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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n 02. 2020

거 임신 소식 알리기 딱 좋은 날이네

너무 이르지도 지나치게 늦지도 않은 적당한 때

 아내의 임신 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는 언제 알려야 하는 걸까? 당연히 임신임을 확인한 직후는 아닐 테고, 그렇다고 배가 엄청 부른 이후에야 비로소 밝히기도 이상하고, 아이를 낳고 난 후에서야 수줍은 얼굴로 임신과 출산 고백을 하는 건 말이 안 되니, 너무 이르지도 지나치게 늦지도 않은 적당한 때를 골라야 한다. 아내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조심할 필요가 있는 임신 초기에 곧바로 알렸을 듯한데, 남편이자 임신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물론 나름대로 충분히 기여는 했다) 이쪽의 나로서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기쁜 소식을 알리는 일은 일견 간단해 보였지만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즘에는 불임이나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라. 친구 K 역시 아이가 안 생겨서 한참을 애쓰다가 마침내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이를 낳았고, 동기 S는 결국 시술 덕분에(혹은 때문에) 쌍둥이 아빠가 되었더랬다. 그 외에도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밤낮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분명 있을 터. 그런 들 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좋은 소식이 있어요. 저희 아내가 임신했어요."라며 남들의 질시를 받을 수도 있는 소식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아이 없이 둘만으로도 능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딩크족이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이죠."라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래서 소식을 알리면서 심경 변화와 임신 과정에 대한 구구절절한 변명 겸 설명도 이어져야 했다. "어쩌다 보니 렇게 됐어요."라며 씨익 웃으면서 머리나 긁적이는 걸로 끝수 없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임신 초기에 괜히 자랑질을 하고 다녔다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함부로 떠들고 다녀서는 안 다는 것. 예전에 몇 번 큰 실수를 한 적 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 D형에게 "아이는 잘 크고 있어요?"라고 생각 없이 말했다가 유산해서 아이 잃었다는 슬픈 대답에 무척 당황했,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게 되니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어르신 말씀에, 삼신 할매가 엿듣고서 심술을 부릴 수도 있으니 좋더라도 너무 좋은 티를 내면서 헤실헤실 웃고 다니면 안 된다고 했다.


 그저, 임신했어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정도의 간단한 말들을 주고받으면 끝날 일인데 이렇게 고민해야 할 게 많았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임신을 확인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난 무렵에야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즈음이면 극히 조심해야 할 임신 초기 어느 정도 지났기에 안심해도 될 만한 때라고 했다. 수줍고백 이후로 가족과 친구들, 직장 동료들의 축하가 줄지어 이어졌다. 한참을 인사를 받다 보니, 어쩌면 이 사람들, 다들 우리가 임신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또 우리 부모님만 손주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 줄 알았지. 임신이라는 게 이렇게나 모두에게서 축복받을 일이었구나. 그동안 지인의 임신 소식에 건성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곤 했었는데 정작 축하받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묘하다. 마치 내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맙기도 왠지 미안하기도 하다. 우리보다 앞 험난한 여정시작하셨던 육아 선배님들께 좀 더 진심을 담아 정성스레 축하해 드릴 걸 그랬나 보다.






 주변에 아이 부모가 된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 지 오래다. 이놈들이 언제 어느 세월에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사나 걱정했던 이들이 부지기수였는데 시나브로 다들 가정을 이루고 아이, 혹은 두 아이의 아빠 엄마가 되었다. 아직까지 셋이나 낳은 애국자 친구는 없다. 여하튼 아직도 참 믿기 어려운 생경한 장면이다. 예전 언젠가는 대학 동기 H가 하는 짓이 어찌나 어린애스러웠는지 곁에서 지켜보던 C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네가 하고 다니는 짓거리 때문에 네 동생이 유아교육과 간 거 아냐. 덜떨어진 오빠 가르쳐서 사람 만들려고."

 그러던 C는 아직도 싱글인 데 반해 H는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심지어 최근에는 둘째까지 낳았으니 이제는 우리들 중 가장 '어른'이 됐다. 꼭 아이를 낳아야만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를 하나 더 알게 된 사람에 대한 예우라고 해 두자. 밥 한 공기라도 더 먹었다면 어른으로 우러러 봐 주는데 하물며 세계관이 조금이라도 더 넓은 사람에게 충분히 대접해 드려야지. 어르신 H께서는 우리 부부의 임신 소식을 듣고서 짐짓 어른스럽게 이런저런 덕담을 건넸다. 언제까지나 골방에 모여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위닝일레븐이나 하고 야식으로 치킨에 맥주나 먹으 노닥거릴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돼서 내게 이런 조언을 해 주는 날이 올 줄이야.

 친한 고향 친구들에게도 드디어 예비 아빠가 되었음을 알렸다. 불X 친구들이 아니랄까 봐 짓궂은, 그러면서도 정이 담긴 악담들이 쏟아졌다.


 "이제 네 삶은 끝났지."


 왜 남자들은 좋은 말을 좋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겉으로 위악질을 두르는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하는 말과는 달리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말들이 이어졌다. 쌍둥이를 기르고 있는 Y도, 사고를 쳐서 결혼한 지 열 달이 채 못 돼서 아이를 낳은 C도 짐짓 선배님의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 제수씨가 고생이 많겠구나, 힘들어도 행복할 거다, 다른 녀석들도 얼른 결혼하고 애도 낳거라, 같은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놀랐다. 저거 언제 사람 되나 했던 놈들이 이런 말을 해 주는 날이 올 줄이야.


 직장 동료들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건넸다. 정말 축하한다, 이제부터 고생길 시작이다, 김 과장 애 안 낳는다더니 이럴 알았지, 몸 관리 잘해라, 우리 아이는 이러저러했다, OO 씨 이제 차도 바꿔야겠네 등의 축하 겸 조언들이었다. 하지만 동기들 중 가장 어린 J는 그리 밝지 않은 얼굴로 축하를 건넸다. 딩크족을 고수하고 싶지만 주변에서 하나 둘 아이를 낳고 본인에게도 아이 낳기를 강요하는 탓에 심기가 불편하던 차였는데, 끝까지 비출산의 길을 함께할 줄 알았던 옛 동지인 나마저 쪽 편으로 전향했으니 마냥 기쁜 마음이기가 어려웠을 게다.


 "축하해! 그런데 오빠마저 아이를 낳을 줄은 몰랐어. 절대 안 낳을 거라더니... 나는 어떡하지 이제."

 





 육아 선배들이 하시는 말씀들 한참 동안 듣다 보니 일정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1. 육아는 정말 죽을 만큼 힘들다.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괴로운 일이다.


 2. 하지만 그 힘듦을 말끔히 지우고도 남을 만큼 아이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1번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내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으면 곧바로 2번의 기쁨을 이야기하면서 나를 달래는 사람들.  기쁨을 눈앞에 증명해 보이겠다는 듯 카카오톡 프로필이며 스토리며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계정을 펼쳐 보인다. 그곳에는 죄다 아이, 아이, 아이, 끝없는 아이 사진들로 가득. 그렇게나 아이가 .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을까. 든 부모들은 삶의 중심이 '나'에서 '아이'로 이동해버린 사람들 같다. 신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가 없었을 땐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제 나도 그들의 편에서 함께하는 이가 되었다는 생각에서일까, 어느새 그들이 나에게 건네는 인사말마저 바뀌었다.


 "애는 잘 크고 있어요?"

 "내분은 건강하죠? 입덧은 안 해요?"

 "예비 아빠, 무슨 일 없어요?"

 "아기 용품들은 다 준비됐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는 모두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동안 우리가 나눴던, 육아 외의 수많았던 주제의 대화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물론 임신이란 축하받을 만한 일이고,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건 놀라운 일이긴 한데 이렇게까지나 해야 하나 싶다. 우리도 결국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해지고 삐딱해지는 마음에 주변의 육아 선배들처럼 되지 말자면서 아내와 함께 서로에게 약속을 했다. 아마도 지키지 못할 약속일 수도 있지만.


 우리 서로 부를 때 'OO아빠', 'OO엄마'라는 호칭 따위로 부르지 말자. 프로필 사진을 아이 사진으로 하지 말자.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하되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내팽개치진 말자. 그동안 욕해왔던 다른 육아 선배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말자. 시무 10조도 아니고 이런저런 '~하지 말자'의 다짐을 나열해본다.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으니 섣부른 다짐에 불과할 수 있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 우리를 잃고 싶지 않다.


 과연 어떻게 될지 한번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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