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스물다섯 번째
그곳은 3층짜리 빨간 벽돌집이었다.
봄에는 벽돌보다 더 빠알간 장미꽃이 담장 위에 예쁘게 피었더랬다. 날이 좋을 땐 옥상에 올라가서 평상 위에 앉아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해가 질 때까지 고기로 양껏 배를 채우고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우면 밤하늘에 둥실 걸려있는 달이 어찌나 낭만적이던지. 서울 하늘이라서 잘 보이진 않지만 미세먼지 없는 날 눈을 가늘게 떠 집중해서 바라보면 간혹 반짝거리는 별도 몇 개 만나보는 행운도 누렸다. 게다가 그 집에서는 거리가 제법 멀어서 조그맣게 보이긴 했지만 한강 반포대교의 분수쇼도 감상할 수 있었다.
내친 김에 마당에는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어서 깻잎이며 마늘, 감자도 심어서 기르며 자급자족의 삶도 꿈꿔볼 수 있었을 것 같고.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을 필요 없이 집 안을 전력질주로 마구 뛰어다녀도 층간소음 피해를 호소할 아랫층 사람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반갑게 왈왈 짖어주는 강아지도 기를 수 있고. 소음이 웬말이랴, 내 마음대로 벽에 못질을 하거나 바닥에 망치질을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다.
옆집엔 오랫동안 알고지낸 동네 친구가 살고 있어서 적적할 땐 같이 술잔도 기울일 수 있을 테다. 어쩌면 너네 딸하고 우리 아들하고 결혼시키는 거 어떠냐는 실없는 농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 따위는 1주일, 아니 2주일에 한 번 구워 먹을까 말까다. 준비하고 정리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모른다.
겨울엔 숨 쉴 때마다 입김이 허옇게 나올만큼 춥고 벽과 창 틈 사이로 살을 콕콕 찌르는 찬바람이 스미는데 이런 걸 너는 평생 경험이나 해 봤으려나. 반대로 여름에는 찜통이 따로 없다. 한낮엔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쇼핑몰 같은 곳에 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어야 한다. 그렇다고 보일러나 에어컨을 항상 돌리기엔 가스비, 전기료 폭탄이 어마어마하다.
가끔 비가 새거나 벽에 곰팡이가 피거나 하수구가 막히기도 하고 전기가 끊어지거나 전등이 나가거나 하는데 그때마다 네 손으로 일일이 직접 고칠 수 있을까? 네가 철물점 사장님도 아니고 그런 손재주가 있을리 만무하다. 지난번에 우리집 대문 페인트칠하는 거 도와주느라 힘들었지. 근데 그 짓을 매년 하지 않으면 녹이 슬어서 문짝이 떨어져 나간다.
경비실이 있는 게 아니라서 창문으로 도둑이 들까봐 무섭고, 부재중일 때 택배를 대신 받아 줄 사람도 없다. 차고가 없는 집이라서 근처 길가에 차를 대면 5분도 안 돼서 차 빼라는 전화가 여기저기서 빗발친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면 이 모든 시름과 번뇌에서 해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