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에게 애착이 가던 이유

지금도 고흐는 삶은 그럴 수 있다고 우울한 진실을 말해준다.

by 즐거운 사라


예전부터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좋아했다. 서양 미술에서 위대한 화가로 꼽히기 때문일까?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 순위에 들기 때문일까? 거친 화풍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끌렸을까? 고흐의 가난하고, 고집 세고, 처절하게 비참했던 삶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고흐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화랑에서 해고당하고, 신학을 배우다 그만두고, 선교 활동도 해고당하고, 미술 학교도 퇴학당했다. 그는 끈질긴 마무리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늘 종교 활동과 그림에 삶을 다했다.


고흐가 위대한 이유는 생전에 그림으로 인정받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창작 활동을 하면서 인정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깨달음을 준다면, 인정받고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은 창작의 동기부여가 된다. 그런데 고흐는 생전 제대로 그림을 판 적도 없고, 작가로서 성공이라고 할 만한 사건을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살하기 전 10년 동안 900여 점의 그림들과 1,100여 점의 습작을 만들었다.


고흐는 목사의 아들이며, 기숙학교를 다닌 경험도 있다. 그는 종교와 예술을 아울러 상당한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외롭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는 정신병을 앓다가 까마귀를 쫓겠다며 빌린 총으로 자살했다.




어느 날, 고흐의 몇 가지 그림을 보던 중 고흐가 특이한 창작력으로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환각의 경험 속에서 그림을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압생트 중독과 여러 정신질환을 앓았을 거라는 추측이 있다. 그동안 마음이 아픈 화가라고 생각했지만, 작품과 연결 지어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흐의 아름다운 그림은 중독과 환각의 산물일 지도 모른다. 고흐가 집착한 노란색에 대하여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할 길은 없지만, 환각을 경험할 때 눈앞의 사물이 마치 고흐의 그림 같이 보일 때가 있다. 격렬한 색채와 많은 회오리 모두 제정신일 때는 볼 수 없다. 아마 고흐는 자기가 본 그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고흐의 시각을 그대로 재현한 그림이 아닐까?


나는 판타지 소설을 선호하거나 즐기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을 펼치는 내용은 막연하고 어렵다. 나는 내가 겪은 것 이상으로 알지 못한다. 경험한 것, 깨달은 것, 배운 것만 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 그저 내가 걷는 길 속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눈으로 어떠한 발견을 할 뿐이다.


고흐는 창의적이거나 아름답게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 자가 아닐 수도 있다. 자기가 본 그대로 그림을 그린 작가다. 사실 작가의 작품은 자기 안에서 나오거나, 주변의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 본 대로, 느낀 그대로 표현하는 것. 아마 고흐도 그러지 않았을까?


고흐의 삶은 예술가의 전형적인 표본이 아닐까? 지적이고, 적극 사회적이지 못하고, 집착하고, 고집부리고, 아프고, 한없이 자기 자신에게 패배를 반복하는 삶은 시리도록 공감된다.


2008년, 고흐 전시회에서(폰사진이라 화질이 나쁩니다.)


고흐는 동생 태오와 굉장히 친밀한 관계였다. 태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기도 하고, 편지도 많이 썼다. 고흐는 그림과 습작, 편지로 많은 것을 표현했다. 지식을 혼자서만 담고 있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흐는 태오에게 보내는 편지도, 10년 동안의 작품 활동도 필사적이었다. 내면에 가득 차지 않으면 필사적으로 내보낼 수도 없다. 고흐는 지식을 가득 채우고 그대로 그림으로, 글로 표현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애착이 가던 이유는

고흐의 삶은 자신이 보는 세상에게,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는 자신에게 집착했다. 고흐는 외로움과 고집 속에서 사람에게, 혹은 다른 무언가 집착하는 게 끝이 아니었다.


지금도 고흐는 내가 글 쓰는 게 비틀어질 때마다 삶은 그럴 수 있다고, 우울한 진실을 말해준다. 인정받지 않아도 내 안에 가득 찬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찬사받을 아름다움이 아니어도, 너저분하고 엉망진창인 모습이어도 있는 그대로이면 된다고 말한다.


빼어난 글의 기교도 부족하고 어린 살에 미흡하다. 나약한 중독자에 잃는 것이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는 겁쟁이다. 인문학을 떠나면 상식 이하의 무지한 사람이 된다.


그래도 아직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대한민국에서 성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나오는 세상에서 역사를 내세울 것이고, 상대적인 승리자가 없는 사회에서 주인공이 아니라면 관찰자로서 글을 쓸 것이다.


브런치의 시작을 고흐와 함께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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