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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기다려준 너에게

3부 여름 05

by 싱싱샘

너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나에게 왔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였어. 어릴 적 너희와 살아 보았기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어. 너희를 돌보는 일은 내 엄마의 일이었고 나는 오가는 사람일 뿐이었어. 그래도 너희들은 한결같이 반가워했지. 너를 데려오고 오래지 않아 알았을 거야. 나는 너를 기를 준비가 안 된 사람이었어. 일과 육아, 집안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너는 겁 많고 소심한 아이였어. 나는 밖으로 나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어. 우리는 고양이와 집사처럼 함께 있을 뿐이었어. 너는 너의 세계를 배우지 못한 채 나에게 왔고 나는 그걸 가르칠 수 없는 엄마였어.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과 살았으니 너는 볼 수 있지만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된 거야.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어. 친구가 하는 말도 알아듣지 못했거든.


너는 몸도 아팠어. 첫 수술이 종양 수술이라니. 양성이어서 다행이었고 최소한으로 절개를 했음에도 나는 두려웠어. 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될 텐데. 나는 너를 세상에 막 내놓지 못했어. 너를 놓치면 너는 나를 찾아올 수 없을 거고 허둥대다 사고를 당하고 말 거야. 그러면 나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래서 너를 꼭 붙들었는데 어쩌면 너는 갇힌 것 아니었을까. 알 수 없는 이유로 너는 방광염에도 자주 걸렸어. 나도 젊은 날 툭하면 방광염에 걸렸거든. 링거를 맞으며 내가 무슨 스트레스를 이렇게 받았나, 나는 약하게 태어난 걸까 생각했는데 너를 보면서 우리가 닮았나 가슴 아팠어.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거든. 내가 혹시 너를 잘못 기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답은 없었어.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었어.


너는 내가 집에 없으면 물도 먹지 않고 오줌도 누지 않고 나만 기다렸어. 내가 오면 그제야 물을 먹고 참았던 오줌을 누니까 패드는 노랗게 물들었어. 방광염 때문에 너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달리는 게 일상인 날이 있었어. 아직도 네가 오줌 눌 때 나는 너를 지켜봐. 너는 지켜보는 눈이 싫어. 그래서 나는 몰래 봐. 몰래 보는 나를 너는 가끔 모른 척해 줘. 나는 네 소변 끝에 피가 반 방울만 섞여도 알아채는 전문가가 됐어. 이제 덜 아파 주어서 고마워.


지난 3년간 너는 정말 기다리기만 했네. 누웠던 자리가 조금이라도 더럽다고 느껴지면 바로 헤치고 깨끗한 곳에 눕기를 좋아하는데. 한 번 혀 닿은 물은 다시 먹기 싫어하는데. 발에 물 묻는 걸 싫어하고 발이 빠질 것 같은 위험한 곳은 질색이었지. 그러니 길가 배수구만 있으면 건너뛰었고 발에 물이 묻으면 파드닥 털었어. 목욕도 싫지만 엄마가 하라니까 참았지. 발톱은 죽어도 깎기 싫어서 꽥꽥 소리를 질러댔지. 수건으로 닦는 것도 싫어서 위협하며 도망가는 너. 하나도 무섭지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반쯤 울고 싶었어. 어째서 우리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너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렸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지.


사람들은 자주 물었어. 시바견인가요. 그러기엔 넌 눈이 동그랗고 커. 맑은 네 눈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팠는지도 몰라. 수술 후 너는 몸무게가 늘었어. 엄마가 너를 목욕시키기 점점 힘들었어. 그래도 너한테는 냄새가 하나도 안 나.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이 네가 같이 사는 줄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지. 하지만 나는 네 냄새를 알아. 네 냄새를 좋아해. 훗날 우리가 헤어지면 그 냄새부터 그리울 거야. 우리 이번 주엔 목욕을 다녀왔어. 크고 우람한 팔을 가진 원장님이 널 데려가셨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2년 만에 다시 만난 그분께 나는 부탁을 했어. 발 털, 엉덩이 털 안 밀어도 좋고요, 얼굴 털도 안 말려도 좋아요. 그냥 발톱 깎고 목욕만 최대한 빨리 해주시면 돼요. 유능한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


‘겁나서 무는 척하는 거예요. 심지어 입에 손이 들어가도 물지 않는 아이예요.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없어서 스트레스받는 환경 자체를 너무 힘들어하게 된 것일 수 있어요.’


엄마는 또 한번 속상했지. 어쩌면 너는 아주 평범한 아이였는데 엄마가 잘못했구나. 목욕한다고, 발톱 깎는다고 너는 죽는다고 울었어. 엄마는 네 울음이 쟁쟁했는데 모른척해야 했어. 진짜 시바처럼 보송보송해져 나온 너는 귀여웠어. 흰 양말 신은 발은 또 얼마나 예쁜지. 나는 산책한 뒤의 네 발도 더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네 개를 합쳐봐야 내 발 하나도 안 되는걸. 오랜만에 우리 둘만 드라이브했다. 운행 중엔 앉고 신호 정차 중엔 창문 밖으로 코를 내미는 너. 이제 네 코는 어린 강아지처럼 윤이 나지 않아. 콧등의 털도 많이 빠진 것 같은데 나는 코에 밤을 발라주면서 얘기해. 너는 온통 기다리기만 했구나. 그러면서 코가 늙어버렸구나. 눈이 늙어버렸구나. 여기저기 털이 빠져가고 있구나.


우린 앞으로도 고양이와 집사처럼 살겠지. 너는 늘 내 곁에 앉아 있을 테니까. 진짜 고양이라면 달싹 날아 무릎에 올라왔겠지만 너는 내 발밑을 차지해. 그러면서도 어쩌다 발이 닿으면 자리를 옮겨. 네가 스케일링을 받으러 가면 마취를 해야 하거든. 아주 잠깐의 시간 - 하나, 둘, 셋 만에 힘 빠진 네가 내 팔에 툭 떨어지는데 내 심장이 같이 떨어져. 언젠가 먼 길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그걸 느끼겠지. 연습은 소용없어. 나는 펑펑 울고 말 거니까. 어느새 네가 열세 살이야. 번잡스러운 것 싫어하고 누군가의 아는 척도 싫은 너는 고요한 시간에 네가 다니는 길로만 산책할 거야. 가끔은 함께 카페에 앉아 있지 않을래. 얘는 아주 자그만 고양이라고 소개해볼게. 그때도 너는 그림처럼 앉아 있겠지. 엄마가 있으니 이유도 모르는 채 몇 시간이고 기다릴 거야.


나의 고양이 같은 강아지, 그래도 칠 년은 더 내 곁에 있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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