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lug, 2020
세상에는 분명 좋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겠지요. 하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이 영화는 바로 후자에 속합니다. 이 영화의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이야기는 가시밭길 같은 상처를 넘어서 비로소 홀로서는 춘희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춘희처럼 상처 받고 힘겨운 청춘의 시기를 보낸 분들에게는 너무도 뜻 깊은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청춘을 보낸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는 마음에 남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영화는 엄마를 잃은 춘희가 할머니 댁에 들어오는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후로 현재로 이동해 다 큰 춘희의 모습을 보여주죠. 여전히 할머니 댁의 작은 다락방에서 거주하며, 사촌 오빠의 식당에서 마늘을 다듬는 소일거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영화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할머니 댁에 살며 친척들에게 상처 받았던 기억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현실 속의 춘희는 너무 티 없이 맑아서 상처가 남겨져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1998년 사춘기 소녀 춘희가 집에 들이닥치고, 어른이 된 춘희와 마주하게 됩니다. 티격태격 시간을 보내던 두명의 춘희는 어느 날 집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청춘의 모든 것이 담겨진 집은 정체성과도 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을 떠나야하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어린시절의 상처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고통속에서도 춘희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과거의 춘희를 안아주며 상처받은 과거와 화해하는 한편 홀로 설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 내용을 알고 본다고 해도 영화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지만, 모르고 보시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춘희 역을 맡았던 강진아 배우와 박혜진 배우의 매력이 영화의 매력을 배가 시켰습니다. 다른 배우가 했으면 이보다 잘 할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배우들의 의상이나 할머니 집의 미술 디자인도 예쁘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핑게를 대자면, 얼마전까지 한시간 이상 집중해야하는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찜해놓은 목록과 네이버 스토어로 다운로드 받아놓은 영화는 한가득한데 보질 못했어요. 이 영화는 4개월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네요.
사실 지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대부분 전주에서 촬영되었는데요. 장비대여나, 촬영지원 같은 부분은 전주영화제로 기반을 닦은 전주이기에 많은 부분에서 과거보다 발전을 했지만, 배우와 스텝들을 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필자가 이런 사정을 아는 것은 지방에서 영화를 만들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 영화를 완성해 냈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들이 많아져 지역에서도 꾸준히 좋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역에서도 스텝과 좋은 배우들이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