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1학년 건강검진을 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조종례 시간에 주의사항을 수차례 전달했다. 그럼에도 꼭 당일 날 ‘어디로 가느냐’, ‘몇 시까지 가느냐’ 등등 뒷북을 치는 아이들이 꼭 나타난다. 그런데 마지막 종례시간에 실수로 전날 금식 시간을 유인물에는 밤 10시라 적고, 말로는 밤 9시라고 전달했다.
밤부터 끊임없는 ‘카톡, 카톡...’ 소리에 반톡을 보니 금식 시간이 9시냐, 10시냐로 공방전이 벌어졌다. ‘선생님의 실수다’, ‘그럴 분이 아니다’로부터 ‘벌써 먹었는데 어떻게 하느냐’, ‘큰일 났다.’ 등등 결론이 안 나는 대화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뾰족한 수가 없는지 ‘선생님한테 물어보자’는 아이도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자니 참 순진하다는 생각과 너무 티 나게 꾀를 부리는 모습에 얼마나 웃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그래도 근엄하게 ‘9시’라고 알려줬더니 순간 반톡이 조용해졌다. 이렇게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바라볼 때마다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가끔 내 속을 확 뒤집어놓는 질풍노도의 불같은 성질도 있지만 그럼에도 열네 살 다운 천진무구한 모습들이 무딘 돌덩이가 되어가는 나를 한바탕 웃게 만든다. 더 이상 세상에 물들지 말고 이대로의 마음을 간직한 채 성장했으면 좋겠지만 어떤 이들은 가당치 않은 소리라고, 순진하게만 살아서는 험한 세상에 손해만 본다고 나무랄 수도 있겠다.
조금도 때 묻지 않고 자연 그대로 참됨을 ‘천진무구天眞無垢’라 한다. 타고난 우리의 본성이 이러한데 자라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성공하기 위해 머리만 크고 가슴은 탁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물론 나 자신도 그런 교육과 제도에 길들여진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기존의 삶의 방식에 대해 회의가 밀려오고 삶의 진정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허상을 빼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텅 빈 본바탕처럼 이 세상에 좋고 나쁨도, 옳고 그름도 정해진 것은 없다. 이 아이들처럼 천진한 나를 잃지 않으면서 세상을 맑은 눈으로 바라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본래의 천진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그때 나만의 색채로 삶을 더 선명하게 그려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