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기위해 바뀌었다.

MBTI 성격유형검사로 내 이야기 하기

by 즐거운 사라

MBTI 성격유형 검사에 의하면 어릴 적에 ENFP유형이 나왔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정반대인 ISTJ유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 간단한 MBTI 설명

에너지 방향

E: 외향 에너지 - 타인이나, 외부 경험으로 에너지를 얻음, 표현, 쉽게 알려짐

I: 내향 에너지 - 내면의 생각과 반성으로 에너지를 얻음, 혼자, 생각하기 좋아함

인식 기능

S: 감각 - 구체적, 현실적, 상식적, 사실

N: 직관 - 육감, 영감, 비약적 사고, 에너지 폭발

판단 기능

T: 사고 - 머리로 결정, 진실, 정의, 공정함에 주 관심, 논리적인 것을 가치 있게 여기로 신뢰함

F: 감정 - 가슴으로 판단, 관계, 조화에 주 관심, 주관적, 공감

생활양식

J: 판단 - 계획이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구조, 통제

P: 인식 - 대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생산적으로 해냄, 일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길 좋아함, 개방성, 유연성




한국 사람들 대부분 내향적이고, 상식적이고, 논리적이고, 통제된 성격인 ISTJ다. 현재 나의 성격유형도 그렇다. 하지만 과거에는 정반대로 외향적이고, 영감 있고, 공감하고, 개방적인 ENFP였다.


MBTI 검사를 정말 많이 해봤는데, 최근에는 극단적이었던 판단(J형)이 다소 유연해졌다. 검사를 통하여 얼마나 한 성향에 치우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생활할 때는 ISTJ이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무언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ENFP에 가깝다. 아마도 정서적이고 유연한 성격을 드러냈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경험했고, 논리적이고 통제돼 보이는 모습을 보였을 때 더 긍정적인 반응을 경험해서 이렇게 변한 것 같다.


성격유형검사 결과를 분석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욕구를 억제하고 사는지 깨닫는다.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쉽게 상처받아 방어하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사람을 믿고 좋아하면 언제나 관계의 을이 되었고,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는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라 무책임하고 비약적인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 콤플렉스가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외향적이고, 직관적이고, 감정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부정적이면서 그런 모습이 콤플렉스가 됐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에게 묵직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성격을 바꾼 것은 십 대 초반으로 짐작한다. 나는 원래 멍청한 편은 아니었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하거나 똘똘한 스타일이라 인정받는 편이었다. 그런데 꿈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분야를 뚫어야 했던 거 같다. 똑똑해 보이고 싶었다. 학문에 깊은 관심이 없던 게 단점이지만 궁금한 게 생기면 밤을 새우더라도 알아가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가볍고 얇은 지식밖에 없다.


십 대 시절 대부분은 성격을 바꾸는 과도기였다. 꿈을 지향하다가 막연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현실적인 계획을 꾸미고 그게 내 꿈이라고 떠들었다. 그때의 계획을 나는 거의 이루지 않았다. 내 본연의 성향을 무시한 채 노력하며 만든 성향에 맞는 계획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꿈을 말하면 막연한 사람이 되어서 꿈이 많이 다쳤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똑똑하게 굴었다. 더는 순수한 마음을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꿈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되었고, 허세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점점 사실조차 말하지 않게 되었다. 조용한 사람이 됐다.


드라마 '닥터 하우스'의 한 장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사람들 눈에 띄었고, 중심이 되는 일도 많았다. 어른스럽고, 똘똘했다. 주목받는 만큼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주목받는 나를 모두 좋아하지는 않았다. 외모, 목소리, 성격 모두 튀었던 나는 이단아 같았다. 사교적이지만 어떤 무리에도 깊이 섞일 수 없었다. 순종적인 구성원이 되지 못해서 리더 역할만 했던 거 같다. 모두와 잘 지내지만, 정신적으로 겉돌았다. 영감적인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사교적이고, 책임감 있는 성격 덕분에 간신히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거의 모든 친구가 나를 어려워했다. 그것은 이질감이었다.


아직도 폐부에서 끓어오르는 외로움과 도태됨이 남아있다.


내가 잘 섞이고, 잘 따르는 사람이 되길 모두 원하는 것 같았고 가능한 만큼 그런 성격을 만들었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섞이지 못했다. 방향을 틀어 똑똑해 보이기로 마음먹었다(물론 똑똑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매일 책을 들고 다녔다. 대화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사전이라도 찾아봤다. 다행히 언변도 타고났다. 충분히 똑똑한 척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단아였다. 수업할 때, 나는 교사가 무슨 단어를 말할지 어떤 문장을 말할지 먼저 말했다. 교사들은 내 말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사가 틀리면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지적하고 교정하거나 반대 의견이라도 냈다. 그런 행동은 결코 호의를 얻을 수 없었다.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버릇없고, 사나워 보였다. 예상치 못하게 반사회적인 사람이 되었다.


우울했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존재하는 것 중에 가치 없는 것이 어디 있으랴. 우리의 성격도 그렇다. 어떤 성격도 장점이 있다. 내 성격이 단점이라서 고치지 않았다. 좋은 성격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변했다.


카운셀러를 찾아가도, 그리스도를 찾아가도 나는 괴로웠다. 어떤 성향으로 지내더라도 혼란스러웠다. 성격유형의 문제가 아니었다. 순수한 가슴에 축적된 외로움이 문제였다. 덜 자극받기 위해서 다른 성격으로 굳은살을 만들었을 뿐이다.


살기 위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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