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이왕이면 쌀쌀하고, 먹구름은 잔뜩 끼고, 바람은 거칠게 불고, 세차게 비 오는 날의 바다를 유독 좋아한다. 식성으로 따지면 꽤나 까다로운 입맛이다. 예전에는 이런 날만 되면 가만있지 못했다. 하다못해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해안도로라도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고, 그럭저럭 삶에 길들여지다 보니 그리 못 견딜 일도 없었다. 괴로운 일들도 어찌어찌 참으면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 고스란히 차곡차곡 쌓이는 줄을 몰랐을 뿐이다. 오랜 시간을 외면하고 방치한 셈이다. 요즘은 시간이 허락하면 자주 가는 편이다. 물론 평일은 힘들고 주말에 친정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르거나 마음이 나를 이끌 때는 멀리 월정리 바다까지 가본다. 개학 며칠 전이 딱 그날이었다.
늘 그렇듯이 아침 일찍 서둘렀다. 그날은 수묵화를 닮은 바다였다. 다채로운 회색 빛깔이 때로는 더 격조 있을 때가 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무너져 구분이 안 되니 더욱 신비로웠다. 해안선 따라 장식으로 모양낸 넙적 바위에 엉거주춤 기대앉아 오가는 파도를 바라봤다. 스승님 말씀처럼 저 멀리서 밀려올 때는 그리도 요란스럽거늘 밀려갈 때는 모든 것을 끌어안고 바다 깊숙이 돌아가니 깊은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결국 모든 파도들은 바다로 돌아간다.
요즘은 자주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때마다 많은 생각과 감정의 파도들이 오가면서 때로는 나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결국은 바다로 돌아가는 것을 알기에 그 경계를 넘지 않고 고요히 숨 고르기를 해본다. 우리 삶에 닥친 무수한 파도들도 덤빌 듯이 포효하며 달려들지만 결국은 서서히 사그라지며 고요한 바다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저 바다는 자신을 드러내어 삶의 비밀을 은밀히 알려주는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 비밀의 열쇠로 삶의 문을 연 순간 나는 바다가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