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작가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다. 영화는 소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지어진 제목인 것 같다. 소설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부담을 가질 법도 한데. 영화는 담담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갈길을 간다. 소설가 구보가 오랜만에 외출을 하게 되고 그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회색 톤의 색감을 통해 영화는 진중함과 고독함을 전달해 낸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는 구보의 작은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진중한 영화다.
구보는 소설을 쓸대도 원고지를 고집하는 인물로 진중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고수하는 인물이다. 출판사 편집인은 사장의 변해버린 마음으로 대중적인 출판물을 준비해야하기에 구보에게도 변화를 요구한다. 어머니도 소설을 그만 쓸 것을 바라며, 직업을 구해서 살아갈 것을 원한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구보 뿐인 듯하다. 그렇다고 구보는 사람들의 요구에 주눅들거나 우울함을 느끼는 인물은 아니다. 아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 옛 애인과의 만남은 계속 해서 어긋나고, 우연히 연극을 하는 오랜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이 친구 역시 구보와 다를 바 없이 성실하고 변함 없는 예술에 대한 순수함을 버리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와 그의 여배우의 만남을 통해서 구보는 힘을 얻는다. 박종환 배우의 연기는 구보의 고독함과 진중함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