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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22. 2020

제 꿈은 재벌인데예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열아홉 번째

사진 찍기 싫다고 고개를 휘휘 저으시는 탓에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어머니 사진 한 컷

Canon QL17 g3

Canon 40mm 1:1.7 lens

Fuji C200

2019년 5월




 "엄마는 사진 찍기 싫다. 얼굴에 주름이 짜글자글해 갖꼬 인자 몬 봐 주긋다."


 카메라를 들이밀자 어머니께서 손사레를 치며 고개를 돌리신다. 작은 실랑이 끝에 셔터를 눌렀지만 결국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사진만 한 컷 나왔다. 찍으나마나 한 사진을 찍는 바람에 또 필름 한 컷을 날려 버렸다. 인화한 사진을 한참을 쳐다봤다. 그러고보니 울엄마도 많이 늙으다. 얼굴이며 목에 어느덧 깊이 자리잡은 주름살이며, 염색을 했음에도 어쩔 수 없는 희끗한 머리카락이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는 걸 보니 정말 할머니가 다 되셨.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린 걸까.


 벌써 30년도 전, 코 찔찔 흘리던 꼬마아이였을 적 소원은 한결같았다. 그 소원이는 게 남북 분단 시대를 살아가던 남한의 반공사상 투철한 아이처럼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아니었고,


 "재벌이 되고 싶은데예!"


 어른들이 아이를 보면 늘상 어보는 너는 커서 뭐가 되고싶니, 라는 물음에, 꼬마아이가 어디서 그런 단어를 배웠는지 '재벌'이 될 거라며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내가 정말 그런 단어를 말했다는 것도 잘 기억나지 않을만큼 어릴 때였. 어른들은 내 대답을 듣고서 거 참 맹랑한 녀석일세, 라며 웃고 한다.


 "기 머라카노. 재벌이 뭔지는 아? 얼라 새끼가 거 참말로 웃기다이."


 "압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요. 지는요, 우리집에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예."


 어른들이 웃으면서 다시 던진 물음에 나는 그 단어의 뜻을 잘 알고 있다는 양 또박또박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하루빨리 재벌이 돼서 돈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체 돈이 왜 많았으면 하냐고 재차 돌아오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돈이 음청 많으면 엄마가 일 하러 안 나가도 되잖아예."


 어릴 때 우리집은 맞벌이 가정이었다. 부모님께서 회사에 일하러 나가시면 하루 종일 나와 3살 터울의 동생, 이렇게 둘이서만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놀이터를 뛰놀고 동화책을 읽거나 TV를 보고 라디오를 듣기도 하고 냉장고를 뒤져 간식을 먹거나 하면서 무척 긴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제서야 비로소 밤이 찾아다. 전화국에서 교대 근무로 일하셨던 어머니는 야근이 잦으셨다. 기다리지 않았던 밤은 기어코 왔으나 직도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꾸벅꾸벅 반쯤 잠긴 눈으로 늦은 시각까지 잠을 쫓아보던 날이 많았다. 래도 내가 형이니까 동생보다는 조금 더 오래 버티긴 했지만, 결국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곯아 떨어지곤 했다. 꿈에서라도 만나요, 엄마, 하고 얼거리면서.


 나는 엄마, 아빠, 동생, 나 이렇게 4명이 '함께' 매일 저녁을 먹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우리집에 돈이 많으면 엄마가 돈을 안 벌어도 되고, 그럼 같이 저녁도 먹고, 밤에도 집에서 같이 잘 수 있잖아. TV에서 얼핏 봤었던 '재벌'이라는 돈이 많다고 하던데 그럼 내가 재벌이 되면 되겠다. 이제부터 내 소원은 돈이 많은 재벌이야. 벌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랬던 시간이 흘러, 어머니일을 그만 두전업주부 생활을 하신 지 한참 됐고 연세가 드셔서 얼굴에 주름살이 패였. 나도 덩달아 나이를 먹서 여느 아저씨처럼 배가 불룩하게 나왔다. 많이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나잇살을 먹어서 이런 거라는 아저씨같은 핑계를 대면서. 그리고 재벌이 되겠다는 꿈은 당연히도 이미 버린 지 오래다. 그런 꿈 따위 이제는 필요 없고, 그저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 앉아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한 요즈음이다. 그토록 바라던 재벌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어릴 적 소원은 하나 이룬 셈이다.


 그나저나. 어무이, 예쁘게 찍어 드릴테니껜 이짝으로 얼굴 좀 돌려 보이소. 거 참말로, 뭐가 별니까, 아직도 이쁘기만 하시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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