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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소녀개가 사는 법

봄을 보내며 2017. 7. 11.

by 싱싱샘

우다다다다다다다 쿵

으르르르르르르르 왕

야! 너희 둘 뛰지 말랬지.


거실을 빙 돌며 살살 시동을 건다. 한 놈이 제 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 위로 쿵, 몸을 던지면 그 뒤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 한 놈이 왕, 소리를 지른다. 소녀와 소녀개. 내가 기르는 애들의 저녁 일상이다.


열세 살 소녀. 검고 풍성한 머리에 짙은 눈썹과 긴 속눈썹. 얼굴만 봐서는 천생 여잔데 몸을 가만히 안 둔다. 테이블 위로 발이 올라오는 건 예사요, 요가 선생님 뺨치는 자세로 티브이를 보는데 나만 보기가 아깝다. 식탐은 또 어떤가. 운전하다가 뒷좌석에 앉은 녀석에게 나도 새로 나온 빼빼로 맛 좀 보자 했더니, 글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 대문이 잠겼다고 담을 훌쩍 넘고, 호기심은 또 얼마나 많은지. 2년에 한 번 대학병원 응급실 탐방이 원칙인가 보다.


다섯 살 소녀개. 사람 나이로 서른다섯쯤 된다. 산책 갈까 하면 하네스와 손가방이 걸린 곳으로 가서 냄새를 맡는다. 집에 돌아오면, 발 닦아야지 하는 소리에 화장실에서 얌전히 기다린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인간 엄마 손에 자라서인지 풍산개 유전자는 어느 털에 박혔나 싶다. 길가에 날아다니는 검은 봉지에 혼비백산하고 사료도 한 알 한 알 세어먹는 녀석은 어쩌면 나를 닮았다. 산책로에서 만난 친구 개와는 살며시 코 인사만 해야지 엉덩이 냄새까지 맡는 등 절차가 길어지거나 누군가 예쁘다고 다가왔다간 불안지수가 상승한다.


발랄 소녀와 쫄보 소녀개 그런 둘이 만난 거다. 2012년 늦가을 나는 문산 지인 아파트에 도착해 수건에 둘둘 싸인 1킬로그램 생명체를 건네받았다. 강아지를 손꼽아 기다린 소녀는 흥분 최고조였으나 품에 안은 수건을 흔들어댈 순 없으므로 눈코입 온 얼굴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남겼다.


‘내 품에 안긴 강아지는 수건에 감싸져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떨고 있는 것을 알아챘겠지만 그때는 초보 개언니였기 때문에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그때 상황이 꿈만 같았다. 도착해서 집을 만들어주고 잠시 껴안고 있었다. 생명이 느껴졌다. 사랑스러웠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가방에 쏙 들어갔던 소녀개는 수의사 선생님을 놀라게 하며 1년 만에 12킬로 중형견으로 성장했다. 개춘기 시절 여느 개처럼 소파 모서리도 해먹고 벽지도 찢으며 자랐다. 1학년 꼬마가 6학년 소녀가 될 때까지 둘은 한 집에서 먹고 자며 식구가 되었다.


소녀는 늘 서로 이해하고 말이 통하는 친구를 원했다. 아이들은 잘 놀아주는 상대만 원할 뿐이라고 했다. 다섯 살 때부터 친구였던 소울메이트와는 학교가 달라 자주 만나기 힘들었다. 소녀와 나는 합의를 봤다. 엄마 인생에 친구는 둘뿐이야. 그것도 대학 가서야 만났고. 좋은 친구는 어느 날 오더라, 진실한 사람으로 살고 있으면. 소녀는 집에 널린 책과 친구가 됐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집에 오면 단짝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뭔가 특별한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같이 있었다. 소녀가 책을 읽으면 소녀개는 코앞에서 졸았다. 멀리 있다가도 소녀가 방에서 나오면 다다다다 달려와 두 발로 벌떡 일어서 반겼다. 희한하게 소녀에게만 그래 주었다.


나는 그런 둘이 함께 있으니 조금은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다.


덩치만 크지 쫄보인 개를 소녀가 지켰고 엄마 없는 시간 소녀 곁에는 소녀개가 있었다. 작은 손으로 쓸어주고 산책을 하고 무려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소녀개는 소녀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소녀는 소녀개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결말은 모르겠다. 지금 소녀와 소녀개는 행복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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