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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12. 2020

자네, 집에 턴테이블은 있나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열여섯 번째

고생 끝에 구한 전람회1집 LP 초판본

Nikon FG-20

Zoom-NIKORR 35~70mm 1:3.3~4.5 Lens

Kodak Colorplus 200

2017년 6월



한떄 즐겨갔던 회현 지하상가 중고 LP숍 '리빙사'에서. 그땐 '일주일에 한 장'이라는 모토로 매 주말마다 들렀었다.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Fujicolor C200

2018년 6월



넥스트 1집 LP와 이승환 12집 CD. 이룰 수 없는 꿈으로만 남게 된 '마태승(마왕+서태지+이승환)' 콘서트

Rollei XF35

Kodak Gold 200

2019년 12월





 매년 가을 <서울레코드페어>에 들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중고 LP숍 몇 군데가 모여 조촐하게 열었는데 9년이 지난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행사로 발전했다. 몇 년 전부터는 페어 기간에 맞춰 한정반 LP도 판매하고 있. 이걸 사려면 대기표를 받고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1인당 구매 가능 갯수도 정해져 있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도 없다. 이제는 여기가 위 힙스터들에게도 소문이 나서 페어 기간 내내 5일장 시장통처럼 산인해를 이룬다. 즈음의 '그냥' 힙스터는 아이폰에 에어팟을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음악을 듣는다면, '진짜' 힙스터는 턴테이블에 LP를 돌려서 음악을 듣는다고 하더라. 故 스티브 잡스도 집에서는 mp3 파일 따위가 아니라 LP로 음악을 들었다고 하니까.


 그래서인가, 주변에서 나 말고도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는 젊은이들이 제법 많아졌다. 몇  전만 하더라도 "저는 일주일에 한 장씩 중고 LP판 모으는 게 취미에요."라는 말 하면 건 무슨 시대 흐름 역행하는 늙은이야, 라는 따가운 눈빛이 느껴는데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다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라서 음반 시장은 갈수록 쪼그라들지만 LP 판매는 오히려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요즈음엔 카세트 테이프로도 발매하는 음반이 있다 한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어깨뽕과 나팔바지가 길거리에서 다시금 보이는 것처럼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인가보다.


 재작년엔 언니네이발관 2집 재발매판이 올해의 한정반으로 나왔다. 오랜 팬으로서 이건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밴드의 최고 명반이 5집이냐 2집이냐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물론, 나는 자글자글한 기타 소리가 매력적인 '어제 만난 슈팅스타'가 수록된 2집 <후일담>최고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어쨌든 이걸 꼭 사야겠다 다짐했다. 그래서 행사장에 꽤나 이른 시각에 도착했다... 고 생각했지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세상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통로를 지나갈 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데다가 한정반 부스에는 벌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판 하나 사려지간히 기다려야겠구만 이거. 어쩔 수 없이 무려 '몇백 번' 대의 대기표를 받은 뒤 한참이나 줄을 서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행사장 근처를 지나가던 어르신 한 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신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가, 싶은 표정.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도저히 궁금증을 못 참 듯 어떤 청년을 붙잡고 물어보시는 거 아닌가.


 "자네, 집에 턴테이블은 있는기여?"


 20대 초반 대학생으로 보였던 그 남자애는, 뭐 그런 걸 물어보세요, 하는 뚱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그런 거 없는데요. 그냥 모으고 싶어서요."


 그렇구나. 음악을 듣기 위해서 LP를 사는 게 아니라, 선반 위에 모셔두고픈 마음에 살 수도 있구나. 이제 음악이라는 건 더이상 듣는 행위로서만 즐기는 취미가 아니게 되었다. 나는 여태껏 음악을 듣기 위해서 테이프를, CD를, mp3 파일을, 그리고 이제 다시 LP 판을 구매했었는데 요즈음의 세대는 달랐다. 그들에게 음악이란 어차피 스트리밍으로 듣는 거고, 물리적 형태의 음반이라는 건 듣는 용도가 아니라 소장하기 위한 만적인  같은 대상이었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그렇게 감각하기 위한 물성을 지닌 대상. 소장용으로 책을 사는 사람들이 뭔가 있어 보이는 하드커버의 두툼한 책을 선호하듯이, 소장용으로 물리적 형태의 음악을 사는 사람들은 기왕이면 눈에 더 잘 띄고 더 크고 아름다운 LP라는 매체를 선호겠다 싶었다.


 게다가 요즈음의 사람들에게 이 물건은 얼마나 더 신기할 것인가. 꼬마아이들 스마트폰의 수화기 모양 전화 어플이나 워드 프로그램에서 문서를 저장할 때 클릭하는 디스켓 모양의 아이콘의 유래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전 모른다고 한다. 역시나 젊은 세대는 LP라는 매체로 음악을 들어본 이 없으니 그들에겐 이처음 마주하는 새롭고 '힙한' 문물게다. 스터들에게 필수 소양인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취향이자 개성있는 소비 행태라는 걸 SNS에서 사진으로 자랑하기에도 딱이다. 그러니까 굳이 턴테이블이 없재생하지 못하더라도 무슨 상관이랴.


 처음으로 '나의 음악'이라는 걸 소유했던 때가 기억난다. 1992년의 어느 날이었다. 라디오를 듣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곡을 만났다. 그동안 전혀 들어본 적 없던 빠르고 신나던 노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였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복음이라도 영접한 양 환상적으로 들리던 그 음악을 어떻게든 내 걸로 만들고 싶었다. 하루는 날을 잡아 전축(오디오라고 표현하면 맛이 살지 않으니 '전축'이라고 써야 한다) 앞에 정자세로 앉은 후 공테이프를 넣고 녹음 버튼에 손가락을 올린 채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오기를 마냥 기다렸다. 손목이 저릴만큼 한참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노래가 나오는데, 이런, 전주 부분에서 DJ가 쓸데없는 소개 멘트를 치는 바람에 녹음 실패. 두번째는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광고가 나오는 바람에 또 실패.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온전한 노래 한 곡을 녹음하는 데 성공했다. 고생 끝에 만든 나만의 녹음 믹스 테이프를 늘어날 때까지 무던히도 틀어댔더랬다. 훗날에는 차곡차곡 아껴 모은 용돈으로 정품 테이프를 사거나, 설 추석 명절 덕분에 주머니가 두둑해진 날엔 테이프보다 비싼 CD를 큰맘 먹고 지르기도 했다. 음반을 사서 집에 돌아오는 길엔 얼마나 설렜는지. 얼른 집에 가서 들어봐야지, 혹시 음반에만 들어있는 히든 트랙이 있을까, 부클릿엔 어떤 내용들이 들어있나, 땡스 투에는 어떤 이름들이 적혀 있을까 등을 기대하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건 렇게 수고를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이제는 분명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음악을, 아주 낯설고도 새로운 음악을, 클릭이나 엄지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손쉽게 들을 수 있게 됐다. 평생 가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머나먼 이국에서 노래하는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까지도 방구석에 편히 누워서 찾아 듣는 시대. 음악뿐만이 아니라 영상까지도 덤으로, 그것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스포티파이와 유튜브엔 없는 게 없다. 'What a wonderful world'가 아닐 수 없다. 지만 왜 음악 듣는 재미는 예전 같지 않을까. 예전보다 많이 듣긴 하는데 기억나는 곡은 별로 없다.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래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보는 일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됐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Easy come, Easy go' 라더니 그래서일까. 아직까지 여름 기운이 남아 있는 따가운 가을 햇볕 아래 한참을 줄 서 있으면서 요즈음의 음악 청취 세태에 대한 상념에 빠졌던 날이었다. 


 그나저나 줄이 너무 길다 정말. 어째 매년 이러냐. 요즘엔 힙스터들이 너무 많다.






 언니네이발관 최고의 앨범은 2집이 아니라 5집 <가장 보통의 존재>이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섭섭해할까봐 사진 몇 장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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