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시간은 유수流水처럼 흘러
어제의 사람은 다 지나가고
지금 그곳엔 아무도 없다
삶이라는 강물은
죽음의 그림자를 늘 곁에 두고
요지부동搖之不動하는 바위처럼
묵묵히 흘러가니
문득 삶의 공허함이
가슴을 엄습할 때쯤,
나 지나온 그 자리에서
여린 씨앗 하나가
어느새 훌쩍 자라
연둣빛 싱그러운 향기를 뿜으며
해맑게 미소 짓고 있다
삶이란 내 안에서만
피고 지는 소화小花가 아니라
거대한 우주의 무대에서
천화天花의 퍼포먼스가
한바탕 펼쳐지는 것이다
한 생의 피고 짐은
우주의 대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축제祝祭의 일부이니
나는
불꽃처럼 피었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한 송이 정결淨潔한 꽃이다
/
얼마 전에 우연히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의 딸이 내가 수업 들어가는 반의 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솔직히 평소 조용하고 말이 없는 학생인지라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했다. 원격 수업일 때는 그나마 마스크를 벗고 수업을 받기에 신경 쓰고 살펴보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늦은 나이에 출산해서 그 기쁨이 더 컸던지라 백일을 갓 넘겼을 때 아이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났다. 참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때 눈 감고 빙그레 웃던 아가가 이렇게 중학생이 되어 내 눈앞에 탁하고 나타나니 그간의 공백기가 어찌 보면 짧고 어찌 보면 긴, ‘세월’이었음을 실감했다.
또한 내 아이들이야 태어나서 지금껏 계속 성장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세월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긴 공백을 건너뛰어 다시 만나니 그 세월만큼의 나의 시간도 덩달아 통째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아이의 출생을 기준으로 나의 14년은 어디로 갔으며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가.
최근 몇 년 간 숲길을 걸으며 마음의 눈으로 찬찬히 사계절의 순환을 지켜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절의 순환이 단순한 반복의 연속이라 여겨지겠지만 사실 같은 자리에서 해마다 피고 지는 꽃들도 똑같은 꽃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늘 새롭게 그 자리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삶이란 어쩌면 이 꽃들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 자리에서 생멸하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단순히 작은 ‘나’로만 살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순환이라는 대명제 아래 생명을 지닌 존재 그 자체로서 자신의 삶을 화려하게 펼쳐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한 생의 소멸은 영원한 끝이 아닌 다른 생의 새로운 시작이며 끊임없이 거듭되는 생멸을 통해 거대한 우주는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 천화天花 / 2021. 11. 23.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