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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을 확인하는 순간

3부 여름 12

by 싱싱샘

드디어 하루 숨 고를 시간이 생겼다. 여름학기 책 모임을 마쳤고 고등학교 아이들 여름방학 수업도 끝이 났다. 학생들은 개학을 하지만 여름 한가운데 놓인 도시는 펄펄 끓는다. 잠깐 시간을 내어 딸이 부탁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출력하러 갔다. 주민센터 무인발급기를 이용할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나 그건 본인만 가능하다.


“딸아이 생활기록부를 출력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혹시 성년인가요.”

“네, 성년인데요.”

“그러면 불가능합니다. 자녀가 미성년일 경우만 가능하고요. 따님 주민등록증과 도장이 있으면 대리로 가능합니다.”

“딸이 기숙학원에 있어요. 본인이 신분증을 가지고 있거든요.”

“기숙학원에서 가까운 주민센터에서도 가능합니다만, 저희는 학교에 요청하고 서류를 받아드리는 거라 몇 시간 소요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아이가 성년이 되면 부모라도 서류를 뗄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내 아이, 라는 말이 익숙한 나는 아주 조금 당황했고, 그 당황은 낯섦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는 천천히 걸어 나오며 얘가 성년이 되었네… 좋았다.


밤 아홉 시가 다 되어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딸이었다. 의논할 일이 있어 전화한 거였는데 통화 중에 “내가 생활기록부도 출력했는데…” 하는 말을 들었다. 어? 생기부를 출력했다고? 주민센터에서 안 된다고 한 날, 본인 출력은 아주 간단하다고 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프린터만 있으면 학원에서도 인쇄가 가능하다는 걸 찾아보고 필요한 시점에 해결한 것이었다.


전화 끊고 좋았다. 얘가 성년이 되었네. 딸은 그 생활기록부를 들고 혼자 수시 상담을 하러 간다. 입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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