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8고八苦 중 애별리고愛別離苦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따른 괴로움을 말한다. 살다 보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당연하나 그 수많은 이별 중 각별한 이별은 상처가 크고 깊다. 상처의 정도에 따라 평생을 가슴에 묻고 마지못해 삶을 연명하는 이들도 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모르고 함부로 그런 말을 뱉기도 한다.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지만 삶은 그럴만한 이유로 펼쳐지고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는 각별한 이별이었다. 늘 죽음은 나의 일이 아니라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슬픔이었다. 그 당시 죽음이 나의 일이 되어 죽음 이후에 펼쳐지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의식들을 치르면서 삶 자체가 많이 혼란스러웠다. 흔히 말하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버지 영정사진을 4형제 중 막내인 내가 들게 되었다. 영구차 앞자리에 앉고 아버지께서 생전에 그토록 애정을 쏟았던 과수원과 집을 경유하는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아버지의 팔십 년 삶이 고작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에서 파노라마처럼 길게 펼쳐졌다.
영구차를 운전한 장례지도사는 의외로 젊은 청년이었다. 장지로 가는 내내 목이 메도록 아버지 얘기를 했는데 묵묵히 들어주며 '참 훌륭한 분이셨네요'라고 말을 했다. 또 내 이야기를 세심히 살피며 간간이 아버지에 대해 묻기도 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서럽게 울었다. 눈물 콧물이 뒤범벅이 되었다. 그때 말없이 내게 건넨 티슈 한 장. 낯선 이에게 받은 생애 가장 따뜻한 위로였다. 나의 슬픔을 함께해주는 진심이 전해졌다. 한참을 티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오고 가는 인연과의 이별은 필연必然이기에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다시 볼 수 없는 생사의 영원한 이별 앞에서는 삶이 헛헛하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차가운 손등에 나의 뜨거운 뺨을 비비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결국은 알 수 없는 또 다른 인연 속에서 사람의 온기가 전해지기에 남은 이는 그 체온으로 다시금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