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밤(윤서진) - 리뷰 & 해석

by 멜리에스컬쳐클럽

1.

몇 번의 고민 끝에 영화를 예매했습니다. 제목과 스틸 사진이 주는 초록밤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보고 싶었던 영화였거든요. 마침 마지막 상영이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초록밤은 시적인 은유와 아름다운 장면들, 우울과 고독, 권태로 가득찬 삶에 찾아오는 조용한 죽음을 응시하는 영화였습니다.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장면들을 보면서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였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극장에서 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극장에서 관람하실 것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인과관계에 의한 이야기에만 흥미를 느끼시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너무 난해하고 어렵다거나 이상하다고 느껴지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

초록색은 보통 희망과 성장 같은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횡단보도에서 우리가 건너가는 불도 초록색 불이죠. 그만큼 친숙하고 안전함을 뜻하는 색입니다. 하지만 이 초록색이 밤과 만나게 되니 정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초록빛으로 번진 밤의 이야기는 불안과 두려움을 가중시키는 것 같았어요. 푸르른 열대 우림을 생각해보세요. 밤에 그 속에서 혼자 남겨져 있다면 정말 두렵겠죠. 초록색은 번성하는 성정하는 식물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데요. 반대로 영화 속의 인물들은 늙었고, 권태에 익숙해진 인물들로, 극명한 대비가 이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초록색의 성장은 오히려 불안하고 불완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이 챕터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영화 속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는 주제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채 목매달린 고양이의 이미지로 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노인은 나무 밑을 삽으로 파서 고양이를 뭍어줍니다. 죽어버린 동물에 대한 예우를 한 것이죠. 저는 왜 경찰에 신고해서 범인을 단죄하지 않았는지 화가 났는데요. 생각해보니 노인은 단죄보다 고양이에게 안식을 주고 예우를 갖춰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로 노인의 아버지가 죽음을 맞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당황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미 나이를 많이 드신 아버지의 죽음이었기 때문이고, 이제 나이를 많이 먹은 노인에게 죽음이란 결코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 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집을 처분하기 위해 고향집으로 내려가 아버지와 함께 살던 노파에게 집을 떠나 줄 것을 말하게 되고, 노파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이 죽음은 큰 의미를 남기게 되죠. 이 죽음은 심리적 타살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노인의 가족들은 이 죽음으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 노인의 가족이 탄 차는 강아지를 들이 받게 됩니다. 하지만 강아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손상된 범퍼만 걱정을 하며 싸우게 되죠. 요의를 느낀 노인의 부인은 숲으로 소변을 싸기 위해 산으로 오릅니다. 그리고 차에 치힌 강아지의 피로 뒤덥힌 몰골과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강아지와 노인의 부인은 잠시간 눈을 마주칩니다. 영화 속에서는 꽤 오랜 시간으로 느껴집니다. 노파를 집에서 떠나보내려 모진 말을 했던 것은 노인의 부인이었고, 결국 노파는 죽어버린 것이고, 차에 치인 개는 결국 노파의 은유적인 동물로 생각됩니다. 부인은 강아지의 눈을 통해서 죽어버린 노파를 보게 되는 것이고,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이겠지요.

4.

집으로 돌아온 가족에게 찾아오는 것은 이제 일상이라는 권태입니다. 노인은 오늘도 경비원으로 출근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공원에서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목을 매다는 끈을 발견합니다. 한 참을 바라보던 노인은 스스로 목을 매답니다. 하지만 죽지는 못한채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이제 노인에게 남은 삶을 얼마나 있을까요. 시간은 매일 반복됩니다. 노인은 매일 아파트에 출근해서 경비를 섭니다. 천천히 권태와 함께 죽음은 그를 찾아올 것 입니다. 그의 자살 시도는 어쩌면 그런 권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경비실로 돌아온 남자는 한통의 전화를 받고, 참담한 표정을 짓습니다. 영화는 아무 말 없이 여기서 끝을 맞이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노파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이었겠죠.

5.

영화 속에서는 중요한 순간들 마다 낮고 어두운 음악이 깔립니다. 감정적으로 이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음악 선택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어느 것에도 개입하지 않으려는 듯 길고 느리게 화면을 보여주며 관객이 응시할 시간을 충분히 줍니다. 우리가 응시하게 되는 것은 우리 삶의 기나긴 권태와 죽음입니다. 이 영화에는 총 네 번의 죽음이 등장하죠. 죽음이란 인간이 태어난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목적지이기도 하죠.

6.

창작자에게는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항상 관객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지요. 이 장면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과연 이 영화가 의미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저 또한 많은 눈치를 보곤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창작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만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창작자로서 정말 용감했다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영화가 그래야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럴 수도 없는게 현실이죠.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늘 초록밤을 통해서 뚝심 있는 시네아티스트를 만났습니다. 앞으로 나올 그의 다음 영화에도 응원을 보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단 생각이 드네요. 초록밤은 진지하게 삶과 죽음을 응시하는 의미 있는 영화였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자사는 사람들(홍성은) - 리뷰 &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