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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an 16. 2020

아내가 울었다

사실은 나도 같이 울고 싶었어

 "네 손은 참 애기 같아."


 여자친구의 손을 볼 때마다 했던 말이다. 연애하던 무렵 백일기념이랍시고 커플링을 맞출 땐 명확한 숫자로 체감하기도 했던 작은 손이었다. 5호 남짓한 손가락. 내 손은 10호 정도. 이 쪽 세계의 단위는 잘 모르지만 둘 다 무척 가느다란 손가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반지 값을 좀 빼 줄 것이지 그러지는 않더라.


 그랬던 여자친구가 아내가 되고 어느덧 임신부가 되다. 애기가 기를 낳는구나. 손도 발도 자그마한 이 사람이, 자기보다 더 작은 손과 발을 가진 누군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니. 임신 5개월 차에 들어간 지금까지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우리가 정말 엄마, 아빠가 되는 게 맞긴 맞는건가. 긴가민가하던 와중에 병원에 가서 초음파 사진을 보거나 점점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고 나면 그제야 조금은 현실을 깨닫곤 한다.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초기 3달을 럭저럭 무사히 넘기고 이제 중기로 접어들던 겨울의 어느 날 밤이었다.


 종종 분위기 있는 음악을 틀어 둔 채 둘이서 꼬옥 껴안고 있는. 아내는 나를 안는 걸 무척 좋아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아 달라고 한다. 출근할 때도 퇴근했을 때도 밥을 먹은 후에도 잠들기 전 침대에서도,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작스레, 그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팔을 벌린 채 다가온다. 낯 간지러운 걸 잘 참지 못하는 나로서는 연애 초반에 이 행위가 꽤나 고역이었다. 누굴 안아 본 적이 있어야지, 부모님께도 그래 본 적이 없는걸. 농반진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정 요구'라고 아내에게 투정을 부렸더랬다.


 그렇게 그날 밤도 그렇게 악을 들으면서 한참을 둘이서 꼭 껴안고 있 중이었는데,


 아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눈가가 촉촉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어깨를 조금씩 들썩이고, 급기야는 엉엉 소리 내며 흐느낀다.


 내가 또 무얼 잘못한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임신부의 감정 기복은 사춘기 소녀보다 더욱 복잡 다단하고 예민하다더니만. 저녁 먹고 설거지한 게 마음에 안 들었나, 좀 더 뽀득뽀득하게 닦았어야 하는데. 틀어놓은 음악이 별로인가, 이소라의 '제발' 앨범이 듣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은데. 방금 전까지 봤던 TV 드라마에서 이별하던 연인들이 너무 슬펐나, 어차피 다시 만나게 될 걸 알고 있는데. 먼 곳에 떠나 계신 할머니가 갑자기 떠올랐나,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다음 달이면 여행을 끝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실 텐데. 안고 있다 보니 본인의 배가 불룩하게 나온 게 느껴진 걸까, 살쪄 보인다는 말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아내였으니까. 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도 슬피 우는 걸까.


 일단은 조금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갑자기 왜 울었. 아내가 대답했다.


 "이제 이렇게 둘만 있을 수 없잖아?"


 그렇구나. 우린 아직 둘만 함께하는 지금의 시간이 마냥 좋아서 준비가 되지 않았나보다. 육아 때문에 초췌한 얼굴이거나, 오랜만의 모임에서도 신데렐라처럼 밤이 되면 일찍 일어나야 하는 친구들을 보면 괜히 불쌍해했다. 또래 친구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열에 아홉은 아기 사진으로 도배된 걸 보면서 비웃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앞에다 대고 이서만 훌쩍 떠나는 여행이나, 야심한 밤에 다녀왔던 펍, 요즘 SNS에서 핫하다는 카페며 맛집 문기 따위를 자랑하며 쓸데없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어떠냐, 우린 아이가 없어서 이렇게, 너희보다 즐겁게 살고 있다구. 하지만 이 좋은 순간들도 이제 옛 추억으로 남게 되겠지. 애청하던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가 없던 우리 만의 청춘의 날들이여, 이젠 안녕.


 아내는 그저 둘만의 시간이 끝남에 대해서만 슬펐던 건 아닐 거다. 아픈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할 몇 달 이후 출산의 고통, 잠이 많은 우리를 무던히도 괴롭힐 새벽의 울음소리,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할 갓난아이 돌보기의 어려움, 아이가 주는 기쁨만큼이나 동시에 자라날 불안감과 걱정스러움 등등 앞으로의 험난한 고생길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이가 생기면 마냥 기쁘기만 한다던데 우린 왜 그러질 못할까. 아이를 생각하면 따스한 햇볕을 쬐는 듯하기지만, 하늘 한켠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운전하던 중 갑작스레 튀어나온 꼬마 아이처럼, 그런 안함이 불현듯 내 마음을 지배해버리는 때가 종종 있다.  기쁨보다는 걱정이 더 큰 걸까. 원해서 가지게 된 아이건만. 혹시 우리,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모성애, 부성애라는 걸 타고나지 못한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에게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아닌지 모르겠다.


 "낳아보면 마냥 좋을 거야."라는 선배 아빠, 엄마들의 말이 사실이기만을 간절히 빌어본다. 쪼록 망만이 가득한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기를. 우울과 괴로움의 날들이 아니기를. 그럼에도 뭐가 이리 불안한지.


 그리고, 우는 아내를 달래느라 그땐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사실은 나도 같이 울고 싶었어.




무슨 게임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니?
포켓몬고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아내의 손
초여름날 월드컵공원에서
제주도 바다에서, 파란 바다와 하얀 발과 하늘색 발톱

Nikon FG-20

Zoom-NIKORR 35~70mm 1:3.3~4.5

Kodak Pro Image100

2017년 4~6월



제주도의 하얀 발

Rollei XF35

Fuji C200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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