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타 들어가면서도 끝내 지면의 평화를 수호하는 태도
식탁 한복판, 검게 그을린 자국이 흉하게 남은 냄비 받침 하나가 무거운 침묵 속에 자리를 지킨다.
화려한 식탁보가 깔린 자리이든 투박한 나무 탁자 위이든, 이 사물의 소명은 언제나 엄중하다.
펄펄 끓는 냄비가 뱉어내는 치명적인 열기가 정갈한 지면을 태우지 못하도록,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그 서슬 퍼런 온도 사이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일이다.
음식이 뜨겁게 식탁의 주인공으로 군림하며 사람들을 홀릴 때, 받침은 그 화려한 조명 아래서 말없이 타 들어가며 지반의 안녕을 홀로 수호한다.
바닥을 향해 쏟아지는 수백 도의 고열은 받침의 표면을 가차 없이 유린한다.
나무로 된 받침은 자신의 결이 타는 매캐한 냄새를 속으로 삼키며 검게 변해가고,
천으로 된 것은 섬유가 오그라드는 비명을 지르며 본래의 형체를 잃어간다.
하지만 받침이 그 살벌한 온도를 제 가녀린 몸뚱이로 받아내 주는 동안, 식탁은 단 하나의 화상 자국도 없이 매끄러운 평화를 유지한다.
타인의 뜨거움을 자신의 소멸로 치환하여 공간의 품위를 지켜내는 일.
그것은 지극한 인내가 빚어낸 가장 낮은 곳의 형상이다.
받침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격정을 대신 감당하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의 풍요에 마음을 뺏겨, 냄비가 놓였던 자리에 짙게 남은 탄 흔적은 너무도 쉽게 지나친다.
그러나 그 검은 얼룩이야말로 뜨거운 세상을 견뎌낸 존재가 제 몸에 새긴 가장 정직한 문장이다.
진정한 헌신은 자신의 열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숯으로 만듦으로써 상대가 딛고 선 세계가 녹아내리지 않도록 버티는 데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격정과 갈등, 감당하기 힘든 삶의 열기를 마주한다.
그 뜨거운 기운이 우리의 일상을 한 줌의 재로 만들지 않도록,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의 밑바닥에서 그 고열을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나의 일상이 뒤틀리지 않고 온전하게 유지되는 이유는, 나의 분노와 조급한 욕망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내며 스스로 타 들어가기를 자처한 조력자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숯이 되는 고통을 견디며 상대의 자리를 평탄하게 지탱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관계의 본질을 지탱하는 가장 묵직하고도 슬픈 힘이다.
세월이 흘러 타버린 면적이 넓어지고 가운데가 움푹 파인 받침은 더 이상 수평을 유지하지 못한다.
소모된 존재는 결국 새로운 도구에게 자리를 내주고 서랍 밖으로 밀려나겠지만,
그가 온몸을 던져 지켜낸 식탁에는 여전히 처음 그대로의 정막한 평온이 흐른다.
주방 한구석에 놓인 낡은 받침을 가만히 어루만져 본다.
거칠게 일어난 탄 자국마다 내가 차마 헤아리지 못했던 누군가의 희생과 정성이 나이테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나 역시 소중한 이의 평화가 세상의 거친 열기에 녹아내리지 않도록, 기꺼이 그 아래에 깔려 함께 타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당연하게 누리는 평온한 일상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제 몸을 불사르며 우리 눈앞의 뜨거운 위협을 막아낸 대가임을 낡은 받침이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