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하지
너와 나는
단 한 번 만난 적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슬픈 인연이라고
때를 기다려
꽃이 모두 져야만
그제야 남몰래 잎이 나는
서글픈 운명이라 말하지
운명의 장난처럼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데
너는 왜 그다지도
붉게 타오르는 걸까
태초에
하나의 씨앗 안에서
영혼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태생부터 하나의 사랑인 것을
너는 알고 있기에
그 벅찬 가슴을
선홍빛으로 물들였구나
하나의 뿌리에서
꽃으로 피고
잎으로 지니
매 순간을
함께 느끼는
둘이지만 하나인
너는 꽃무릇
/
한라수목원이 온통 꽃무릇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처음엔 상사화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 보니 꽃무릇이다. 이 두 꽃은 평생 만나지 못하고 서로 그리워한다는 전설 하나 둘쯤은 갖고 있지만 상사화는 잎이 진 후에 꽃이 피고 꽃무릇은 반대로 꽃이 진 후에 잎이 자란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기에 홀로 꽃으로 왔다가 홀로 잎으로 지는 슬픈 운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하나의 씨앗에서 하나의 뿌리를 내렸기에 꽃과 잎도 결국은 모양만 다를 뿐 하나이다. 라즈니쉬 오쇼가 쓴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에 보면 “끝은 그 시작 안에 존재하고 시작은 그 끝 속에도 역시 존재하니 시작과 끝은 분리된 둘이 아니라, 한 가지 현상의 두 측면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도 자신 안에 유일한 본성을 뿌리에 두고 다양한 캐릭터로 살아간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교사로서 무수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모두가 하나의 뿌리를 두고 무수한 꽃과 잎으로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하나의 여린 씨앗이 단단히 뿌리내려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다양한 캐릭터에 맞게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내면에는 변하지 않고 늘 항상하는 그 무엇이 침묵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고 언제나 삶을 지혜롭게 이끌고 있다.
# 꽃무릇 / 2021. 9. 15.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