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촉촉이 내린다. 내리는 비를 지그시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서걱거리는 움직임 속에서 슬며시 피부에 와닿는 낯익은 감촉이 느껴진다. ‘아, 네가 나를 닮았는지 내가 너를 닮았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너를 그리는 이유를 알겠구나.’ 싶었다. 그저 여름 더위가 물러나서 날이 선선해지고 단풍이 붉게 물든다고 가을이 아니었다.
길을 걸으면서, 밥을 먹으면서, 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차분히 머무르고 있는 시간을 느낀다. 가을바람에도 홀연히 마음이 먼저 알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이 부신 햇살에도, 햇살 받아 싱그러운 풀잎에도 온통 가을이 배어있음을 느낀다. 어느새 가을은 바짝 내 곁에 다가와서 특유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이제야 숱한 시간을 뒤로하고 비로소 호젓한 숲길에서 가을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