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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n 18. 2020

고추라니까 왠지 안심이다

다리 사이에 뭔가가 보이는데요

 2019년 12월 20일. 임신을 확인하고 거의 네 달이나 지나서야 마침내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됐다. 배 속의 아이는 아들이라고 했다. 엄연히 법이 금지하고 있는지라 직접적으로 알려주진 않고 가벼운 힌트가 섞인 말을 해 준다.


(※ 의료법 제20조2항 :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을 임부, 임부의 가족 및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리 사이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여기 보이시죠?”


 “잘 안 보이는데... 혹시 뭐 안 좋은 거라도 있는 건가요?”


 나는 눈치도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 들이고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도 아내도, 도대체 얘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보길래 그제서야 뒤늦게 알아차렸다. 다리 사이에 있는 그 뭔가가 바로 고추라는 걸. 나 원, 내가 이렇게나 말귀 못 알아듣는 아둔패기였을 줄이야. 주변 사람들에게서 늘 들었던 말이 “여자아이면 핑크색 옷, 남자아이면 파란색 옷을 준비하셔야겠네요.” 같은 대사여서 이제나 저제나 언제쯤이면 색깔을 말해주나 하며 그것만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이렇게 딸바보의 꿈은 끝이 났다. 기왕이면 아들보다는 딸이 훨씬 귀엽고 애교도 많다 그러고 아기자기하게 키우는 맛이 있을 것 같아서 은근히 여자아이길 바랐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 버렸다. 나의 부모님들도 손녀를 바라신다고 했었는데. 나와 남동생, 이렇게 아들만 둘을 키웠기에 딸을 키우는 느낌이 어떤지 너무나도 궁금하다고 하셨더랬다. 손녀딸을 보면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으시다며. 하지만 결국 평생 그 기분 느껴보실 일이 없게 됐다. 죄송한데 저희는 둘째까지 낳을 생각은 없습니다. 저한테 그러지 마시고 동생이 장가 가면 그 집에 한 번 기대를 걸어 보시죠. 그런데 동생은 남의 속도 모르고서 가열차게 비혼주의의 길을 달리고 있는지라 부모님께서 과연 '손녀의 꿈'을 이루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 보이지도 않는 고추를 어떻게든 보겠다며 눈을 가늘게 뜨고서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럼에도 고추는 고사하고 겨우 발의 형체 정도만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작은 발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아내가 결혼 전에 살던 집이 떠올랐다. 아내가 할머니, 고모와 함께 셋이서 살던 그곳. 기르던 강아지 세 마리마저도 암컷이어서 여자만 여섯이던 작은 아마조네스 왕국 같던 곳이었다. 금남의 구역에 발을 내딛은 나는 그곳에 종종 들러서 밥을 얻어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한테 안 쓰는 신발이 있으면 한 켤레만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여자들만 사는 집처럼 보이면 위험하니까 현관에 둘 만한 신발이 필요하다는 거다. 남자 신발, 그냥 남자 신발이 아니라 투박하고 커다랗게 생긴, 왠지 발냄새가 풀풀 나면서, 아재가 신을 것 같이 생긴 등산화 같은 거면 더 좋겠다고 했다. 마침 신고 다닌 지 거의 5년이 넘은 낡고 촌스러운 등산화가 있어서 (물론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기꺼이 그 집 현관에 놓아 드렸더랬다. 아직 예비군이 끝나지 않았을 때라 군화를 놔 드리지는 못했다. 건장한 젊은 남자가 사는 집처럼 보이려면 그게 더 효과가 좋았을 것 같았는데. 그집 현관에 신발을 놓으면서 여자로 사는 게 참 고단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단 신발뿐이겠나, 얼마나 많은 말 못할 일들을 겪어 왔을까. 남자로 살면 이런 힘듦을 겪지 않아도 되니 아들이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로 살기 위험한 세상이니까 사내아이도 괜찮은 것 같애.” 


 아내도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라는 소식에 아쉬워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안심되기도 한다는 말을 했다. 워낙 흉흉한 뉴스가 많은 요즈음이라 딸보다는 아들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남자라고 해서 여자보다 마냥 편하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서도. 세상이 이상한 건지 우리가 이상한 건지, 이런 걸로 안심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가 고추를 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아내가 초음파 사진에 이런 메모를 남겼다.


 “복아! 너는 사내아이였구나. 드디어 알게 되었어! 건강, 또 건강하렴.”


 나도 아내가 쓴 메모 옆에 글을 하나 썼다가 등짝을 얻어 맞았다.


 “아들아, 기왕 남자로 태어날 거, '그거'는 크게 달고 태어나거라.”


 이제 아빠가 되었으니 제발 좀 진중해지라며 아내가 야단쳤다. 그런데 사랑이, 아니,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와서 어떻게.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아들 둘을 키우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줄 테다. 내가 큰 아들 역할, 아이는 작은 아들 역할, 이렇게. 어디 한 번 기대해 보렴.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싶다.


 그나저나 부모님들께서는 손주가 ‘고추’를 달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더니 무척 기뻐하셨다. 전화 수화기 너머로도 환하게 웃고 계신 얼굴이 눈앞에 또렷이 그려질 만큼 목소리가 밝았다. 아직 우리네 부모님 세대는, 겉으로 말씀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딸보다는 아들이 더 좋으신가 보다. 아니, 언제는 손자보다는 손녀가 좋다면서요? 고추는 둘이나 키워봐서 지겹다는 말, 그거 다 거짓말이셨습니까.



집에서 쓰는 국그릇에 고추가 그려져 있다. 어쩌면 매일같이 고추를 보다 보니 결국 사내아이를 낳은 거 아닐까?


근데 사진을 아무리 자세히 봐도 고추가 눈에 보이진 않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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