제는 최근의 LG 엔솔 공모주 청약이었다. 이후 해외 주식 시세와 등락을 거듭하는 코인 투자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이어졌다.


 그 가운데서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바야흐로 노동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시대군요. 열심히 일할 생각들을 하셔야지."

 그리고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곧바로 후회했다. 이 친구들은 두 달 뒤면 계약 종료인데 신성한 노동이고 나발이고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니 다들 주식과 코인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텐데. 나도 참 눈치 없는 사람이다.



 6. 노.찾.사. 아니고 커.안.사.

 밥을 먹고 정해진 일과처럼 카페로 찾아갔다. 딱히 누군가 이끈 것도 아닌데 다들 절로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한다. 식사 후 커피는 직장인들에게 본능처럼 새겨진 알고리즘 같다.


 메뉴판을 보면서 고민했다. 오늘은 또 커피 대신 무얼 마셔야 하나. 레몬 아이스티? 따뜻한 유자차? 사과 주스? 아니면 남들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시럽을 가득 부어 마실까. 나처럼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점심시간마다 하는 생각일 게다.


 그래서 커피 대신 다른 음료를 주문하는 이를 만나면 괜스레 반갑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입꼬리를 슬몃 올리며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야 너두? 야 나두! 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숨죽여 살아야 하나. 회사의 커피 안 마시는 사람들을 모아 가칭 커.안.사. 협회라도 만들까 싶다.


 협회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

 하나, 커피만 파는 카페는 우리의 적이다. 커피 외 다른 음료를 제공하지 않는 곳은 단호히 배격한다.

 하나,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며 우리를 초딩 입맛이라 폄하하는 자들은 존중해 줄 가치가 없다.

 하나, 피치 못하게 커피를 마셔야 하는 때가 있다면 신속하게 움직여서 설탕과 시럽을 준비한다.

 하나, 커피는 기호품이 아니라 노동자를 끊임없이 착취하기 위해 동원되는 검은 연료일 뿐임을 명심한다.

 하나, 커피 과음으로 역류성 식도염 따위 질병에 걸린 자들을 적극적으로 본 협회로 포섭한다.


 이쯤 되면 일전의 선배 W가 재등장할 때다.

 "쓸데없이 뭘 그런 걸 고민하고 있어?"



 7. 인성이냐 능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직장 동료들과 카페에 들를 때 종종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후배 Y다. 예전에는 서로 친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점심을 같이 먹었다. 왜 수요일이냐면, 월화수목금의 근무일 중 한가운데 지점이어서. 등산으로 비유하면 고된 오르막길을 지나 정상 지점인 수요일 점심부터 내리막이 시작된다 여겼다. 그러니까 홀가분한 내리막길을 기념하는 나름 의미 있는 때였던 셈. 우리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이직 정보와 준비 현황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고, 언젠가는 같이 사업도 하자는 계획을 그렸다.


 지금은 서로 데면데면하다. 무슨 연유에선지 사이가 틀어졌다. 다른 동료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모르지만 Y는 아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체 왜 그러냐며 이야기도 하고 공연히 성질도 내고 함께 술도 마셨지만 소용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을 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Y는 일을 잘했으니까. 업무 관련 전화를 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문서를 발송하면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곳에 일하러 왔지 정을 쌓으러 온 건 아니잖나.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에게 애써 마음 쓰지 말자. 싸가지가 없네, 말을 막 하네, 속을 모르겠네 하며 Y를 욕하는 동료들에게도 말했다. 그러지 마시라고. 우리는 그저 '일을 하러 만난 사이'일 뿐이잖냐고.


 따지고 보면 Y는 괜찮은 동료다. 남에게 폐를 끼칠 만큼 능력과 의지가 없지도 않고,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될 일을 하지도 않았다. 사람이야 어떻든 일만 잘하면 그만이다. 인성도 능력도 밑바닥인 자들이 회사에 얼마나 많은데. 공기업에 다니는 탓에 그런 형편없는 인간들의 면상을 정년까지 계속 봐야 한다. 진절머리가 난다.



 8. 에너지 보존 전략

 이렇듯 직장에서 일과 관계와 감정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지나치다 느껴졌다. 한동안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씻지도 않고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한참을 누워있다 늦은 밤 느지막이 일어났다. 옷을 갈아입고 밥을 배달시키고 혼자서 캔맥주를 마셨다. 어둑한 방 희미하게 밝히는 모니터 화면을 벗 삼아 저녁인지 야식인지 모것을 먹고 있으니 삶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내 삶을 회복해야지 싶었다. 일에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 일 외의 것들에서 삶의 나머지를 찾아야 했다. 바쁜 와중에도 색소폰을 배우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고, 재작년부터는 육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나머지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쓰는 힘을 줄여야 했다. 이제는 하루에 주어진 에너지 총량이 100이라면 50은 일에, 40은 육아에, 나머지 10은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쓴다.


 요즈음엔 늘어난 재택근무로 인해 출퇴근에 드는 수고가 줄어들었다. 그래서인지 일하는 데 채 30도 쓰지 않는 것 같다. 나한테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직장인이 이래도 되나 싶다. 이게 다 코로나 19 때문, 아니, 덕분이다.



 9. 그럼에도 삶이 지루해질 때

 취미생활, 하니 최근에 부서 동료들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와 같이 10여 년을 회사에서 보낸 이들.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재미없는 일, 늘 보던 사람들의 얼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비슷할 구내식당과 회사 근처 식당들의 밥,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한참 후로 예정된 퇴직 일자 따위가 지겹다는 내용이었다. 따분함을 극복하려면 무언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운동이든 요리든 악기든 공부든 뭐든지. 배부른 투정 같 고민을 한참이나 나눴다. 래된 직장인이면 한번쯤 하는 이야기일 터. 예전에 같이 일했던 S 차장도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에휴, 재미없어. 나이 들면 알게 될 걸. 하루하루가 똑같아. 그래서 시간이 금방 가."


 그러고 보니 나완 달리 아내는 여차하면 사표를 썼다. 짧으면 1년, 길면 2년 만에 사무실 책상을 정리했다. 금방 새 직장을 구하고 역시나 금방 그만뒀다. 직장 생활이 지루할 만해지면 그때마다 끝내버렸던 것. 그럴 수 있었음이 적이 부럽다. 그리고 궁금하다. 사표를 내던질 때의 기분은 어떨까. 매달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봉급에 목매고 사는지라 상상만 해 볼 뿐이다.



 10. 끝에 남는 것들

 결국 이 길의 끝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퇴직을 목전에 둔 선배들을 보며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우선 소위 성공했다는 선배들부터 보자. 능력을 인정받고, 뛰어난 성과를 이룩했으며,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이들. 다들 얼굴이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에 반해 일찍이 일 대신 재테크를 선택한 선배들이 있다. 노력과 함께 시대를 잘 만난 덕에, 주로 부동산으로 이뤄진 자산을 쌓은 이들. 멀끔하게 차려입고 늘 웃는 얼굴이다. 며칠 전엔 K 부장과 밥을 먹었다. 몇 차례나 본부장 승진에 실패해서 실의에 빠져 있을 줄 알았더니만 지난 어느 때보다 표정이 밝았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아들내미가 이번에 반수를 했는데 성적이 잘 나와서 서울대 사회교육과로 갈지 고려대 경영학과로 갈지 행복한 고민 중이라고. 저 나이대 즈음되면 처음의 반짝거리던 꿈이고 승진이고 재산이고 제쳐두고 자식 자랑을 할 수 있는 게 가장 기쁜 일이란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가장 성공한 직장인은 자식 농사에 성공한 이들인가.


 누구나 자신의 삶은 특별했으면 한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인공이었으면 하고. 하지만 모두가 주인공일 수는 없다. 다들 잡스가 되거나 이재용이 되거나 손석희가 되기는 어려운 일. 대신 적어도 비중 있는 조연이 되거나, 눈에 띄는 단역이라도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실은 그것도 어려운 일. 대부분은 '어떤 사람 A'처럼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나 역시 그저 그런 이름 없는 직장인이 돼서 사라질까 봐, 여전히 두렵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걱정한다. 아마도 도시 노동자를 그만두는 마지막 날까지 이런 고민을 하며 살지 않을까. 마치 U2의 노래 제목처럼.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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