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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3부 여름 10

by 싱싱샘

아팠다. 아플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따뜻한 물에 탄 테라플루를 마시며, 언젠가 약도 먹지 않고 꼬박 앓으리라. 나는 책 속으로 숨어들었다. 한 권 다 읽을 때까지만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쓰면서 살기로 한 사람들이 있어 나는 아플 때 그들의 인생과 문장 앞으로 달려간다. 일하고, 사랑하고, 좌절하고, 아프고, 불안을 견딘 시간이 고스란히 쓰여 있으므로 나는 쓰는 이를 따라가며 매일의 반복에 지치지 않기로 한다. 여전한 방식으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쓰는 이의 글을 앞에 둔다는 건 그래서 선배 이야기를 듣는 일. 설레어라.


카톡방에 동생의 학위수여식 영상이 도착했다. 연구원으로 일하다 나이 들어 떠난 유학이다. 이름이 불리고 네가 걷는다. 목에 걸쳐지는 새파란 긴 후드가 등에 감겨 떨어진다. 이제 너는 네가 공부한 학문 쪽으로 뚜벅뚜벅 걷겠구나. 훌륭한 선생이 되어라. 좋은 선배가 되어라. 스무 살 시작한 공부가 마흔 끝에 끝난 걸 보니 모든 일엔 끝이 있어 안심이다. 인생은 그저 걷는 사람이 되는 일이고, 내내 걸어서 어딘가 도착한 사람 모두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다. 모든 게 대단한 일이었어. 마음으로 울다, 진짜 운다. 앓는 기쁨과 우는 기쁨이 잔치처럼 끝나고 끝은 시작이니 우리 다시 걷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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