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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06. 2020

88 올림픽을 모르는 세대, 그리고 꼰대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열네 번째

벌써 재작년 가을,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던 '88 올림픽과 서울'전에서

Samsung af slim zoom 70s

Samsung zoom 35-70mm auto macro lens

Fuji 記錄用 필름 ISO 100

2018년 10월




1.                                                            

 회사에서 처음으로 혼났던 때가 기억난다. 자랑은 아니지만, 신입사원임에도 회사에 제법 연착륙했다고 자평했다. 업무 성과도 나쁘지 않았고, 크게 실수한 것도 없고, 누구보다 일찍 나와서 남들보다 늦게 퇴근하는 등 근태도 성실했으니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출발이구나 싶었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힘들다더니 별 거 없네. 알고 보니 나는 뼛속까지 회사원 체질이었던 게 아닐까 했다. 그러던 중, 부서원들과 점심 먹으러 가서 식당 테이블에 앉아있던, 지극히 평범한 어느 날의 순간이었다.  


 "야 인마, 자리에 앉으면 막내가 잽싸게 수저를 세팅해야지 뭐 하고 있어!"

 부장이 대뜸 나한테 소리를 지르는 것 아닌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먹은 욕이 밥상에 수저를 빨리 놓지 않아서라니. 업무 과실도 비위도 근태도 아닌 고작 수저, 그러니까 숟가락과 젓가락. 황당하면서 억울다. 내가 소위 요즘 들처럼 되바라진 것도 아니고 그 정도 눈치가 없을 리가. 막내의 위치를 충분히 자각하면서 식당에 갈 때마다 알아서 척척 부장에서부터 차장, 그리고 바로 위의 선배까지 차례대로 신속 정확하게 수저를 놓았었다. 수저뿐이랴. 방석도 놓고 외투도 받아서 옷걸이에 걸고. 그날 어쩌다 보니 한 번 늦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이후로도 그 부장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꼰대'의 전형을 가감 없이 펼쳐 보였는데, 괜히 그 만행들을 활자로 옮겨놓다 보면 그때의 나쁜 기억들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오를까 하여 여기서 이만 줄이고 싶다.

 그 양반께서는 그날 이후로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종종 나를 볼 때마다 그때 얘길 한다. 담배를 하나 꼬나물고서 내가 인마, 너 선배들한테 수저 놓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회생활 하는 법을 기초부터 가르쳤어. 천둥벌거숭이 같던 놈을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개념이라는 걸 제대로 탑재시켜 줬다 이거야. 이런 말 같잖은 말을 늘어 놓는다. 들으면서 소리없이 기함한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맞습니다, 부장님.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 건 부모님이지만 저를 사람 만들어주신 건 부장님이라서 아주 감사할 따름입니다. 속으로 하는 생각과는 달리 겉으로는 는 표정으로 적당히 기분을 맞춰 준다.

 이미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지 오래돼서 멀리서나마 그의 소식을 전해 듣곤 한다. 썩 듣고 싶지는 않지만 여전한 꼰대질로 인한 자자한 악평이 절로 귀에 흘러 들어온다. 심지어는 작년에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땐 부서 여직원들을 한데 불러놓고 본인은 미투 같은  반대한다, 조직원들의 화합을 저해하는 행위라서 문제다, 우리 부서 여직원들은 그런 몹쓸 짓에 감하는 거 아니지, 라는 말을 당당하게 내뱉었다고 한다. 그걸 들으면서 할 말을 잃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눈치를 보는 막내는 달리 거리낄 것 없는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 나도 벌써 10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이제는 식당에 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수저를 재빠르게 놓는 일 따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후배들이 내 수저를 놓아주는 일 따위를 시키지도 않는다. 각자 본인 수저는 스스로 알아서 챙길 일이다. 그런 짓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2.

 내가 있는 부서는 반기마다 회계 전표 문서 편철 작업을 한다. 그런데 올해는 예산 절감을 한답시고 아르바이트생을 쓸 비용이 모두 잘렸다. 대신 회사에 파견 나와있는 공익근무요원들을 지원받게 됐다. 열 명 남짓한 남자애들이 부서로 우루루 몰려왔는데 다들 앳되다. 나이를 물어보니 다들 스무살 남짓이다. 그야말로 '90년대생이 온다'였다. 열 몇 살씩이나 어린 친구들과 일하는 건 참말이지 오랜만이다. 아니, 처음인 것 같다. 다들 불러 모아 놓고 오늘 해야 할 일을 가르다.


 "근데 그걸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


 그동안 해 왔던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나니 곧바로 돌아온 반응이었다. 시키면 그저 예에 예에, 하겠거니 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반문이다. 그리고 저마다 왜 그런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하면 좀 더 나은 방법이지 않은지, 등의 의견들을 활발하게 내보이길래 그래, 그렇게들 해 봐라 했더니, 알아서들 쑥덕거리더니 각자의 역할, 업무 데드라인과 보고 방식들을 정해서 나에게 알려주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일을 시작했다. 사무실 옆 비어있는 회의실에서 일을 하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 지 왁자지껄한, 그리고 줄임말이 난무해서 우리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들을 서로 주고받고, 종종 블루투스 스피커를 크게 켜서 마치 노동요처럼 음악을 듣기도 하더라. 어느 날엔 한 녀석이 가를 쓰고 안 나왔길래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건지 물어보니 여자 친구와 기념일이라면서 놀러갔단다. 나 원. 다들 스펙 좋고 유쾌하고 매사에 거없는 20대들이었다.  


 작업이 모두 끝나고서 수고에 보답하는 밥을 먹다. 당연히도 이 아이들은 내 수저를 놓아주진 않았다. 각자 수저를 놓은 뒤 밥을 먹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축구 이야기가 화제로 나왔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과 안정환으로까지 대화가 이어졌는데, 이 친구들이 그때의 월드컵을 기억하고 있나, 기억하지 못하냐로 서로 서열을 가리고 있다.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갔던 그때의 경기들을 기억하고 있으면 90년대 초반생, 그 순간을 라이브로 접하지 못하고서 케이블 TV 재방송에서나 안정환의 반지 키스 세리머니를 봤다면 90년대 후반생 정도로 나뉘었다. 우리 80년대 세대도 이런 기준이 있다. 88 서울 올림픽을 기억하고 있나, 기억하지 못하냐로 어렴풋이 상대방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나저나 젊은 친구들, 너네 혹시 굴렁쇠 소년이라고 아니? 실은 나도 그때 고작 '다섯 살 인생' 시절이라 굴렁쇠 형님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80년대 초반생이라면 기억할지 모르겠다만.



3.

 하지만 90년대생이라고 해서 마냥 즐겁지만은 않더라.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슬쩍 엿봤던 날이 있었다.


 어느 날 프리랜서 Y, 역시나 20대인, 그 친구가 부서로 찾아왔다. 그는 간접비가 포함된 외부 수탁기관의 지원금으로 진행하는 사업에 참여하던 연출이었다. 간접비라는 건, 이 사업에 참여하는 정규직 인력들의 급여를 일부 보전해주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정규직, 부장 2명과 차장 1명의, 급여 이체 확인증이 필요해서 가 찾아온 거였다.  


 "이 사람들, 월급 엄청나게 받아가죠? 하는 일도 없을 텐데."


 어르신들의 월급 내역을 뽑면서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여긴 사기업이 아니니까 나이가 들어도 잘리지도 않고 호봉은 매년 성실하게 꼬박꼬박 오르니, 하는 일에 비해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료를 건네면서 Y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어봤다.


 "이런 월급을 받게 되면 뭐 하고 싶어요?"


 "제 월급이 이 정도면, 혼자 살면서 한 달에 5백씩 적금 들었을 것 같은데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소 놀랐다. 아마도 그 돈이면 해외 여행을 간다거나, 차를 한 대 뽑는다거나, 맥북이나 카메라 같은 걸 사겠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고작 적금이라니. 미래가 불안한 비정규직 청년이라서 그런걸까. 지금의 젊은이들은 거창한 꿈이라는 걸 가지기 힘든 세대구나 싶었다. 농담이랍시고 월급 이야기를 재미삼아 던졌던 내 모습이 순간 부끄러워졌다. 나와는 아주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이 세대에게 왠지 모를 부채 의식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데 Y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니 분명 여자 친구가 있던데, 결혼은 아예 고민조차 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그러네. 이 친구 이거 봐라.



4.

 그나저나 꼰대와 90년대생이 공존하는 이 회사에서, 나를 비롯한 우리 80년대생 동기들은 매한 어드메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구 세대도 신 세대도 아닌 중간에 낀 세대 같은, 이른바 경계인이다. 20대 아이들처럼 나의 삶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그만큼이나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생활에도 녹아들어야 한다고 50대처럼 생각하는 세대. 그래서 마냥 선배들 편을 들지도, 회사를 시원하게 박차고 나가지도 못하고서, 이렇게 꾸역꾸역 밥벌이를 위해 회사를 다니고 있나 보다.


 물론, 우리 나이30대 직장인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은' 아파트 대출금 상환 때문에 계속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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