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이
온몸을 내리쬐니
바짝 말라
대지에 널브러진
이파리마냥
몸은 점점 타들어간다
비지땀은
비 오듯 흐르고
얼굴에는
선홍빛 꽃망울이
점점이 번져나가
화염火焰의 기운이
가슴을 달군다
더위라는
이름을 몰랐다면
더위라는
뜻을 몰랐다면
저 풀잎처럼
유유하게
드러누웠을까
저 바람처럼
여여하게
흘러갔을까
/
교실에 선풍기가 없었던 시절, 더위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그럴듯한 손부채가 있으면 좀 사는 애였고 대부분 빳빳한 책받침 하나로 더위를 잊으며 행복해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선풍기, 에어컨이 생겨나자 이제 더위는 당연한 게 아니라 당연히 피하는 일이 되었다.
'덥다'의 기준은 무얼까. 평화롭던 교실도 더위나 추위가 서서히 닥칠 무렵이면 갈등이 시작된다. ‘에어컨을 틀자’, ‘춥다’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목소리 큰 애들이 승리하기도 하고 나름의 규칙을 정해 갈등을 줄여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늘 어느 한쪽의 불만은 교실 한쪽을 떠돌기 마련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교실에서도 한여름 더위에 냉방병을 호소하고, 한겨울 추위에 반팔티를 입고 부채를 휘두른다. 특히나 요즘 아이들은 조금만 기온이 높으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에어컨을 켠다. 그 순간 몸은 시원할런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작은 것 하나도 견딜 줄 모르는 허약한 육체와 정신을 지닌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스승님께서는 더위는 피하는 게 아니라 잊는 것이라며 피서避暑가 아닌 망서忘暑의 삶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노자는 추위에는 몸을 움직이고 더위에는 고요히 있으라고 했다. 즉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수용하면서 사는 것을 중요히 여겼다. 저 풀잎들은 더위라는 이름名을 모르고 덥다는 상相도 없을 테니 선풍기나 에어컨은 필요 없겠다. 아니 선풍기도 모르고 에어컨도 모르니 필요함 자체를 못 느끼겠다. 풀잎이나 바람은 아무런 의도도 억지도 없다. 풀잎은 그저 바람에게 몸을 내맡겼을 뿐이며 어쩌면 바람도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살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는 고정관념을 만들어 온갖 갈등과 괴로움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삶은 정해진 답이 없는데 스스로 답을 정해놓고 이렇다 저렇다 하며 자신을 그 틀에 가두고 못 견뎌한다. 때로는 저 풀잎이나 바람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게 명약일 때가 있다.
# 편견偏見 / 2021. 8. 16.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