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을 때, 이상하게도 받기 싫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날따라 벨소리가 평소보다 길게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작은 불편함이 스쳤지만, 결국 저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밥은 먹었어?”
“별일 없지?”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린 안부였습니다. 저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응.” “괜찮아.” 그 말들 안에는 하루의 피로와 사소한 서운함이 섞여 있었지만, 굳이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저는 조금 더 솔직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유난히 힘들었다고, 그래도 네 목소리를 들으니 괜찮다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통화는 길지 않았습니다. 서로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음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할 말은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다음 주에 보기로 했던 약속, 나중에 하기로 했던 이야기, 괜히 아껴두었던 말들까지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다음에 보자.” “곧 연락할게.” 우리는 늘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은 늘 당연하게 지켜졌습니다. 적어도 그날까지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저는 평소처럼 하루를 보냈습니다. 밀린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만나고, 저녁을 먹고, 밤이 되면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 짧은 통화는 제 안에서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몇 분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왜 조금 더 듣지 않았을까. 왜 그날따라 급하게 끊었을까. 왜 “다음에”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믿었을까. 사람은 이상하게도 끝난 뒤에야 디테일을 기억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숨 고르는 소리, 말끝이 미묘하게 느려졌던 순간, 배경에서 흐르던 작은 소음까지도 뒤늦게 또렷해집니다. 그때는 배경이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중심이 됩니다. 그날의 목소리는 유난히 선명했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아팠습니다.
마지막 통화라는 것은 통화 중에는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말했을 것이고, 괜히 침묵을 피하지 않았을 것이며, 어색하다는 이유로 중요한 말을 미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시간이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관계도, 기회도, 인사도 언제든 다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전화를 끊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끊을게.”라는 말 뒤에 한 문장을 더 얹습니다. “잘 자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 말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닿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혹시 모를 마지막을 조금은 덜 후회하고 싶어서입니다. 후회는 막연하지 않습니다. 그날 무심하게 넘긴 질문과 대충 흘려버린 대답, “나중에 하자”는 한 문장이 구체적인 장면으로 남습니다. 우리는 거창한 사건보다 사소한 태도를 더 오래 곱씹습니다.
가끔 통화 기록을 들여다봅니다. 날짜와 시간, 통화 시간 몇 분 몇 초라는 숫자만 남아 있습니다. 그 안에는 분명 온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차가운 기록일 뿐입니다. 3분 남짓한 시간이 이렇게 무겁게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짧았기 때문에 더 아쉽고, 평범했기 때문에 더 선명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마지막 통화를 끝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소처럼, 가볍게.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더 소중합니다.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 믿는 그 말이, 사실은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전화벨이 울리면 잠시 숨을 고르고 받습니다. 이 통화가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전화를 끊은 뒤에도 곧바로 내려놓지 않고 잠시 손에 쥐고 있습니다. 손끝에 남은 미묘한 온기가 완전히 식기 전에, 그 시간을 조금 더 붙잡아 두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울리는 이 전화는, 아직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