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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Feb 15. 2022

이름이 마이클런스투락이라고

겁나 멋있는 이름이잖아. 혹시... 나만 그래요?


필름카메라의 마지막 컷. 절반이 타 버렸다. 그나저나 아들은 훗날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려나.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Kodak colorplus 200 film

2021년 7월





1.
 내 돈을 주고 처음으로 산 음반은 '난 알아요'가 수록된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다. 초등학교, 아니, 그땐 아직 '국민학교'였던 2학년 때. 시내 지하상가 레코드숍 사장 아저씨께 소중히 모은 전재산인 천 원짜리 몇 장을 건네드리고 받아 온 테이프. 신줏단지 모시듯 두 손으로 꼬옥 쥐고 집으로 가져와서 열심히 들었다. 아침에도 듣고 낮에도 듣고 밤에도 듣고, 집 안에서도 듣고 바깥에 나가서도 듣고. 나중에는 테이프가 늘어져서 서태지가 느릿하게 일흔 먹은 노인의 목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렇게 동요 따위는 졸업하고 가요를 듣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에 눈 떴는데 그간 몰랐던 영역은 넓고 깊었다. 듣고 싶고, 들어야 한다는 음악들이 어찌나 많은지. 90년대에는 매일 침 눈 뜰 때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라디오에서 명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승환, 윤상, 신해철, 전람회, DJ 덕(그땐 doc가 아니었다), 알이에프, 김건모와 신승훈 등등. 워낙에 많은지라 매번 숍에 가서 정품 음반을 살 순 없었고, 국딩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길거리 리어카 좌판에서 <X세대 최신가요 모음집> 테이프 따위를 사 오곤 했다. 그땐 음악의 저작권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더랬다.


2.
 가요의 세계에 발을 디뎠지만 팝의 세계는 감히 넘보지 못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한국말도 아닌 노래를 왜 들어,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거. 외국말로 된 음악은 '한참' 더 큰 어른이 돼야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생각보다 한참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듣던 때로부터 몇 년 후. 초등학생 고학년 때 즈음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른바 영어 학습지계의 양대산맥이었던 윤선생과 튼튼영어 중 튼튼영어로. 남들이 한다니까 따라 한 영어 공부는 재미없었다. 재미가 없다기보단 매일 아침마다 전화로 영어를 해야 하는 게 괴로웠다. 졸려 죽겠는데 왜 자꾸 꼬부랑 발음을 시키는 거야 정말. 가뜩이나 아침잠이 많은 내겐 고역이었다.

 유일하게 재밌던 날은 책 한 권이 끝날 때마다 마지막에 부록처럼 딸려 나오던 팝송 부르기를 할 때였다. 처음으로 배웠던 곡은 흑인인 스티비 원더와 백인인 폴 매카트니가 함께 부른 'Evony&Ivory'였다. 피아노에 흑백의 건반들이 조화롭게 나란히 자리 잡은 것처럼 인간들도 서로 화합하며 살자는, 마치 '인종차별 그만!' 캠페인 같은 내용의 노래였다. 그나저나 스티비 원더라는 이름. 왠지 익숙했다. 사촌 형의 음반 서랍장에서 얼핏 봤던 이름이었다. 거긴 마치 보물창고 같았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모여있는 곳. 정품도 있고 빽판도 있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들을 직접 녹음한 믹스 테이프도 있고 벽에는 메탈리카나 이승환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고,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곳이었다.

 어느 날 보물창고에서 CD 하나를 발견했다. 앨범 재킷에 알파벳이 여러 개 써져 있었는데 떠듬떠듬 읽어보니 '마이클런스투락(Michael Learns to Rock)'이란다. 짧은 영어 실력 탓에 무슨 뜻인지는 몰랐는데, 그냥 이름이 길어서 멋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 모르는 글자가 많이 들어가 있으니까 멋지다고. 그렇게 별것 아닌 것에도 쉬이 반하는 게 사람이다. 그들의 최고 히트곡이라는 '25 minites'를 들어봤다.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 서양(정확히는 덴마크) 아저씨의 허스키한 목소리, 아름다운 선율까지. 멋진 노래였다. 가사 내용은 영어 실력이 좀 더 쌓인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됐다. 좋아하던 여자에게 뒤늦게 고백을 하러 갔는데 마침 그녀의 결혼식날이었던 것.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린 여자는 울면서 말한다. 25분만 더 일찍 오지 그랬냐고. 해석을 하면서 하나 배웠다. 사랑 고백이라는 건 타이밍이구나. 팝송을 들으니 영어 공부뿐 아니라 연애도 배울 수 있어서 일석이조였다.


3.
 마침내 들어선 팝 음악의 세계는 흥미로웠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Max>나 <Now> 같은 팝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사서 들었다. 당시에는 초고속 인터넷도 와이파이도 없고, 당연히 빌보드 차트 스트리밍 같은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유행하는 팝송은 그런 앨범으로 듣거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팝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서 마이클런스투락이라는 밴드가 그리 대단치 않다는 평을 듣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저그런 소프트록이나 하는 평범한 밴드라고. 게다가 그렇게나 멋져 보였던 팀 이름마저도 급조한 거였다. 밴드명에 들어가 있는 마이클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마이클 잭슨'의 그 마이클을 얼떨결에 다 붙인 거라고. 정말 대충 아무렇게나 만들었구먼. 실망했지만 내 인생의 첫 외국 밴드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순 없었다. 다른 이에게도 말했다. 이 형님들을 함부로 욕하지 말아다오. 아무리 못난 형이라도 욕을 하면 내가 했지 남이 하는 욕은 참을 수 없는 법이다.

 그렇게 팝의 세계에 심취해가던 고등학생 시절. 야자 시간에 몰래 배캠을 듣다가 감독쌤한테 걸린 적 있다. 운동장에 끌려 나가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몽둥이와 내 엉덩이가 아찔하게 조우하는데,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맞는'다는 게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 무지막지한 체벌이라니.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땐 어떻게 다들 그런 야만의 시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는지. 엉덩이에선 피가 흐르고 짙은 멍이 새겨졌지만 내 정신은 그 정도에는 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건 고되니까 은밀히 행동하는 전략을 취하기로 했다. LG 아하 프리 카세트 플레이어에 달린 이어폰 줄을 겉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긴소매 속에 숨겨서 통과시킨 뒤 소리가 나오는 끝부분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귀에 붙이는 방법. 그렇게 왼손을 관자놀이에 딱 붙이고 오른손에 펜을 쥐고 있으면 무척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 비법으로는 왼쪽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서 스테레오 음악을 즐길 수는 없었고, 반소매를 입는 계절에는 그나마도 불가능했다.


4.
 요즘에는 아이과 함께 라디오를 듣는다. 출근하지 않는 날. 하루의 시작은 7시 KBS <조우종의 FM 대행진>, 저녁 식사 전엔 잠시 클래식 채널로 넘어가서 <FM 풍류 마을>, 오후 6시부턴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 잠자리에 들기 전엔 CBS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 가끔 아이가 이른 새벽에 깼을 땐 <이지민의 올댓재즈>를 들으면서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이며 잠과 맨정신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이런 조기 교육 덕분인지 아이는 진즉부터 팝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위켄드를 들으면서 다리를 퍼덕거리던 게 증거다. 그뿐만 아니다. 모타운 음악 같이 그루브 있는 노래를 들으면 리드미컬하게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종종 유튜브로 <나얼의 음악세계>를 트는데 넋을 잃고 쳐다보는 걸 보면 일찍부터 흑인 음악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아내도 소싯적에 팝 좀 들었다고 한다. 일단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 이태원이었다. 게다가 큰 고모부가 미국 사람에다가, 작은 고모님네는 미국 이민을 가셨고, 살던 집의 1층에는 외국 대사관 직원들이 세 들어 살기도 했다. 팝을 듣지 않겠다고 귀를 막고 다녀도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 국민학교 입학도 전이었는데, 고모들이 미국에서 가져온 비디오테이프에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비디오를 보고 춤을 따라 했다고도 한다. 어째 아이가 위켄드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그의 목소리는 종종 마이클 잭슨처럼 들릴 때가 있으니까. 그나저나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왠지 부러웠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지방민과는 다르구나. 따라잡을 수 없는 문화 격차라는 게 이런 거였군. 나는 중학생 때 집에 케이블 TV를 설치한 후에야 '채널 V'나 'Mnet'에서 틀어주는 외국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었는데. 역시 어르신들 말씀에 틀린 게 없다.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

 나중에 아들과 함께 배캠을 들으면서 철수 아저씨한테 신청곡을 보내야겠다. 그간 신청곡 요청 문자를 많이도 보냈지만 틀어 주셨던 건 딱 한 번, 블러의 'Tender'밖에 없긴 하지만. 과연 아들은 어떤 곡을 첫 번째로 신청할는지. 혹시나, 마이클런스투락을 좋아해서 신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달까지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열렸던 배철수의 음악캠프 팝업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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