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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Sep 06. 2024

이케아 가구 조립 따위가 뭐 어렵다고

회사원 K의 직장생활 중간정산 (13)

 몇 해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왔다. 1월의 한겨울인지라 이삿날은 무척 추웠다. 그런데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굉장했다. 우리는 두꺼운 패딩을 입고서도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그들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일하는 게 아닌가. 이삿짐을 나르는 일이 아니었다면 유도나 레슬링을 했을 것 같은 다부진 몸매의 청년들. 말투를 들어보니 한국 사람은 아닌 듯했다. 같이 일하던 한국인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몽골에서 온 젊은이들이라고 했다. 그제야 포장이사 업체 계약할 때 매니저 아재와 나눴던 대화 일부가 떠올랐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요새 식당은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이사 업계는 몽골 총각들뿐입니다."

 "그럼 한국 사람들은요?"

 "에이, 우리나라 애들은 이런 일 안 하려고 해요."


 그들의 선조들이 어떻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몽골 청년들은 힘이 좋았다. 적어도 어른 둘은 들러붙어야 겨우 들 수 있었던 기다란 카페 테이블을 한 손으로 들어 옮기고 책으로 가득 찬 무거운 박스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서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 심지어 제법 큰 양문형 냉장고를 혼자서 등에 지고 오는 걸 보면서는 이게 진짜인가 싶어 괜히 두 눈을 비볐다. 비단 힘만 좋은 게 아니었다. 커튼과 블라인드며 가구까지, 조립해서 쓰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해놓고 복잡해 보이는 전선과 전등 연결까지 척척 해냈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아니라서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쓸데없는 기우였다.


 이사가 얼추 끝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거실 소파였다. 우리 부부가 집 안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르는 곳, 이케아에서 산 ㄴ자 4인용 소파. 이번에 패브릭 커버를 갈아 씌우기로 해서 이건 조립하지 말고 대충 거실 한 구석에 놓아달라고 했다. 그동안 쓰던 베이지색 커버를 벗기고 겨울이니까 크리스마스 기분도 낼 겸 빨간색 커버를 씌워 놓을 셈이었다. 처음에 조립할 때 내가 혼자서 했으니 이번에도 딱히 어렵진 않겠지.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후 혼자서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콧노래를 부르며 소파 부품들의 결합 나사를 풀고 프레임을 뒤집는 순간 갑자기,


 우지직 쿵.


 "으악. 이거 왜 이래?!"


 뭐가 문제였는지 메인 프레임 가운데가 뚝 하고 부러져서 소파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못을 박아보고 나사를 조여보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죽은 아이 코 김 쐬듯 부질없는 몸부림이었다.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이 새 소파를 사야겠네. 당장 우리 몸을 편히 누일 소파가 급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전화를 걸어 똑같은 이케아 제품으로 다시 주문했다. 연초 결산 업무로 바쁜 시기여서 매장에 직접 가서 사 올 시간이 없었다. 역시나 바쁘다는 이유로 난생처음 조립 서비스도 신청했다. 최대한 빨리 원래 모습 그대로의 소파를 되찾고 싶었다.


 다행히 소파 배송도 조립도 바로 다음날로 예약이 가능했다. 오후 6시 즈음 퇴근 시각에 맞춰서 시간을 잡았다. 다음날 저녁이 됐다. 물건과 함께 오기로 했던 조립 기사님은 약속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대체 언제 오나 싶어서 뿔난 목소리로 전화를 두 번 세 번 걸어댔다. 앞의 고객님 댁에서 예상외로 오래 걸린 데다가 가는 길이 너무 막혀서 죄송하다는, 거듭 죄송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지, 퇴근길 강변북로는 주차장이나 다름없지. 그러려니 하고 기다렸다.


 마침내 도착한 기사님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이제 갓 제대를 했을까 싶은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아직도 추운 날씨인데 등짝은 땀에 절어서 회색 옷이 검은색으로 변해있고 양말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 났다. 뻘건 페인트를 묻힌 목장갑은 언제 빨았는지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색이 누랬다. 두 사람은 소파 부품이 들어있는 박스를 옮기면서 예의 그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이삿짐센터의 몽골인 친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여하튼 늦게 시작했지만 조립은 빠르게 끝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 남은 회사 일을 시작했다. 앉아 있으면 거실이 훤히 보이는 자리였다. 이 친구들은 어째 미덥지가 못해서 방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일을 하면서도 이 친구들이 일하는 걸 틈틈이 보고 있어야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왜 기쁜 예감은 맞은 적 없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 없을까.


 "저기.. 사장님. 혹시 조립 매뉴얼 갖고 있으세요?"


 한 명이 쭈뼛거리며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조립 전문가들이랍시고 왔는데 매뉴얼이 없어서 일을 시작도 못 하고 있단다. 어째 어리벙벙하게 서 있기만 하더라니.


 "아... 3년 전에 샀던 거라 매뉴얼은 진작에 버렸을 텐데요."


 "그러시구나. 어떡하지? 저희가 이 제품은 처음이라..."


 그러면서 목장갑을 낀 손을 비비면서 우물쭈물거린다. 늦은 것도 모자라서 조립까지 못하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이러려고 비싼 돈 주고 조립 서비스를 일부러 신청했나.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화를 내서 무얼 하나. 오늘 밤 소파에 편한 자세로 누워 하루를 마감하려면 어떻게든 서둘러 조립을 시켜야 한다. 어디 보자, 이케아 홈페이지나 어플에 들어가면 매뉴얼이 있을 텐데.


 "제가 매뉴얼 PDF 다운 받았어요. 톡으로 보내드릴 테니까 이거 보면서 하세요."


 "와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왠지 (미안한 말이지만) 영화 <덤 앤 더머>가 떠올랐다. 두 청년은 휴대폰 화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전동 드릴을 손에 쥐었다가 도로 바닥에 놓았다가 나사 개수를 세다가. 급기야는 서로 티격태격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여기로 들어가야 된다니까."


 "아니지. 이거랑 저거랑 나사 넣고 들어가는 구멍이 안 맞잖아 그럼."


 "매뉴얼 그림 보라고. 이게 맞다니까. 구멍은 새로 뚫으면 되지."


 우스우면서도 화가 치미는 장면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데 아직 나사 하나조차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어느 세월에 조립이 끝나려고. 아무래도 오늘 집에서 일하기는 글렀다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친구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저기... 제가 이거 예전에 조립해 봤는데요. 두 분 그렇게 하시면 안 되구요. 이게 저기로 들어가야 되거든요. 제품 불량도 아닌데 억지로 구멍 뚫거나 자르거나 하시면 안 돼요."


 "아아! 매뉴얼 그림이 저렇게 하라는 거였구나."


 두 명의, 네 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이제야 뭘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날 안심시키려고 한다. 이제 자기들이 하겠다고. 이제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잘할 테니 걱정 말고 앉아 계시라는 무언의 대사가 눈빛에서 들렸다. 이 친구들에게 조립을 계속 맡겨도 될까. 긴가민가하면서 식탁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게 왜 안 들어가지...? 이상한데."


 "이건 진짜 구멍 새로 뚫어야 된다니까."


 그놈의 구멍 마니아는 딱따구리도 아니면서 멀쩡한 판때기에 왜 자꾸 구멍을 뚫으려고 하는 건지. 듣고 있으니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다시 노트북을 덮고 난장판이 된 거실로 뛰쳐나갔다.


 "저기요! 그러지 말고 저하고 같이 하시죠 그냥. 이거는 나사를 넣는 게 아니라 틀 위에 얹는 거예요."


 네 개의 눈동자는 어김없이 또 커졌다. 저들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쩌다보니 신병교육대의 조교라도 된 것인가. 처음엔 팔짱을 끼고서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다가 답답증이 가슴을 꽉 막히게 할 때면 직접 공구를 잡고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리바리한 훈련병, 아니, 초짜 조립 기사들은 굉장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쓸데없이 큰 리액션을 보였다. 그렇게 틀을 조립하고 나사를 조이고 커버를 씌우고 셋이서 소파 프레임을 들고 이리 저리로 옮겼다가 자리를 잡기도 하면서.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다.


 어렵사리 조립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뉴스 할 시간이 다 됐다. 저녁도 못 먹고 이게 뭐하는 짓이람. 앞의 집에서 왜 그렇게나 오래 걸렸는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나 추운 날씨에 왜 땀에 흠뻑 젖어 있었는지도. 그래도 고생했으니 음료수라도 한 잔 하십시다. 완성된 소파 앞에 앉아 목을 축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래서야 원. 하루에 가구 조립하러 몇 집이나 다니세요?"


 "원래 대여섯 개는 해야 되는데. 저희가 아직 초짜라서 오늘 사장님네까지 두 집 했어요."


 "그것밖에 못해서 어떡해요?"


 "그러게요, 헤헤."


 둘은 세상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헤실거리며 대답하는데, 이번에도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 올라왔다. 예의 그것과는 다른, 화가 나서 뜨겁다기보다는 안쓰러움으로 먹먹한 느낌의 울컥함이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없고. 청년들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아니, 보통은 고객인 내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반대로 하고 있으니 이것 참 이상한 광경이지만, 여하튼 그렇게 늦은 퇴근을 했다. 


 그들과 작별을 한 뒤 늦은 저녁을 먹고 남은 일을 끝냈다. 길었던 하루를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소파에 누웠다. 역시 소파는 눕는 맛. 어젯밤엔 누리지 못한 여유를 이자까지 쳐서 받겠다는 듯 더욱 편한 자세로 바꿔가며 오롯이 소파를 즐겼다. 해탈에 이른 와불상의 자세로 누워 있었는데 문득 아까의 두 청년이 생각났다. 대체 이 친구들은 그런 실력으로 어떻게 조립 기사가 된 거지.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이케아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조립 서비스 코너를 찾아가니 '유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조립 서비스는 이케아의 파트너인 독립적인 조직 서비스 업체가 제공합니다.'


 이 말인즉슨, 조립은 본사나 정직원이 담당하지 않고 '독립적인' 업체에 하청을 준다는 뜻. 어쩐지 덤 앤 더머 친구들이 타고 온 트럭에도 입고 있는 옷에도 이케아 로고 따위를 찾아볼 수 없더라니. 검색을 더 해보니 이케아 홈페이지뿐 아니라 별의별 대행 서비스 업체의 웹페이지들이 줄줄이 떴다. 저마다 우리가 더 저렴하게 더 능숙하게 조립을 할 수 있다며 일을 맡겨 보라고 외치고들 있었다. 여기도 경쟁이 만만찮은 세계였다. 그 친구들도 먹고살 길을 고민하다가 취업도 식당 일도 이삿일도 아닌 조립 기사일에 뛰어들었을 텐데 과연 그 실력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쓸데없는 걱정에 빠져들었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걱정을 회사 선배에게 털어놓은 적 있다. 파견직, 계약직,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청년들에 대한 안쓰러움의 토로였다. 저 친구들은 여기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까요. 그러자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런 친구들까지 어떻게 걱정하냐."는 핀잔 같은 대답을 들었더랬다. 비록 영혼을 끌어모아 샀지만 서울에 아파트도 한 채 있고 적당히 괜찮은 회사 정규직으로 적당히 승진도 하는 삶을 살면서, 이번에 이사를 하며 팔자에도 없던 '선생님' 혹은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들었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자신의 계급과 동떨어진 허위의식 비슷한 그런 걸까. 도대체 누가 누굴 걱정해 주는 건지. 그들에게 변변찮은 위로도 못 해 줄 거면서.


 그나저나 한참을 소파에서 뒹구는 중인데 뭔가 이상했다. 예전하고 다르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한데. 이거 조립 제대로 한 거 맞나. 어째 영 불안하다. 혹시 나 모르게 기어코 엄한 데다가 구멍을 몇 개 뚫어놓은 건 아닐까. 더머였던 딱따구리 그 녀석, 결국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리집 거실에서 아직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케아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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