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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Feb 12. 2020

삼청동, 루시드폴, 그리고 연애담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열 번째

삼청동에서 경복궁 담길 따라, 어느 날 저녁
삼청동 지나서 인사동
삼청동 어느 골목에서 독립운동가들과

Nikon FG-20

Zoom-NIKORR 35~70mm 1:3.3~4.5 Lens

Fujicolor C200

2017년 3월


                                                                                                                                   


 십여 년 전 싸이월드 시절 일 밤을 지새웠다. 일촌 파도타기나, 혹은 우연히 타고 넘어간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미니홈피를 구경하라고.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게 뭐 그리 생에 유의미한 일이라고 쓸데없이 열심이었.


 그런 관음 놀이보다 더 재미났던 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누군가 지갑을 털어 산 도토리로 꾸며놓은 소중한 BGM들. 유심히 귀를 기울이다 우연히 흙 속의 진주 같은 곡을 발견한 날도 있었다. 어느 늦은 밤이었다. 조곤조곤 말하는 듯한 낯선 노래 인상적이어서 제목을 찾아보니 '사람들은 즐겁다'다. 스무 살 무렵의 새벽에는 사람이 얼마나 감상적인가. 그런 때에, 단출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 귀에다 나지막히 읊조리는 가창, 그리고 왠지 지금 세상에서 내가 가장 우울인간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 와 닿는 제목과 노랫말까지.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거워" 보인다니, 이건 완전 내 이야기인데, 하며 빠져들었다.


 그 음악의 주인공은 바로 루시드폴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음악을 무던히도 찾아 들었다. 루시드폴 이전 '미선이'라는 밴드를 할 때의 음악도, 그가 참여한 영화 <버스, 정류장>의 OST도 모두 찾아 듣고. 아내와 연애할 때는, 어떤 기념일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밤엔 그녀 앞에서 '오, 사랑'을 기타를 치며 불러주기도 했다.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날개가 없어도 나는 하늘을 날으네.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돛대가 없어도 나는 바다를 가르네." 기타라고는 F 코드의 벽에 부딪친 이후로 멀리했던 탓에 가락 번호가 그려진 타브 악보를 보면서 속성으로 연습에 매진했었다. 카포가 없어서 원곡과는 키가 조금, 실은 많이 달랐고, 갈 곳 잃은 서툰 손가락도 공중에서 허둥거렸지만, 음정이나 박자가 뭐가 중요하겠나. 여자친구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내 정성이 중요한 거지, 라면서 아쉬운 실력을 애써 변명했.


 아내는 나의 노래를 듣는 걸 꽤나 좋아했다. 루시드폴의 노래뿐만 아니라 아무 노래라도 뭐든. 종종 이런 주문도 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전화로 노래 불러줘. 그래서 일주일치 선곡표와 노랫말을 노트에 적어 놓고서 밤마다 수화기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옆방에서 시끄럽다고 할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그런 정성을 공부에 더 쏟았다면 고시에 합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땐 부끄러움도 없이 그런 짓을 감히 저질렀다. 나는 본디 파토스가 부족한 사람이라 늘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었. 그런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 되다니. 사랑이란 무엇일까. 열정, 욕망, 소유, 지배 등등 다양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만, '변화'가 가장 어울리는 말 아닐까. 이런 짓까지 할 수 있게 변화시키는 것. 하지만 지금은 죽어도 그런 짓은 못 하겠는 걸 보면 사랑의 효력이 지속되는 기간이 아주 길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회사원이 다. 그리고 신입사원 연수 때 실제로 루시드폴을 만다. 라디오 부스에서 제3세계 음악을 열심히 소개하고 있던 모습이었다. 방송사에 다니는 보람을 그때 조금, 아주 -아--주 조금은 느꼈다. 와아 연예인이다 연예인, 연예인 실물을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야. 생각보다 훨씬 귀여우시네.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소위 '홍대병' 비슷한 걸 나도 앓고 있었나 보다. 나만 아는 가수를 열렬히 숭배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아티스트를 나는 알고 있다, 같은 시답잖은 걸 자랑스러워했다. 일부러 대중가요는 일절 끊고서 인디 음악만 찾아 듣고 홍대 메타복스(여기, 꽤 유명했는데 아직도 남아있나 모르겠다) 가서 중고 명반을 뒤적거리고 그랬. 그래서 몇몇 여자 동기들이 루시드폴을 알아보고서 환호성을 보낼 땐 괜히 기분이 나빠졌고, 남자 동기들이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야 하는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을 땐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 원, 루시드폴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참. 그 무렵 즈음에는 이미 충분히 유명한 가수가 되어 있었던 탓에 나만 아는 아티스트가 아니라서 안타까워했.


 요즘은 루시드폴의 음악을 잘 듣지 않게 되었지만 삼청동에 올 때마다 그가 종종 생각난다. 아마 그의 '삼청동'이라는 곡 때문일 게다. 우리 부부는 종로와 한옥을 좋아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이 동네 주변을 걷곤 하니, 루시드폴을 듣진 않지만 그를 떠올리는 일은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하게 된다. 삼청동은 그렇게나 자주 다녀서 익숙하다 생각함에도 발걸음을 살짝 다른 쪽으로 돌리면, 그 노래 가사처럼 낯선 길, 낯선 장면이 불쑥 나타나서 신기할 따름이다. 나의 시선에, 나의 기억에 전혀 담겨있지 않은 아주 새롭기만 한 장면들. 그러면서도 왠지 항상 봐 왔던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드는 장면들. 선데 그리울 수가 있.


 그리고 늦었지만 루시드폴에게 감사한다. 님, '오, 사랑'이 그리 어렵지 않은 노래라서 아내에게 그럴싸하게 불러 줄 수 있었습니다. 고음에 화려한 기교가 들어가야만 좋은 노래인 건 아니. 아내가 김범수나 박효신을 좋아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그렇다고 형님이 노래를 못한다는 건 아닙니다.


 어제는 퇴근하고 아내와 둘이서 소파에 누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예전에 연애하던 무렵 내가 밤마다 노래를 불러줬던 추억에까지 이야기가 다다랐다. 맞아, 그땐 그랬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씩 하고 웃으면서, 내가 노래를 그렇게나 잘 불렀어? 매일같이 듣고싶을 만큼? 하고. 그러자 아내가 킥 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노래를 잘 해서가 아니라, 남자친구가 나한테 이런 것까지 해 줄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껴보고 싶었어."                     




난 낯설은 의자에 앉아서

난 낯설은 거리를 보면서

난 낯설은 소식을 듣고서

난 낯설은 생각을 하면서


난 낯설은

바람이 지나가 버린 곳에 살아

조금도 변하지는 않았어

아직도 난

그대가 보내 준 마음, 소식 듣고 싶어

이런 내 맘 아는지


때론 쉴 곳을 잃어가도

넘어질 듯이 지쳐가도

아무 말 없이 걸어가리

그대 있는 곳으로

내가 있던 곳으로


난 낯설은

바람이 지나가 버린 곳에 살아

조금도 변하지는 않았어

아직도 난

그대가 보내 준 마음, 소식 듣고 싶어

이런 내 맘 아는지


때론 쉴 곳을 잃어가도

넘어질 듯이 지쳐가도

아무 말 없이 걸어가리

그대 있는 곳으로

내가 있던 곳으로


- '삼청동', 루시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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