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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세심한 사람

4부 가을 01

by 싱싱샘

바지 하나 사둔 게 길다. 이 나라 사람들 다리는 대체 얼마큼인 건가. 한 단 접고 1센티 더 자르기로 한다. 그래도 길지만 긴 게 멋인 바지니까. 바지 끝에 지퍼가 달려 있어 잘라도 괜찮을까 했는데 지퍼에 크게 영향받지 않게 되어 있다. 물론 내 생각이고… 세탁물과 함께 들고 갔는데 단골 세탁소 사장님이 보시더니, 그럼 이만큼이면 되겠네 한다. 지퍼도 보고 시원시원하게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다음 날 찾으러 갔더니 바지 수선은 되었는데 여름옷 다림질이 덜 되었다. 나는 ‘괜찮아요. 급한 것 아니에요.’ 말씀드리고 바지만 들고 왔다. 연신, 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되는데 하셨다. 내가 두 번 걸음 하는 게 미안한 거다.


거의 새 신발인데 밑창이 깔끔하게 떨어졌다. 다른 쪽과 비교하니 공장에서 덜 붙어 나온 것 같았다. 매장에 맡기자니 멀고 오래 기다려야 했다. 내가 자주 신는 로퍼도, 발등 바느질이 터졌다. 신발 두 켤레를 들고 단골 구둣방에 갔다. 사장님께 보여드리니 뒤가 없는 뮬 스타일인데 어떻게 여기가 뜯어질 수 있냐고, 혹시 뒤에서 누가 밟았는지 물으신다. 기억났다. 지하철 내리며, 길 가다가, 뒤꿈치를 두 번 밟혔다. 걷다 멈출 정도로 세게 밟혔으니 순간 내 발등에 힘이 들어가 뜯긴 거였다. 한 번이면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반복되니 그랬을 것이다.


다음엔 이렇게 밟는 사람 데리고 오세요.

흐흐, 네.

어딜 가냐고 하면 좀 갈 데가 있다고 하세요.


구둣방 사장님의 농담이다. 본드 붙이는 건 금세 되니까 기다리고 로퍼는 다음 날 찾기로 했다. 먼저 온 손님이 오만 원권밖에 없다고 하니 신발 가지러 오면서 줘도 된다고 했다. 그분 가고 나서 “저는 만 원짜리니 먼저 드릴까요?” 했더니 “그러지요, 모아서 거슬러 줘야지요. 다음엔 한 수십만 원 찾아와야겠네.” 하셔서 한 번 더 웃었다.


내일이면 새것처럼 돌아올 것이다. 큰돈 아니지만 돈 쓰는 보람 있는 단골 가게가 오래 잘 되었으면, 나이 든 사장님들이 오래 건강하셨으면 한다. 그렇게 미약한 인연으로 좋은 분들 곁에 두고 살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생겼다. 생긴다. 상대가 겪을 불편함을 신경 써주는 사람, 인생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주는 농담을 건넬 줄 아는 사람. 나도 그런 세심한 사람이 되고 싶어. 오래 그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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