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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n 14. 2020

사진을 보니 아이 코가 오뚝한데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병원에 올 때마다 아기 초음파 사진을 계속해서 찍는다. 으로 봐선 알 수 없는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매번 신기할 따름이다. 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볼 때마다 낯설다. 아내 속에 저런 존재가 있구나, 아직 실제로 조우한 적 없는 미지의 그 존재가 점점 더 커져가는구나.


 신기하면서도 어떨 땐 저게 과연 하는지 의심도 든다. 1969년 아폴로 11호 탐사선의 달 착륙이 거짓이라 믿는 사람들처럼 나도 왠지 믿음이 가질 않는 거다. 진공 상태인데 성조기가 펄럭거릴 수가 있나, 하늘에 별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선명하게 남길 수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대는 사람들처럼 나 역시 저 화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게 정말 사람일까, 산부인과에서 만든 가짜 영상을 틀고 있는 거 아닐까, 저렇게나 태아가 금방 니 믿을 수가 없다, 이러면서 말이다. NASA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약 5퍼센트나 달 착륙 조작설 따위를 믿는다던데 초음파 사진을 그렇게나 봤으면서도 아직 긴가민가한 나도 그 사람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모양새다.


 매번 검사가 끝나고 나면 그날 찍은 사진을 준다. 증이라는  손에 쥐고 나니 이제야 현실이라는 느낌이 든다. 인간은 아무리 고상한 척 해도 역시 념론적이기보다는 유적 존재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육체적 경험을 겪어야만 그제야 비로소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이 쌓여갈수록 '아기 앨범'의 필요성을 감했. 현현된 모든 순간을 잊어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 싶어서. 예쁜 사진 앨범(물론, 아내가 골랐기에 나는 선택권이 없었던)을 하나 사서 처음의 사진부터 하나씩 페이지를 채우기 시작다.






 임신임을 확인한 지 두 달 정도 된 무렵인 2019년 10월 22일. 이날 받은 사진에 써져있는 단어들을 살펴봤다. CRL, 그러니까 '머리부터 엉덩이까지의 길이'가 벌써 5.14cm라고 한다. 끼손가락 손톱의 끄트머리만큼도 되지 않던 것이 어느새 손바닥 크기만큼이나 자라났다. CRL 아래쪽에 써져 있던 GA는 '추정되는 임신 주수', EDD는 '추정 출산 예정일'을 뜻한다고 한다. 임신한 지 11주 하고도 6일, 그리고 예정일은 2020년 5월 6일이다. 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 단어들을 새로이 하나씩 배워간다. 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의 용어들. 이쪽의 언어를 하나 둘 알아가면서 점점 부모의 세계라는 곳으로 한 걸음 두 걸음씩 가까워지것 같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본다고 하니, 언어만 알아도 이미 그 세계의 반절은 알게 된 것 아닐까.


 "우와, 잘 생겼어. 얘 오뚝해."


 사진을 보니 왠지 아기 코가 오하다. 고작 태아 주제에 콧대가 오뚝한지 납작한지 어찌 알겠나, 심지어 코뼈가 아 나오기나 했는지차 아직  수 없으면서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 한다더니 우리도 우리 아이니까 마냥 예 보이는 걸까. 남들이 보면 코인지 아닌지도 긴가민가할 어느 부위를 보고서 이렇게나 호들갑을 떠는 꼴이라니. 그러면서도 심을 부려 코뿐만 아니라 기왕이다른 곳들도 으면 하고 바게 된. 눈은 아내를 닮아서 크고 쌍꺼풀도 있어야지, 피부는 나를 닮아 나름 매끈하고, 이마는 아내처럼 둥그스름하게 솟아있고, 입술은 나처럼 그리 두껍지 않고 가늘었으면, 눈썹은 아내처럼 일자로, 속눈썹나처럼 길고 풍성하고, 내가 좋아하는 아내의 고운 목선도 물려받으면 좋겠고, 그리고 어디는 또 어떻고 저기는 또 어떻고, 이런저런 조합들을 상상해 본다. 엄마 아빠 얼굴에서 나쁜 건 다 버리고 좋은 것만 가져갔으면 한다. 좋은 게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주고 싶다.


 예전에는 나를 닮은 무언가가 하나 더 세상에 존재다는 게 꺼려졌다. 나는 나로서 충분하고 완전한 존재이고 었다. 나, 개인의 고유성이라는 걸 어찌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나처럼 생긴 게 세상에 또 있다니 너무 징그럽지 않아요?"


 아이가 자기를 닮았다며 자랑하던 부모들에게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출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존재가 를 얼마나 닮았을지 퍽 궁금해진다.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말한 '불쾌한 골짜기' 론에서는,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간과의 유사성이 높아질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의 아이가 (물론 로봇은 아니지만) 그런 기분 나쁜 골짜기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나와 아주 다르지도 그렇다고 아주 닮지도 않게 적당히 비슷하게 생겼으면 한다.  완전히 똑같이 생기면 왠지 기괴한 느낌이 들 것 같다. 동기 H형을 보며 그런 생각 했. 그 형의 첫째 아이는 딸인데 아빠를 똑 닮았다. 우스갯소리로 대형마트에서 애를 잃어버려도 누군가 금방 찾아 줄 수 있을 만큼 둘이 똑같은 얼굴이다. 아이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그는 왠지 슬픈 표정으로 웃으며 말하곤 한다.


 "나하고 진짜 똑같이 생겼죠? 지금은 이래도 크면 예뻐질 거예요, 분명히."


 그나저나 고작 사진 하나에 들떠서 아이의 생김새에 계속해서 집착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2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게 외모밖에 없어서 그렇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단히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아니지만(아니, 나는 그렇다 쳐도 아내는 예쁜 걸로 하자.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니까) 당장 줄 수 있는 게 얼굴밖에 없어서 그렇다. <논어>에서도 '부귀재천'이라 부는 하늘이 내려주는 거라 했 그 말마따나 우리 역시 물려줄 재산 같은 게 쥐뿔도 없다.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사람 성격이야 타고나는 거가르치려 애써봐도 어찌할 수 없고. 나도 아내도 노래나 춤, 운동이나 미술 같은 예체능에도 특출난 재능이 없으니 전수시킬 것도 하나 없다. 그러니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콧날이 오뚝하길 희망하며 잘생기거나 예뻤으면 하고 바라는 거다. 아야, 안하지만 빠 엄마가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구나.


코가 오뚝해 보인다니까 정말






 사진 계속해서 늘어정리할 게 많다. 어느덧 앨범이 절반이나 찼. 사진마다 짧은 메모를 달아서 소중하게 붙이는 아내. 연애할 때 폴라로이드 사진을 같이 찍고 네임펜으로 날짜와 짧은 한 줄 글귀를 쓰던 손이, 이제는 우리 둘의 아이 사진에다 정성스레 그날 검사의 기록을 써서 남기고 있다. 때만 하더라도 아이가 있는 삶은 상상도 못 했었다.






 2020년 4월 28일, 분만 예정일을 1주일 정도 남겨두고 찍은 마지막 초음파 사진. 벌써부터 귀 주변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게 보인다. 털이 많은 걸 보니 결국 아빠 엄마를 닮은 것이 틀림없다. 나도 팔다리에 털이 수북하고 아내도 여자치곤 털이 많은 편이니까. 데없는 걸 굳이 닮아 버렸네. 이렇게 우리의 유전 형질이 기어코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야 만다.


 마지막 사진을 앨범에 끼워 넣으면서 출산 전까지의 모습을 모두 갈무리했다. 아이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자기의 삶이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겠지. 태아 주제에 꿈이라는 걸 꿀 수나 있지 모르겠다만. 혹시나 네가 꿈을 꿀 수 있다면, 기왕이면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되는 꿈을 꿨으면, 그리고 그 꿈을 실로 이뤘으면 한다. 일단 (우리 눈에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코가 오뚝해 보이니까 어느 정도 희망적이다.



벌써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걸 보니 훗날 탈모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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