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케묵은 지난날의
절름발이 사연들이
긴 밤 내내
줄기차게
빗방울 되어
가슴을 붉게 긁었는가
이른 새벽녘
기억을 부르는 소리에
까무룩 귀 열어보니
창가에 손님이 찾아들었구나
한여름의 서럽던 눈물
쏟아내고야 마는
이른 새벽의 감응感應,
긴 세월 삭혀
말깡 농축되니
건져 올리는 것마다
파닥거리는 은빛 갈치의
서슬 퍼런 감성이다
기억은
먼 과거로의
환상 여행이 아니라
억눌린 잔여殘餘의 감성을
현재로 끌어당겨
곱씹는 되새김질이다
단맛이 다
빠져나가야만
더는 동요動搖되지 않는
무미無味가 되어야만
뱉어내는 삶의
아련한 편린片鱗이다
/
새벽녘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사위는 어둑어둑한데 빗줄기가 허공을 그을 때마다 어둠 뒤편에서 서서히 동이 터오고 있음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영원히 어둠 속일 것만 같은 삶 속에서도 이렇게 어둠 뒤편에 희망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면 지금을 버티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리는 비를 눈물이라 했던가. 다 풀어내지 못한 지난 사연들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감추고 싶었던 것들, 또는 목구멍까지 차오르게 말하고 싶었던 것들인데 구구절절 펴지 못한 채로 꽁꽁 싸서 가슴 저 밑둥치에 묻어버렸건만 저 스스로 박차고 수면 위로 떠오른다. 예전이었다면 두더지 게임을 하듯 불쑥 머리 내미는 사연들을 죄다 뿅망치로 두드렸겠지만 이제는 내버리기로 한다.
그 사연이라는 것도 묵혀낸 세월 속에 잘 익은 장이 된 게 아니라 쓸데없이 곰팡이만 잔뜩 꼈다. 내리는 비에 훨훨 씻어낸다. 어떤 생각도 감성도 덧칠하지 않으니 삶 자체가 알몸을 드러낸다. 세월의 묵은 때가 생각을 부풀리고 감정을 부추길 뿐 삶은 그 자체로 순수하다. 이 모든 기억들이 삶의 자양분이었음을 알기에 더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 기억記憶 / 2021. 8. 12.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