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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20. 2020

형편이 어려워도 꽃 화분 하나 없이 살 순 없다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열여덟 번째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올라가던 길에 있던 골목의 꽃화분들
매 끼니 때마다 먹었던 그릭 요거트
산토리니 이아 섬의 아름다운 풍경

Samsung af slim zoom 70s

Samsung zoom 35-70mm auto macro lens

Fuji 記錄用 필름 ISO 100

2018년 9월




 그리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릿속으로 상상의 도화지를 펼쳐 그림을 그려본다. 영화 <맘마미아>에서 봤던 근사한 풍경들 이제 곧 내 에 칠해 볼 수 있겠지. 파아란 하늘과 바다, 와 대조되는 새하얀 색의 건물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혹은 맘마이아의 도나처럼 유쾌하고 낙천적인 사람들까지 모두 나만의 풍경화에 담을 수 있을 거야.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 늘 그렇듯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기사 그동안 대부분의 여행들은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에 설렘의 농도가 가장 진했다.


 한편으로는 걱정다.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경기 침체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취업준비생일 때 상식책에서 지겨울 만큼 자주 봤던 단어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가 오랜만에 기억났. 경제 위기에 빠졌던 유럽 국가들. 그때로부터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으니 그리스 경제 사정은 조금 나아졌으려나. 리스의 문제는 당시 보수 언론에서 줄곧 이야기했던 것처럼 과잉 복지 때문인지, 정치인들의 부패나 포퓰리즘, 경제 관료들의 정책 실패에 의한 건지, 혹은 유로 단일 경제권이라는 시스템에 내재한 근본적인 불안정성 때문인지, 딱 하나어서 이게 원인이었, 라고는 못하겠다. 실한 건 열심히 일하던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것.


 멋진 풍경들과 유적들에 감탄하면서 길을 걷다가도, 걱정했던 바와 같이 아테네의 번화가에서도 문을 닫은 가게들 곳곳에서 마주 수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먼지 쌓인 바닥이 그대로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상점들. 새벽녘에 거리를 걷다보면 마주치게 되던 무심한 표정의 노숙자들도. 관광지로 유명한 산토리니 섬에여기저기서 'for sale'이라는 팻말이 걸린 빈 건물들과 한자가 쓰여진 건물들도 보였다. 여전히 그리스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여기에도, 음모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치 IMF 때 폭락한 한국의 자산을 양털깎기 려고 마구 매수하던 해외 투기 자본처럼 중국 자본이 깊숙하게 침투해 있구나 싶었다.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건 어느 집, 어느 골목을 걷더라도  놓아 둔 ' 화분'을 마주칠 수 있었다는 이었다. 예쁘게 잘 길러서 바깥에 내놓은 아름다운 화분들.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지친 얼굴에 잠시나마 미소를 깃들게 해 주던 화분들이었다. 단순히 화분 몇 개일 뿐인데 쩌면 저렇게나 우아한 분위기의 예술 작품들처럼 느껴지는지. 단지 화분뿐만 아니라, 어설프게 몇 단어 공부해 간 그리스말로 떠듬떠듬 '에프가리스(감사합니다 ; '토'에 악센트를 줘야 한다)'라고 말하면 반갑게 웃으며 격하게 반겨주던 사람들 살갑게 느껴졌다. 너 우리 그리스말 좀 하는구나, 하는 얼굴로 웃어주던 사람들이었다. 하도 에프가리스토 외치고 다녔더니 나중에는 아내가 놀리기도 했다.


 "네가 무슨 에프가리 앵무새? 말 끝마다 에프가리스토, 자꾸 가리스토래."


 그렇게 그리스는 형편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꽃화분 하나 정도는 키우고, 낯선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미소를 지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아직 남아 있는 곳이었. 여전히 사람다운 삶을 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 당장 한 끼 먹을거리가 없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언가가 . 생존과 낭만, 그 사이 어딘가 즈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영화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는 제 한 몸 뉘일 집 마련하지 못해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면서도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개비 담배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남들 비웃음과는 상관없이 본인이 좋아하는 거니까. 이탈리아 사람에겐 커피 한 잔이 필수품이다. 하지만 마저도 마시지 못할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페에서는 '소스페소'라는 이름, 알지도 못하는 이를 위한 한 잔의 나눔 커피 값을 대신 내주 문화가 있다. 우리네 옛 남산골 선비들은 솥에 하얗게 거미줄  채 배를 곯는다 하더라도 '공자 왈 맹자 왈' 책 읽기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저마다 자기 삶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먹고사는 것 외에도 꼭 붙잡고 있는 최후의 보루, 살아가는 데 있어 기하지 못하는 수적 향이라는 게 하나씩은 있는 법이다.


 에게도 그런 게 있을까. 단지 직장생활 꾸역꾸역 하면서 밥 굶지 않고, 노심초사 주식이나 아파트값이 올라가길 바라며 사는 것만으로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 건 아. 부르면 만족스러운 하품을 하며 듯한 자리에 드러눕는 한 마리 돼지처럼 그저 먹고사니즘에 빠져 어쩌면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사는 게 힘들더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꾸준히 들고 있으면서 살가는 중이에요, 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걸까.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피동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곳 사람들처럼 예쁜 꽃 화분이라도 하나 길러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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