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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Mar 19. 2022

배웅

나 그대를

붙잡지 않으리니

부디 잘 가시옵소서    


그대와 마주하여

온전히 함께 한 날들이

알알이 맺혀

은구슬이 되고  

   

나의 삶은

그대로 인해

더욱 붉게 물들었습니다

    

계절은 이제

그대를 거두어들여야

할 때가 되었으니

    

다시

근원根源으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입니다  

   

나 그대를 만나

삶을 알고

삶을 믿었기에  

   

찬란한 빛으로

내게 다가온 그대를

떠나보낼 생각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기꺼이 그대와 내가

하나가 되었을 때   

   

그대 다시 만나

유년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즐겁게 웃으며 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굳건히 믿기에

    

비로소

먼 길 떠나는 그대를

흔쾌히 배웅할 수 있겠습니다

     

잘 살아내도록

무던히 애써 준

그대를 위해   

   

온 존재를 실어

간절토록

고마운 마음 전하니  

   

그대여

부디 잘 가시옵소서  

   

“작은 오빠는 제 유년의 따사로운 햇살이었습니다. 눈부신 햇살에 눈을 찡그리면서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함께 울고 웃었던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작은 오빠는 지극한 효자였고, 성실한 남편이었으며,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늘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챙기고 살폈습니다. 저는 오빠가 화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 속의 오빠는 늘 웃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진짜로 웃으며 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는 지난해 12월 30일 늦은 밤에 한해를 마무리하며 썼던 글을 조금 손본 것입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이 시를 천사 같았던 나의 작은 오빠에게 바칩니다.”   
- 작은 오빠를 떠나보내며(2022. 2. 17. 49재날)   

/     


오늘은 아버지 기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퇴근 무렵이면 어김없이 ‘조심히, 천천히 오라’ 하던 작은오빠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다. 올해부터는 해외에서 귀국한 큰오빠네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작은오빠는 아버지 곁에서 환히 웃고 있다.


시간은 갈 뿐 다시 오는 것이 아니다. 시간 속의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중은 만남이지만 배웅은 이별이다. 마중은 혼자였다가 둘이 되는 것이지만 배웅은 둘이었다가 혼자가 된다. 인생길도 결국에는 혼자인 것, 가슴에 온통 붉게 물든 삶의 추억을 묻으며 홀로 걸어가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30일 늦은 밤, 나는 왜 잔뜩 쌓아둔 일거리를 제치고 이 시를 써야만 했던가. 불과 몇 시간 뒤 작은오빠와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윤종신 <배웅>

https://www.youtube.com/watch?v=wh8glF-GGR0

# 배웅 / 2022. 3.18. pu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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