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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이별 그리고 시작과 끝

1부 겨울 05

by 싱싱샘

새벽 일곱 시, 기숙학원이 보인다. 해가 안 떠 캄캄하다. 다섯 시 반 조금 넘어 출발했는데 십 분 정도 정체된 것 빼곤 잘 도착했다. 설 연휴가 시작된 금요일이었다. 한 달 만에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그동안 보낼 일이 없으니 메시지가 아래로 아래로 밀려 딸의 이름으로 검색해야 했다.


근처에 도착해 있으니 폰 받으면 연락하자.


휴대폰에 뜨는 이름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금세 전화가 온다. ‘엄마!’ 목소리도 꼭 한 달 만이다. 글자들로도 충분히 온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는 다르다. 시간 되면 나오라고 하는 용건이 끝인데 딸은 끊기가 싫은가 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학기 머물렀던 기숙사에서 처음 나오는 주말에도 그랬을 거다. 삼 년 전이라고 그새 잊었다. 우린 분명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 며칠 지나면 잊어버려지는 이야기를 했다. 전화를 끊으면 다시 못 만날 것처럼 오십 분을 통화하며 나오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메시지에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마침표 없이 줄줄줄 나온다. 그리고 통화 끝에 8시 25분, 배낭을 메고 큰 빨래망에 한가득 빨래를 담은 딸이 유리문을 밀고 나온다.


4박 5일의 기숙학원 첫 휴가가 시작된 날이었다.


학원 정기 휴가는 한 달에 한 번 3박 4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 휴가 끝에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어 하루를 연장할 수 있었다. 늘어난 그 하루가 얼마나 마음의 여유를 주던지. 딸도 나도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해진 날이 얼마나 금방 오는지 잊고서. 날은 이미 밝았고 이천에서 서울 오는 길 우리는 시내에서 보지 못하는 서울우유 탱크로리, 황량한 들판, 낮은 산의 능선 같은 걸 보면서 집에 왔다. 나는 다섯 시간 만에, 딸은 한 달 만에.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여덟 번만 하면 시험 치는 날 온다고 큰소리 쳤는데 지금 보니 여덟 번이나, 였다. 추웠다 더웠다 하면 감기 들기 딱인데 마음의 감기가 올까 걱정이다.


고3 때는 설과 추석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우리 집에서 떡국을 먹기로 했다. 연희동 떡집이 맛있다고 해서 사 오고 싶었는데 여력이 안 됐다. 동네에서 떡을 사고 대신 고기는 제일 비싸고 좋은 소고기로 넉넉하게 샀다. 큼직하게 넣고 싶었는데 썰어달라고 부탁했더니 고기가 잘다. 딸은 좋다고 했지만 솜씨 좋은 올케가 끓인 소고기미역국처럼 푸짐하게 끓여내고 싶었다. 내 마음이 그랬다. 사람 노릇 좀 하며 살고 싶었달까. 고3 엄마라 힘들기도 했지만 면제도 많이 받았다. 주말을 주말답게, 방학을 방학답게, 연휴를 연휴답게, 고등학생은 언감생심이다. 거기에 엄마는 세트로 딸려 있고 말이다. 딸이 대학생이 되고 나는 해방되어 쉬어볼까 했는데 알고 보니 기숙학원 재수생도 휴가 기간은 쉴 수 있다. 에라 모르겠다, 이번 휴가에는 책 한 권 아니 글자 한 자 읽지 않고 놀겠다고 결심해 보았다. 그렇게 설 준비하고 설날 당일까지 이틀이 지나갔다. 느긋하게 온 가족 모여 커피 내리고 케이크 먹고 과일 먹고 집안이 향기로웠다.


딸의 첫 휴가 쇼핑에 함께 나섰다. 일주일에 이틀은 운동해야겠다고 하더니 새 운동복이 필요했고 오래된 슬리퍼가 드디어 찢어져 크록스를 사겠다고 했다. 기숙학원에서는 가까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갈 일이 많아 운동화는 필요 없고 앞이 트여 있는 슬리퍼보다는 크록스가 제격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재수용 신발인가 보다. 신중을 기해 키티 얼굴과 하트 지비츠까지 골랐다. 희한하게 유행하면 더 예뻐 보인다. 여자 둘 오붓한 쇼핑은 점심에 시작해 저녁에 끝났다. 아울렛 간 김에 사고 싶다던 흰색 배낭도 사주었다. 졸업 선물이라고 했더니 ‘씨익’ 웃는다. 제발 대학생이 되어 메라, 주문도 넣어주었다. 연휴라 사람은 미어터졌지만 약간 신이 났다. 외향형 딸은 지치지 않았고 내향형 엄마는 지쳤지만 딸의 ‘씨익’은 에너지원이 되어준다.


***


졸업식이 2월 13일인데 12일까지 연휴라 꽃집이 열지 않을까 걱정됐다. 누워 뒹굴거리며 검색을 하는데 대체공휴일부터는 영업을 하는 가게들이 있다. 졸업식에 가는 마음이 기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삶은 모든 과정을 잘 통과하는 일이다. 통과할 때마다 의례는 또 얼마나 중요한지 내 삶이라는 작은 경험과 책이라는 넓은 경험으로 배웠다.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튤립을 교복과 잘 어울리는 컬러로 주문하고 커다란 꽃다발을 보니 어찌나 마음이 좋던지 종종 꽃을 사야겠구나 싶었다. 꽃 사는 기쁨조차 잊고 살았다는 것도 잊었다.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이 그랬다.


딸이 고3이었던 해 입시가 유난히 어려웠다. 수시 지원까지 가기도 힘든데 수시 합격의 좁은 문을 통과한 친구 수도 아주 적었다. 나는 아이가 진학할 때마다 꿈을 꿨다. 이번에도 두세 번 꾸었다. 잘생기고 예쁜 키위를 들고 딸이 자랑을 하기에 두 학교는 붙겠구나 했는데 웬걸, 여신 포르투나는 대체 무엇을 하셨나. 그래도 삼 년을 수고 많았다. 꽉꽉 채워 수고했다. 어려웠던 입시에서 끝내 살아남은 친구들 합격 소식에도 흔들리지 않던 딸은 유학반에서 미국 대학교 입시를 준비한 절친의 합격 소식에 잠깐 표정이 달라졌다. 중학교 동창인 두 아이는 과거 두 외고를 놓고 각자 학교를 선택했다. 나는 일하는 엄마라 셔틀 없는 학교는 상상하기 어려웠고 근처로 이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딸을 보고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말해주었다. 엄마, 우리는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어. 그러니 후회는 없어. 그리고 부러울 땐 부럽다고 말하는 게 또 최선이더라고. 둘은 휴가 중 하루를 내어 만나더니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유학을 떠나는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이 잘 적응할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과 고민이 있었다. 딸은 친구를 만나고 와서 역시나 솔직히 이야기하니 마음이 풀렸다고 했다. 모두 참 멋있다. 피맥을 했는데 피자가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고 포장해 덜렁덜렁 들고 왔다. 삼각형 노란 박스가 예쁘기도 했고 그냥 아이 마음이 좋아서 빈 상자를 식탁에 두었다.


졸업식 날이다. 그리고 기숙학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교복 입는 마지막 날이라고, 학교에도 마지막으로 가는 날이라고 우리는 말했다. 그날이 왔다. 고달팠지만 찬란했던 십대, 딸의 친구가 했다던 말이 한동안 마음에 박혔다. 그래, 이제 너희는 이제 고달팠지만 찬란했던 십대를 보낸다. 젊음은 어째서 그리 짧고, 짧은 것들은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가. 식은 간소했고 열 반 아이들이 각각 만든 영상과 교가를 끝으로 교실을 나섰다. 휑한 교실과 깨끗이 닦인 초록 칠판, 아이의 주황 넥타이 컬러에 맞춘 주황 튤립, 눈에 새기고 싶은 그림인 양 사진을 남겼다. 사물함 위에 덩그마니 놓인 코끼리 쿠션 하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급훈이 쓰인 액자 같은 것 이제 다시 볼 일이 없구나.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불었다. 아이의 긴 머리가 날렸다. 분명 봄기운이 느껴지는, 봄바람이었다.


고속도로를 오가야 하므로 낮 시간에 움직이기로 했다. 기숙학원 추리닝으로 갈아입으며 아무렇지 않았던 아이가, 삼십 분 알람을 맞추고 잠깐 차에서 자던 아이가 아, 하루만 더 있고 싶다, 블로그에 휴가 이야기도 쓰고 나와서 찍은 사진도 정리하고 음악도 듣고 싶다 한다. 그러면 정말 좋겠다, 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내년엔 그럴 수 있겠지. 내가 찍은 졸업 사진만 백 장이다. 아이의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진 사진을 본다. 찬란하다. 품에 안은 꽃같이 예쁘다. 고달팠지만 찬란했던 십대, 나의 지난 이십 년, 드디어 보낸다. 새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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