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돌 Dec 08. 2019

세월호 리본이 울고 있던 밤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다섯 번째

광화문의 밤
아직 세월호 리본이 슬프게 빛나고 있던 때

Nikon FG-20

Zoom-NIKORR 35~70mm 1:3.3~4.5 Lens

Fujicolor C200

2017년 2월




1.
 XX의료재단 118,600원.

 딩동, 하며 문자가 왔다. 왜 병원에서 카드를 쓴 거지. 놀라서 아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얘길 들어보니 회사 쉬는 날 아파트 단지 헬스장에서 요가 수업을 듣다가 쓰러졌다고 한다. 아침부터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는데 운동을 하다 보니 증상이 점점 심해져서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는 거다.


 아프다던 아내는 힘없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있는 힘껏 화를 내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아무래도 이러다간 큰일이 날 듯하여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며 밖으로 나와서 본인이 직접 119에 전화를 거는데 그 넓은 헬스장에서 도와주는 이 하나 없더라는 거다. 간신히 전화까지 걸긴 했는데 도저히 주소를 불러 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근처에 있던 한 아주머니께 부탁을 드렸는데, 이 냥반이 얼른 달려와서 "무슨 일 있어요? 괜찮아요?" 이러지는 못할망정 먼발치에서 멀뚱멀뚱 구경만 하더란다. 곧 숨 넘어갈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도움을 요청하자 억지로 휴대폰을 받아 들긴 했는데 횡설수설 엉뚱한 소리만 하더라고. 그래서 다시 한번 마른 수건 짜듯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서 폰을 도로 뺏은 뒤


 "OOO 힐스테이트 O단지 헬스장! 빨리 좀 와 주세요."


 빼액 외치고 쓰러졌어, 라는 게 아내의 증언이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못 살던 인간들이라 그래!"


 나 살기 바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인간들이 남 챙길 여유가 어디 있나. 괜히 남을 도와줬다가 이래저래 피곤해지고 지가 손해라도 볼까 봐 그런 거여. 이 동네 알잖아? 예전에 여기 정신병원도 있었고 달동네였는데 갑자기 재개발돼서 아파트에 살게 된 거지, 원래 다들 못 먹고 못살던 빈민층들이 살았던 데잖아, 어디 강남 서초 한남 이런 데서 쓰러졌어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도와줬을걸. 요즘은 부자들이 더 착해.


 한참을 씩씩거리가 문득 부끄러워졌다. 왜 나는 도와주지 않았던 이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이라 도와주지 않았다며, 뭔가 단단히 앞뒤가 뒤바뀐 이야기를 이렇게나 열을 내며 소리치고 있나. 이러다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너는 임대주택 애들하고 놀면 안 된다고, 저 단지하고 우리 단지 사이에 높다란 울타리를 놔야 한다고 떠드는 그런 사람이 될까 두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스는 3달치를 끊었기에 내도 나도 마지막 날까지 꾸역꾸역 나갔다. 헬스장 입구에는 회원들 여럿이 모여 야유회를 갔던 기념사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사진으로 본 사람들의 면면은 다들 서로 도우며 살 것 같은 살갑고도 선한 인상들이었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타인의 고통에 손길 하나 내밀지 않을 만큼 나쁜 사람들이 아닐 것 같은데. 우리 혹시... 야유회 멤버가 아니라서 도움을 못 받은 건 아닐까? 설마, 그건 아니겠지만, 어쩌면 이런 사달이 났던 건 공동체에 좀 더 녹아들지 못했던 우리 탓일지도 모르겠다.



2.
 회사에서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아무런 대가 없이 의에 의해서만 동료, 선배, 후배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을까. 누군가를 위해 내가 기꺼이 희생하고 문제가 생기면 대신 책임을 신 져줄 수 있을까. 직장 생활 10년 차의 경험에 따르면 절대,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남의 성과를 뺏어가거나 뒤통수를 치는 놈은 부지기수일진 몰라도. 사람 사는 게 다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의 법칙을 따른다.


 동료들과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는 사람은 결재했던 윗사람들이 아니라 최초 기안자야 결국. 담당자 책임이라니까."

 나는 주고받은 업무 이메일을 절대 지우지 않고 주기적으로 백업한다. 입사하자마자 지난 업무 담당자의 과오로 인해 감사원에 불려 다니고 사건에 휘말려 언론중재위에 소송 참고인으로 참석하는 등 일련의 경험들을 거치면서 생긴 습관이다. 이게 다 나중에 나를 보호해 줄 방패가 되어줄 거라 믿으면서 별 것 아닌 것들도 정성스레 모두 백업한다. 몇 년 전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J 후배는 업무용 통화를 할 때마다 항상 녹취를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언제든지 들이밀어 보여주기 위함이란다. 인사팀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최근에 동기 H형은 민감한 내용의 컨설팅 업무를 맡게 된 S 후배에게 이랬단다. 나중에 덤터기 쓸 수도 있으니 상세한 업무일지며 업무 지시자를 꼬박꼬박 기록해 놔라. 자칫하다간 나중에 모두 네 책임으로 떠넘겨질 수 있다고. 결국 기록이 남는 거다.


 이게 대체 무슨 비생산적인 짓들에 노력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가. 누구 하나 믿을 사람 없다 이유 때문에.


 하긴. 나보다 입사는 후배지만 퇴사는 선배였던 분께서도 이런 말씀을 남기고 지긋지긋한 밥벌이의 현장을 제 발로 떠나셨다.


 "회사 혹은 회사 선배가  챙겨주거나 지켜주지 않는다. 회사일 말고 다른 먹고살 수 있는 길을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 앞길은 알아서 찾아가야 돼."



3.
 어디 아파트 헬스장이나 회사뿐만이랴. 심지어 국가 시스템마저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몇 년 전의 그 사건으로 인해 모두가 깨닫게 됐다.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이 TV로 인터넷으로 스마트폰으로 생중계되는 걸 지켜봤다. 시시각각 차가운 바닷물로 빠져드는 배를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슬픔, 무능력한 정부에 대한 분노감을 모두가 느꼈을 거다. 고작 몇 시간 동안 무슨 말 같잖은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지.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만우절은 2주나 넘게 지났는데 이게 실제인지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 느낀 깊은 슬픔만큼이나 뚜렷하게 자각하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가족도 이웃도 회사도 국가마저도. IMF 이후로 소위 노동 유연성이 확대되며 회사가 내 밥벌이를 지켜주지 않음을 알게 됐고,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역시 내 안전을 책임지지 않음을 알게 됐다. 함께 슬픔을 나눠 줄거라 생각했던 주변 이웃들은 오히려 너네 빨갱이냐고 죽은 애들 팔아서 돈벌이하냐며, 단식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입에 가득 처넣은 피자와 치킨을 우걱대며 처먹는 차마 인간이라고 부르지 못할 족속들이었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아비규환의 사회이다. 이런 상황에서 갖춰야 할 개인이 갖춰야 할 최적의 전략은 무엇일까. 아마도, 어느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입버릇처럼 외치던 말처럼


 "나만 아니면 돼!" 일까.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 배려마저도 찾기 힘든 세상이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사회.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타인들과 공감하고 연대서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데,  정말 가능한 일일까.



4.

 럼에제발, 함께하자고. 같이 슬퍼하기라도 해 달라고.


 2017년 초 어느날 밤의 광화문 광장에서, 아직까지 홀로 남아 불을 밝히고 있던 노란 리본 그렇게 말하면서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는 듯했다. 결국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서로에 대한 따스함뿐이라고. 그것만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울먹이며 말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진흙탕에서 허우적대지만 그중 몇몇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본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우리를 보다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줄 길이 있을 거다. 세월호 리본이 밝혀주는 불빛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그렇게 믿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인이라면 게이트볼 정도는 칠 줄 알아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