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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17. 2020

(거의 19금) 민박집에서의 하룻밤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열일곱 번째

요즘 세상에 민박집이라니
햇살에 반짝이던 윤슬이 눈부셨던 아침 통영 바다
여름 바다 빛깔이 청량했다. 서해나 동해와는 또다른 남해안 거제의 바다색

Canon QL17 g3

Canon Lens 40mm 1:1.7

Fuji c200

2019년 7월                                         




 거제도 어느 골목을 걷다가 정말이지 오랜만에 민박집 마주쳤다. 아직도 민박이라는 게 남아 있구나. '민 박'이라고 크게 쓰여진 글 아래 전화번호도 찍혀 있었다. 저런 데서 잠을 자 본 게 대체 언제적었는지. 예약해 둔 숙소를 취소하고 당장 민박집 번호로 전화를 걸고 싶었는데 참느라고 혼났다. 우리 숙소가 제법 비쌌던 탓에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내 안엔 아직까지도 민박집, 혹은 민박집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라진 '옛 것'에 대한 아련한  같은 게 남아있나보다.


 우리 세대보다는 조금, 아니, 많이 앞 세대에서나 있었을 법 한 긴 한, 민박집을 보 이제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풋풋한 퍼스 커플 한 쌍머릿속으로 상상하게 된다.






 사귀고 나서 처음으로 둘이서만 온 여행. 의도치 않게, 혹은 둘 중 한 명의 치밀한 의도로 인해 마지막 배 편이 끊기고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아침 첫 배 시간까지 밤을 함께 보내야 한다. 원래 이런 섬의 배 편은 누굴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일찌감치 끝나기 마련이다. 노숙을 할 순 없으니 근처 민박집을 찾아 들어서는데 하필이면 방이 딱 하나밖에 없다. 틀에 박힌 식상한 대사처럼 주인집 아주머니는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고, 다른 집은 빈 방이 아예 없 거라는 말을 한다. 에 열쇠 꾸러미를 들고 까딱거리면서.


 "어쩔라우, 하나 남은 방이라도 주까?"


 "아이 참... 이러면 안되는데..."


 정말 안되는데, 러면 큰일인데, 라는 말을 반복하다 어쩔 수 없이 쭈뼛거리면서 방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가는 연인. 한 방에서 둘이  밤을 보내는 건 처음이라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흠, 목에 뭐가 걸린 것도 아닌데 괜히 헛기침이 나온다.


 옷 갈아 입어야 되니까 뒤돌아있어. 보면 안돼. 어찌저찌 몸을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 이불을 펴고서 잠을 청해본다. 가운데에 선을 긋고 여길 넘어오면 절대 안돼, 라고 단단히 다짐했지만 야심한 시각 청춘 남녀가 한 방에 있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불을 끄고 눈을 억지로 감았지만 잠은 도무지 오질 않고, 왠지 숨 몰아쉬게 되고,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침을 계속 삼키게 되고, 팔다리의 솜털이 일어나고,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데 볼은 점점 발갛게 물들어간다. 남자는 아무래도 잠이 오질 않아서 두번 세번 자꾸만,


 "자니...?"


 하고 말을 걸어본다.


 "아니. 넌 왜 안 자...?"


 "모르겠어. 잠이 안 와. 우리 얘기나 좀 할까?"


 별 의미없는 말을 두서없이 주고받는 남과 여.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밤은 아직도 길다. 웃고 떠들며 보냈던 낮과는 달리 밤의 대화는 이상하게도 툭툭 끊어져서 이어지질 못한다. 대화 사이의 침묵, 밀도 높은 고요함 속에 꿀꺽 하고 마른 침 삼키는 소리는 왜 이리 크게 새어 나오는지. 기침과 가난과 어두운 밤 침을 삼키는 소리는 숨길 수 없는 것. 이제는 어둠이 눈에 익어  없는 부끄러운 시선은 서로의 눈빛을 슬몃 스쳐 지나가면서 미약하게 떨린다. 결국 참지 못한 남자가 용기를 내 선을 넘어 손을 뻗는다. 여자가 흠칫 놀란다. 왜 그래, 그어 둔 선 넘지 않기로 했잖아. 아니, 정도는 괜찮잖아. 진짜, 약속할게.


 "우리, 이렇게 손만 잡고 자자."                                         


 그런데 잡고있는 손이 무척이나 뜨겁다. 겨울이었으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 보일 만큼. 장이 손으로 옮겨기라도 한 듯 팔딱팔딱 뛰는 숨이 맞잡은 손을 통해 느껴진다.


 "너 왜 이렇게 맥박이 빨리 뛰어?"


 "내.. 내가? 아니야. 그냥 보통인데. 평소에도 나 원래 그, 그래. 엄청 건강하지."


 여자가 픽 하고 웃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문득 남자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살짝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이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복어 같기도 하. 무언가 참기라도 하듯 인상을 쓴 채 눈을 꾸욱 감고있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얼굴을 가까이로 들이밀어 본다. 이마, 눈, 코, 입, 목울대까지 하나씩 자세히 뜯어보니 참 그럴듯하다. 새삼 얘가 이렇게 잘생겼었나. 래서 내가 좋아했나.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그런 건가. 한참을 감상 아닌 감상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갑자기 눈을 뜬다. 예고도 없이 서로의 눈빛이 날카롭게 마주치자 헉, 하고 둘 다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킨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둘은 입을 맞췄다. 그어놓은 선은 이미 까맣게 잊은 지 오래. 달콤한 입맞춤은 길게 이어졌다. 이제 여기서 그만해야 할까, 아니, 핸들이 고장난 트럭처럼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입술만 마주치고 그만 돌아서기엔 너무나도 아쉽다. 가지런하고 하얗던 치아도, 나를 향해 메롱 하고 쏙 내밀던 조그마한 혀도 느껴보고 싶다. 남자가 여자의 입 속으로 조심스레 혀를 밀어본다. 여자는 순간 움찔했지만 자신을 휘감아오는 두툼한 그것이 왠지 밉지 않다. 이제는 바닥의 선도 수줍음 따위도 모두 잊어버리고서 정신없이 서로의 혀를 탐한다. 스치고 물고 밀었다가 아 당기도 하이리저리 벼대고. 로의 타액을 맛보고 교환하는데, 하아, 보일러를 틀지도 않았는데 방이 너무 더운 것 같다. 덥다 못해 뜨거워서 살이 데일 것 같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바라고 둘을 가지면 셋을 원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혀로 만족하지 못한 남자의 나쁜 손은 여자의 얼굴을 쥐고 있다가 목덜미를 쓰다듬고 어깨를 지나 가냘픈 팔과 잘록한 허리를 스치더니, 어느샌가 그녀의 봉긋한 가슴을 탐한다. 한없이 부드럽고 말랑하고 탄력있으면서도 왠지 마음이 포근해지는 그 곳. 남자들은 왜 가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걸까. 여하튼 마침내 여기까지 왔구나. 밤새도록  지고 싶어. 감동이라도 한 듯 그의 손이 파르르 떨다. 여자는 생각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아니, 돼, 아니, 안돼, 아아, 네 손길이 닿는 모든 곳이 너무 짜릿해, 미치겠어. 내 몸은 그동안 흑백이었는데 네가 만지는 곳마다 환한 컬러 TV 색깔처럼 새로 칠해지는 느낌이야. 여자도 남자의 등을 와락 껴안는다. 운동이라도 했는지 크고 넓고 단단이 느껴진다. 그리고 얇은 여름옷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몸은 마치 불덩어리같이 뜨겁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다가,


 "하윽...!"


 참고 참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앙다문 입술 사이로 비집어나오는 신음 소리. 100미터 달리기 경주의 시작 총소리라도 되는걸까. 그 소리를 신호로 둘은 정신없이 성급하게 본능적으로, 아주 거칠게 서로의 옷을 찢듯이 벗기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에 그 어떤 장벽도 장애물도 없이, 그러니까 얇은 천 따위도 하나 없이 너의 모든 걸 오롯이 그대로 느끼고 싶는 듯. 눈 깜짝할 새,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 그대로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 됐다. 정말 달리기라도 한 듯 숨을 마구 헐떡거리면서. 불과 몇 분 전만 하더라도 그어놓은 선 너머 손을 잡는 것도 조심스럽고 부끄러웠었는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건지. 


 창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어스름한 달빛 아래 벌거벗은 남녀는 앞으로 다가올 잊 못할 밤에 대한 기대와 흥분,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으로 인해 떨고있다. 그리고 이어서...


(후략. 아무래도 여기가 성인 사이트는 아니니까 더 큰일 나겠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병헌과 이은주가 보내는 서툴지만 사랑스러운 하룻밤 장면이 떠오르는, 그런 19금 이야기를 재미나게 고 싶었는데 쉽지 않네. 이만 여기까지 할게. 들어보니 어때? 거제도 어느 민박집을 지나가며 신나게 떠들던 이야기를 한참 듣던 아내의 얼굴이 그리 발그레하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성인소설 작가의 재능은 나에게 없는 듯. 많이 읽어보긴 했는데, 읽는 것과 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인가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책은 대체 어떻게 쓰는걸까.


 그리고, 요즘 세상에 누가 런 연애 하겠나 싶다. <2018년 청소년 성관계 경험률>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학생 중 5.7%가 성관계 경험이 있으며, 관계를 시작한 평균 나이가 만 13.6세라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이르면 초등학생 때에도 첫경험을 한는 거다. 조금 더 자란 청춘들은 사귀면 같이 자는 게 당연하다 생각한단다. 밤새도록 만 잡고 가슴 떨려하며 긴 밤 지새우던 옛날 사람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나 모르겠다. 쉽게 만나고, 쉽게 사랑한다 말하고, 쉽게 관계 맺고, 쉽게 헤어지고, 또다시 쉽게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지금의 시대는 예전보다 아진 걸까 나빠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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