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감독의 팬으로서 기대하던 영화 괴인의 정체를 보았습니다. 전통 국악의 빠른 연주소리가 긴장감을 배가 시킵니다.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동생을 팔아치운 후 허기를 달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 다시 동생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동생이 있던 곳엔 피만 흥건하고 동생의 모습은 없습니다. 발자국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니. 왠 까마귀가 그녀에게 동생을 찾기 위한 3가지 단서를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 단서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이제 다시 자신의 주인인 양반을 죽인 동생이 숲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까마귀를 만납니다. 하지만 분노에 차 있던 동생은 까마귀를 죽여버리죠. 그리고 모습이 변한 누나를 만나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죽여버립니다. 물론 어쩌면 자신을 버린 누나가 미워 알고도 죽인 걸지도 모르겠네요.
괴인의 정체는 허기를 이기지못한 누나가 동생을 팔아치우는 내용인데요. 결핍에 시달린 인간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버리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다시 그것을 찾으려 하지만 오히려 이용만 당한채. 그 소중한 것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인간을 속이고 기만하는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네요. 아니면 그보다 더 큰 그저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겠구요. 소중한 것을 팔아버리고, 다시 찾으려 하지만 오히려 사회에게 이용당한 후 죽임을 당하고 마는 비극적인 이야기 말입니다. 괴상한 형체를 한 괴인을 그녀는 두려워하고 혐오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괴인이 되고 마는 아이러니한 순환 구조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팔아버리는 순간 그녀는 괴인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까마귀의 존재는 무엇일까요. 사람을 비웃고 이용하는 자본가가 될 수도 있고, 약한 사람들을 비웃고 혐오하는 대중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박세영 감독의 전작들보다는 친절한 편입니다. 이야기가 그래도 서사구조의 범주에 들어가 있어서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미니멀한 이야기와 신화적 구성. 전통 악기의 신비스럽고도 괴기스러운 이용은 영화의 분위기를 더 무섭고도 신비롭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