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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pr 23. 2020

너는 호랑이 엄마가 될 거야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스물여덟 번째

에버랜드 동물원에선 호랑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놀이공원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관람차
그리고 신난 꼬마 아이들

Canon QL17 g3

Canon 40mm 1:1.7 lens

Fujicolor C200

2019년 5월





 아내가 난데없이 고백했다.


 "우리 아이는 내가 아니라 네 성격을 닮았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본인을 닮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너도 네 성격이 만만찮다는 걸 이미  있구나.  모르는 줄 알았지 뭐야. 그런데 아직 낳지도 않은 아이의 성격까지 벌써부터 걱정하고 그래, 일단 무사히 낳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자기가 한 말임에도 아내는 멋쩍게 웃었고 나는 이해한다는 듯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었다.


 아내에게 종종 놀리듯이, 반쯤은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보면서도 했던 말이다.


 "호랑이 부인! 나한테 좀 상냥하게 대해줘. 남편테 왤케 사납니."


 아내의 성격이 마치 호랑이 았기에 하는 장난섞인 투정이었다. 좋게 표현하면 적극적이며 거침없고, 나쁘게 말하면 성격이 급하고 화가 많 성격. 성차별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떨 땐 여자 남자의 역할이 서로 뒤바뀐  아닌가 싶었다. 연애할 때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했다. 그녀가 남자친구고 내가 여자친구 같은 느낌이라고. 리 뭔가 반대로 된 것 같지 않.






그녀는 나보다 술을 더 잘 마셨다.


 연애던 무렵,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난 후 대낮부터 화해의 술잔을 부딪쳤던 날이었다. 소주 두어 병에 500cc 맥주 몇 잔, 막걸리 한 사발까지 마시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 올랐다. 남 보기에 부끄러울 만큼 얼굴이 불콰해지고 머리가 빙빙 돌았다. 두 정거장 정도 지났을 무렵 울렁거리는 속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서초 역에서 급하게 내렸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대고 우웩 하고 토악질을 몇 번 하고 나니 그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도 이럴진대 여자친구는 괜찮을까 싶어서 전화를 해 봤더니, 발음도 또박또박하고 이렇게나 사람이 말짱할 수가 없다. 너는 왜 남자친구보다 술을 잘 마시냐. 대장부처럼 호쾌하게 술을 들이켜는구나. 첫 만남 이후 10년이 넘도록 함께 지내면서 그녀가 취한 모습은 딱 한 번밖에 본 적 없다. 오히려 내가 만취한 채로 통화를 1시간 넘도록 했는데도 다음날 아침에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까맣게 기억나지 않아 소름 돋던 날들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나 둘이서 주구장창 술을 마셨건만, 임신부가 되는 바람에 거의 열 달 째 알코올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고 있으니 아내는 지금 얼마나 답답할런지.   



소녀라기보다는 소년 같은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비단 주량뿐이랴. 내숭이나 애교 따위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게 그녀였다. 소개팅으로 만난 자리에서 인상 깊었던 건 손으로 입을 가리지도 않은 채 하얀 이를 다 드러내고 목구멍훤히 보일 만큼 크고 시원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마치 열 살짜리 남자아이의 얼굴이었다. 이 또한 성차별적인 표현일 수 있는데, 말하자면 '소녀'보다는 '소년' 같았던 여자. 소녀왠지 장미꽃의 가시처럼 위험하다거나 남모를 무언가를 속에 숨기고 있을 것 같은 의뭉스러운 느낌이 든다. 반면에 소년은 햇살 아래 민낯으로 뛰어다니는 까무잡잡한 아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마냥 믿어도 될 것 같은 존재 같다. 본인도 그런 사실을 아는지, 여느 여자들처럼 남자친구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거나 애교 같은 걸 부리지를 못하는 뻣한 사람이니 이해해 달라 했다. 별 걱정을 다 하구나, 싶었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예쁜 짓 같은 건 죽어도 못 하데 괜찮겠어? 인스타니 페이스북 같은 데 셀카 사진 올리는 일 따위도 오글거려서 못 하겠어."


 "걱정마. 나는 애교 같은  싫어. 다 큰 성인이 왜 어린애 흉내를 내면서 퇴보하는 행동을 하는 건지. 그 꼴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뭐람.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톰보이 같은 여자들 좋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거리낌없이 표현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소년의 특징이 무엇이냐. 속을 숨기거나 가리지를 않는다는 거다. 아니, 못한다는 거다. 감정을 속에 꾹꾹 담아두고 참는 일은 질색하는 그녀였다. 그래서인지 학원도 박사 과정을 밟는 중에 그만두고 직장 생활도 1년 단위로 금방 때려치우긴 하더라. 여의도 금융회사, 카드사 인턴, 수학학원 강사, 교재 출판사까지 일터를 참 많이도 옮겨다녔다. 싫은 일, 싫은 사람과는 일 분 일 초도 함께하고 싶어하지 않서였다.


 그동안 한 회사를 10년 째 다니고 있 나는 무척 궁금하다. 사표 낼 때의 그 짜릿하면서도 한켠으로는 불안에 젖는 듯한 기분어떨까. 물론 살면서 한 번도 사표를 내 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그렇겠지, 하고 상상만 해 볼 뿐이다.



싸움을 할 땐 벼랑 끝의 끝까지 가야 비로소 끝이 났고 그럼에도 화는 금방 풀고 뒤끝도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지금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보니 싸우는 날도 많았다. 그녀는 싸울 때 절대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소리를 질러대며 싸우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급기야는 화가 나서 휴대폰을 집어던지거나(이건 내가 그랬었구나...), 평소라면 입에 담지도 못 할 개나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쌍욕을 주고 받거나, 인파로 북적이는 대학로 한가운데서 뺨을 얻어맞기도 했다. 그것도 왼쪽 오른쪽 두 번이나. 심지어 한 감정을 참지 못해 죽어버리겠다며 도로로 뛰어들려는 걸 막은 적도 있다. 싸우다가 둘 중 누가 한 명 쓰러져 죽어야 끝이 나겠구나 싶은 날많았다. 그런데 그렇게나 싸워놓고선 금방 화가 풀려서 나에게 화해의 손길을 먼저 건네던 여자친구. 나는 아직 감정의 응어리가 채 풀리지도 않았는데.


 "안해.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 남자가 뭐 이런 거 갖고 아직도 삐져있어. 화 좀 풀어봐."


 아니, 5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이네 살리네 욕을 하며 소리치고 화내던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쿨하디 못해 아주 얼어죽을 양반일세. 아직도 꽁해 있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다.



매점에서 커피 하나 고르는 덴 10분 넘게 고민하더니 몇 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는 결정은 순식간이었다.


 아직 학생이던 무렵 매점에 가면 계산하기까지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고작 캔커피 하나 사는 데도 레쓰비냐, 조지아냐, 티오피냐 따위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면서도 아니야, 다시 바꿔야겠어, 이러면서 다른 캔을 바꿔 집어 들기도 하며 몇 번이고 결정장애의 모습을 보이던 그녀.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 있어 무척이나 신중한 스타일이었다. 수학을 전공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모든 일이 빈틈없이 계획대로, 꼭 들어맞는 숫자로 움직여야만 비로소 이해하는 영락없는 플랜맨이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그냥 살면 되지 뭘 그렇게나 고민하며 피곤하게 사느냐는 나의 물음에 이런 대답을 다.


 "이래서 문과 (애가 아니라 놈이라 그랬던가)들은 안 된다니까."


 하지만 몇 억 원이 넘는 대출을 끼고서 아파트 매 계약서를 쓰는 건 어찌나 결정이 빠르던지. 아직 신혼 전셋집 계약이 1년이나 남은데다, 이렇게나 큰 빚을 지면 생활도 어려워질 거고,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으니까 이게 정말 올바른 선택인지 몇 주가 넘도록 한참을 고민에 빠져있던 나와는 달랐다. 일단 질러야 한다던 아내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 떠밀리다시피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올바른 결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서울 아파트값은 떨어지는 법이 없고, 이제는 집을 사고 싶어도 은행에서 아예 빚을 내 주지 않는 요즈음이다. 역시 숫자와 예측에 강한 이과생 아내 말을 들어야 된다.



어쩌면 강아지를 세 마리나 키우고 살아서였는지 나를 강아지 조련하듯 대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했다. 얘가 혹시 나를 사람이 아니라 동물처럼 조련하는 건 아닐까.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 고모, 할머니, 그리고 강아지 3마리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반려 가족인 강아지를 대하는 태도가 여느 애견인과는 전혀 달랐다. 보통은 강아지를 사랑스럽게 안아 주거나 쓰다듬거나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던데, 그녀는 마치 학생 주임 쌤처럼 아이들을 다뤘다. 소파나 침대로 올라오기라도 하면 인상을 쓰며 저리 가라 소리지르고, 식사도 정시에 딱 정량만을, 혹여나 사람이 먹는 과자를 먹고 싶다는 눈빛으로 쳐다 보더라도 절대 부스러기 하나라도 주는 법이 없었다. 안아주기는커녕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모양새로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모습. 배하는 인간과 복종하는 동물, 딱 두 계층으로만 이뤄진 엄격한 계급 사회를 보는 듯했다.


 강아지들을 떠나 보낸 지 몇 년이 되었건만, 아내는 내가 잘못한 일이 있거나 실수를 할라치면 습관적으로 예전에 강아지들한테나 하던 을 한다.


 "스읍! 가만히. 그럼 안 돼. 스읍!"


 "아, 그게 뭐야. 내가 무슨 강아지냐?"


 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영락없이 강아지가 된 느낌이 들곤 한다. 왠지 배를 드러내 보인 채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아. 그래도 거실 구석에서 한 쪽 다리를 들고 쉬를 하지는 말어야지. 그랬다간 흠씬 매를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의 그녀, 그런데도 그런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사람은 반대에 끌린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나는 일생을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게 살아왔는데, 이렇게나 나를 끝 모를 바닥에서 보이지도 않는 하늘 끝까지 쉴 새 없 끓어오르게 하는 사람은 난생 처음이었다. 이만큼이나 나를 울리고 웃게 하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날것 그대로의 내 모습을 알 수 있게 해 주고,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세상에 딱 하나뿐인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장난처럼 말했다. 너 혹시 마조히스트냐고. 나도 웃으면서 장난처럼 대답했다. 맞아, 나는 나를 괴롭혀주는 사람이 좋아.


 점집에 궁합을 보러 갔을  관상가 양반이 런 말을 했. 사주팔자를 보아하니 '남자 나무, 여자는 쇠'. 자네들의 운명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도끼 나무를 후려치는 형국이라고 했다. 종국에는 나뭇등걸만 남고 말 거라나 뭐래나.  원, 사람 면전에다 대고 이런 부정적인 풀이를 해 주는 점집도 있구나.  말을 듣고서 표정이 굳어진 여자친구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는 듯 달래줬다.


 "나무에 붙어있는 쓸데없는 잔가지들을 도끼로 잘 다듬어 준다는 뜻이겠지. 괜 걱정 따위 하지 마."


 그랬던 그녀와 무던히도 싸우고 울고 웃고 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쇠도끼 혹은 호랑이와 같이 사는 법을 알겠다 싶을 때 즈음 결혼을 했다.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다툼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8년이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서로의 모든 걸 안다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 이래서 연애는 오래 해 봐야 하는 거다. 결혼을 한 번밖에 안 해본지라(물론 여러 번 할 생각은 없다만)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오랜 시간동안 함께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사람 같은 사람이 다신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과 결혼하는 게 그나마 정답에 가까운 것 아닐까.


 어느덧 만삭의 임신부가 된 아내는 이제 슬슬 아이에 대한 걱정이  듯하다. 어떤 걸 해 주고 먹이고 입혀야 할지,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같은 엄마로서 당연히 하게 되는 고민들. 육아 관련 책을 펼쳐보니 영유아기 부모의 역할이라는 게 각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야지,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이론대로의 엄마 아빠의 역할을 우리가 맡을 수는 없을 터다. 아이 회유해야 할 범죄자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형사물에서 흔히 나오는 '굿 캅 배드 캅' 전략을 쓰게 된다면 아무래도 엄마인 네가 나쁜 역, 아빠인 내가 착한 역을 맡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야단치고 회초리를 드는 엄한 일은 네가,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사탕 하나 주면서 어르고 달래는 다정한 일은 내가. 책에서야 뭐라든지 간에 그게 각자에게 어울리는 역할일 것 같다.


 그러면 우리 아이는 아빠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무서운 엄마보다는 상냥한 아빠에게 더 마음이 갈 게다. 나도 어렸을 적 회초리를 들던 엄하신 아버지보다는 다정하신 어머니를 더 좋아했다. 예상컨대 우리집은 이제 '아빠와 아들 vs 엄마'의 2:1 구도가 형성되겠구나. 숫적으로 우세해졌으니 내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 싸움은 역시 숫자 놀음이니까. 이렇게라도 아내에게 이겨볼 수 있기를, 하고 작은 반란을 꿈꿔본다. 는 그동안 항상 무서운 아내에게 지기만 했던 남편이었는데 이제 기회가 생긴 거다. 마음속으로만 꿈꾸던 철없는 장밋빛 계획을 토로하자 아내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너희 둘이 대들어도 날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너는 내 편을 들어줘야지 어째 그런 꿍꿍이가 있었어?!"


 그나저나 정말 우리 아이는 누굴 닮았으려나. 아내의 호랑이 같은 성격과 나무늘보 같은 나의 게으름 같은 나쁜 것들만 닮으면 안 될 텐데. 모쪼록 좋은 것골라 담아 닮았으면 한다. 리고 는 태어나자마자 엄한 '호랑이 엄마'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지금부터 미리 심심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아가야, 그게 내 잘못은 아니란다. 내가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아무래도 사람 성격은 교육이나 훈련 따위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네 성격이 어떻든간에 부모랍시고 억지로 바꾸려고 들지도 않을게. 엄마한테 혼나게 되면 울지 말고 아빠한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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