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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pr 06. 2020

한옥, 아니면 단독주택이라도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스물다섯 번째

한옥으로 지은 부암동 '청운문학도서관'
공덕동 한옥 펍 '사심가득'
삼청동 한옥카페 '연'
북촌 카페 '대충유원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전경

Canon QL17 g3

Canon 40mm 1:1.7 lens

Kodak Colorplus 200 / Fujicolor C200

2018년 12월 ~ 2019년 7



북촌 한옥마을에서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Kodak UltraMax 400

2019년 4월



성북동 '수연산방'에서 창호지 문 너머를 바라보며

Nikon FG-20

Zoom-NIKORR 35~70mm 1:3.3~4.5 Lens

Kodak colorplus200

2017년 6




 아직 대학생일 때, 우리 과에 미국에서 오신 외국인 교수님이 한 분 계셨다. 미국 국적의 외국인 교수라니.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이질적인 존재였다. 에이, 요즘 같은 시대에 어느 대학교엘 가더라도 외국인 교수 한둘쯤은 으레 있기 마련이지, 영어로 하는 수업들도 많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이야, 라 핀잔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국어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러니까, 영어도 불어도 독어도 아닌 국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걸 연구하고 국어 교사들을 길러내는 학문 말이다. 대관절 외국인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말이 되는건지. 그것도 수능 국어 영역에서 만점 혹은 한두 개 밖에 틀리지 않은 학생들을 앞에 앉혀 두고. 이건 마치 내가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 나라 예비 쉐프들을 불러 모아 놓고서 '파스타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모양새 아닌가. 강의 시간에는 설 추석 명절 때마다 으레 TV에서 볼 수 있, 어눌한 한국말로 장기 자랑을 보이고서 조롱인지 칭찬인지 모를 박수갈채를 받는 이방인모습 비슷한 걸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어디 반이 얼마나 한국어를 잘 하고 잘 가르치는지 한 번 두고 보자, 는 곱지 않은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한국어를 잘 하셨다. 그냥 잘 하는 게 아니라 기가 막히게 잘 하셨다. 비단 한국어뿐이랴. 알고 보니 한국으로 넘어오기 전엔 일본 대학에서 영문학과, 일본어와, 한국어를 가르치셨다고 한다.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언어 쪽으로는 그냥 난 사람이던 거다. 게다가 한국에 계실 땐 여느 한국 사람 못지 않게 한국 문화, 그 중에서도 특히 한옥을 사랑하셨다. 후에는 인왕산 아래 서촌 체부동의  한옥집을 한 채 매입한 뒤 그곳에 살면서 종로와 서촌과 한옥 문화의 지킴이로 활동하셨다고도 전해 들었다. 서촌 한옥에 사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라니. 이쯤 되면 내가 한국인인지 교수님이 한국인인지 슬슬 헛갈 노릇이다.


 교수님의 능력도 성격도 취향 부러운 것들이 참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한옥에 산다는 게 너무나 부러웠다. 나도 한옥을 무척 좋아해서 여자친구와 함께 거의 매 주말마다 삼청동, 인사동, 옥인동, 계동, 익선동 같은 동네를 밤낮으로 돌아다니곤 했으니까. 나도 언젠가는 한옥에 살어리랏다. 청산에 멀위 다래, 까지는 아니고, 기와 지붕과 처마, 나무 기둥과 흙벽, 그리고 겨울이면 뜨끈한 구들장이 있는 그런 집에 정말 살고 싶었다. 지금 살고있는 닭장 같이 비좁고 다 비슷한 꼴의 네모난 양옥 건물 말고 근사한 한옥에서 살아 봤으면.


 나는 일생을 아파트에서만 살았기에 그런 바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진주의 작은 주공 아파트에서 생의 처음을 시작했고 이후 인생 처음으로 이사 간 곳도 아파트, 이후에 머니가 아버지 몰래 청약에 성공해서 분양받아 이사 간 곳도 또 아파트, 서울에 올라와서 살았던 학교 앞 하숙집도 아파트, 그렇게 계속해서 아파트에 살다가 결혼해서는 빌라에서 잠시 살지만, 어코 몇 억원의 빚과 함께 다시아파트에 사는 삶의 궤도로 돌아와 버렸으니 이놈의 아파트가 지긋지긋할 수밖에. 그래서 아내가 결혼 전에 살았던 용산구 동빙고동의 단독주택을 정말 좋아했다. 남의 떡이 늘 커 보이는 법이듯 그건 평생 주택에서 살아보지 못한 자의 부러움이기도 했다.


그곳은 3층짜리 빨간 벽돌집이었다.

봄에는 벽돌보다 더 빠알간 장미꽃이 담장 위에 예쁘게 피었더랬다. 날이 좋을 땐 옥상에 올라가서 평상 위에 앉아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해가 질 때까지 고기로 양껏 배를 채우고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우면 밤하늘에 둥실 걸려있는 달이 어찌나 낭만적이던지. 서울 하늘이라서 잘 보이진 않지만 미세먼지 없는 날 눈을 가늘게 떠 집중해서 바라보면 간혹 반짝거리는 별도 몇 개 만나보는 행운도 누렸다. 게다가 그 집에서는 거리가 제법 멀어서 조그맣게 보이긴 했지만 한강 반포대교의 분수쇼도 감상할 수 있었다.

내친 김에 마당에는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어서 깻잎이며 마늘, 감자도 심어서 기르며 자급자족의 삶도 꿈꿔볼 수 있었을 것 같고.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을 필요 없이 집 안을 전력질주로 마구 뛰어다녀도 층간소음 피해를 호소할 아랫층 사람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반갑게 왈왈 짖어주는 강아지도 기를 수 있고. 소음이 웬말이랴, 내 마음대로 벽에 못질을 하거나 바닥에 망치질을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다.

옆집엔 오랫동안 알고지낸 동네 친구가 살고 있어서 적적할 땐 같이 술잔도 기울일 수 있을 테다. 어쩌면 너네 딸하고 우리 아들하고 결혼시키는 거 어떠냐는 실없는 농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 지어서 살면 이렇게 살 수 있잖아. 정말 기가 막히지 않아?"


 아내는 나의 장광설을 듣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정작 그 집에 살았던 아내는 다시는 주택에 살고싶지 않다면서 악평 겸 반론을 쏟아냈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 따위는 1주일, 아니 2주일에 한 번 구워 먹을까 말까다. 준비하고 정리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모른다.

겨울엔 숨 쉴 때마다 입김이 허옇게 나올만큼 춥고 벽과 창 틈 사이로 살을 콕콕 찌르는 찬바람이 스미는데 이런 걸 너는 평생 경험이나 해 봤으려나. 반대로 여름에는 찜통이 따로 없다. 한낮엔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쇼핑몰 같은 곳에 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어야 한다. 그렇다고 보일러나 에어컨을 항상 돌리기엔 가스비, 전기료 폭탄이 어마어마하다.

가끔 비가 새거나 벽에 곰팡이가 피거나 하수구가 막히기도 하고 전기가 끊어지거나 전등이 나가거나 하는데 그때마다 네 손으로 일일이 직접 고칠 수 있을까? 네가 철물점 사장님도 아니고 그런 손재주가 있을리 만무하다. 지난번에 우리집 대문 페인트칠하는 거 도와주느라 힘들었지. 근데 그 짓을 매년 하지 않으면 녹이 슬어서 문짝이 떨어져 나간다.

경비실이 있는 게 아니라서 창문으로 도둑이 들까봐 무섭고, 부재중일 때 택배를 대신 받아 줄 사람도 없다. 차고가 없는 집이라서 근처 길가에 차를 대면 5분도 안 돼서 차 빼라는 전화가 여기저기서 빗발친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면 이 모든 시름과 번뇌에서 해방될 수 있다.


 "어휴, 말도 마. 더 얘기하자면 끝이 없어. 네가 단독주택에서 사는 어려움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 꿈 깨."


 그만. 거기까지. 더 이상 듣고싶지 않아. 나의 환상을 더 이상 무참히 깨부수지 말아으면. 바라는 그곳에 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거, 나도 알고있다. 럼에도 불구하고 한옥에 살고싶다. 그게 안 되면 단독주택에라도 살아보고 싶. 아파트엔 이제 그만 살고싶. 다들 똑같은 구조의 집에서 너도 나도 찍어낸 듯 비슷한 모양새로 시간을 보내고, 래미안이 낫네 자이가 더 좋네 요즘은 힐스테이트가 대세니 따위의 이야기를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떠들어대고, 아랫집이나 윗집은 누가 사는지도 몰랐는데 층간소음 때문에 결국 얼굴을 붉히며 첫 만남을 가지게 되고, 몇십 년 동안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금 때문에 하고싶은  사고싶은 거 꾹꾹 참아야 하고, 혹여나 빚을 내서 산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며 경제 기사와 부동산 유튜브 따위를 마음 졸이며 봐야 하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니까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말 단순히 '어디에 살고싶다.'는 람의 표현이 아니라, '지금보다는 더 인간다운 삶을 살고싶다.'는 나름의 진지한 선언이라는 거다.


 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아파트값이 오르면 팔고, 다시 대출을 받아 더 비싼 아파트를 사고, 또 오르면 또 팔고, 이런 식으로 자산을 불려가며 부자가 되는 것. 그게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정답이라고들 한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그렇게 정답이라는 데 맞춰 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살면서 한번쯤은 남들과 다른 오답을 선택하는 날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나는 오늘도 한옥, 아니, 그게 어려우면 단독주택에라도 사는, 이뤄지기 힘든 꿈을 꾸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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