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과수원과 함께하셨던 아버지.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시작한 주말농장이었지만 당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생전에 말씀하셨다. 과수원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아버지의 땀냄새가 짙게 배어났다. 젊은 시절 시작한 수십 년의 귤농사를 접고 폐원을 한 이후로 과수원은 아버지의 케렌시아였다. 과수원 정문에 당신이 직접 쓰신 '무릉도원'이 한낱 꿈이 아니었기에 늘 설레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는 도시락 하나면 충분했다.
검은색 선글라스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작업복 차림에 검은색 장화를 신은 아버지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늘 당당하시고 멋쟁이셨다. 오늘 같은 날이 아니었을까. 아버지께서 손수 만든 점심을 달게 먹고 오빠랑 나무 그늘 아래 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다 스르르 단잠이 들었던 날. 휘로롱 휘로롱 새소리에 얼핏 잠이 깨었는데 그 소리가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인지 진짜 새소리인지 궁금해하며 또다시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던 날...
지금 수목원은 봄 식구들의 재롱으로 활기차다. 유년의 그날처럼 바람은 뺨을 솔솔 간지럼 태우고 마음도 덩달아 한껏 들뜬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숲을 한 바퀴 휘젓고 인적 없는 곳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여기가 나의 무릉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