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씌어지는 시

by 풍경

깊은 밤 고요에 드리운

가을 귀뚜라미 소리가

참 우아하기도 하다

목청을 조율하며

한 옥타브씩 깊어질 때마다

마음은 추억 따라

어느 한적한 시골 밤길을 거닐고

심금心琴을 울리는 네 소리에

내 두 귀는 팔랑 귀 되어

쉽게 시가 씌어지는데

이름난 시인은

목숨을 깎고 저미는 소리라 하고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이라고도 한다

부끄러운 나의 시詩는

거친 언어를 다 걸러내어

진한 앙금만 남겨둔

생명의 정수精髓이던가

시를 토해내는 깊은 밤의

고통을 모르는 나는

오늘 밤도 쉽게 씌어지는 시로

고통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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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산사寺의 언어言이다. 그만큼 정제된 맑은 소리라는 뜻이다. 법정 스님께서는 시를 영혼을 맑히는 소리라고 했다. 그리하여 청명한 날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을 한 줄 한 줄 천천히 읊으면 마음이 그리 맑아질 수 없다고 하셨다.

처음 시를 쓸 때에도(사실 지금도 ‘시’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부끄럽다) 과연 내가 쓴 글을 詩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브런치에 詩를 발행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페이스 북에 비공개로 꾸준히 글을 올리다 보니 꽤나 양이 많아졌고 산문보다 운문을 쓰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언젠가 이 짧은 글들을 공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브런치에 시를 계속 올리면서 너무 쉽게 시를 쓰는 건 아닌지, 시를 계속 발행해야 하는지 점점 회의적이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후에 스님을 평가하는 말 중에 가장 와닿은 말은 ‘글과 말과 삶(文言行)이 일치하셨던 분’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지금까지 내가 쓴 시와 내가 뱉은 말과 나의 삶은 어느 정도나 일치할까.


오랜만에 법정 스님의 생전 모습이 담긴 법문 영상을 봤다. 말씀마다 진리다. 때마침 당나라 운문 선사가 보름 법회 때 하신 말씀을 전해주셨다. “15일 이전의 일은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의 일을 어디 한 마디씩 일러보라.” 이미 지나간 과거사는 그만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때 선사의 대답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다.

법정 스님께서는 “좋은 날이 어디 있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순간순간 좋은 날을 만들어가야 한다.”라고 하셨다. 아무리 언짢은 일이 닥쳐도 ‘내 인생의 의미를 보다 알차게 하려고 이런 일이 닥쳤구나’라고 한 생각 돌이키면 언짢은 날이 언짢지 않은 날이 된다는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오늘 밤,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시가,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도록 존재의 시간, 정제의 시간 속에 나를 맡겨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mi1mwmCLdIE

# 쉽게 씌어지는 시 / 2021. 9. 6. pu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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