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콤플렉스

어린 대장은 정의롭고 사려 깊어야 했다.

by 즐거운 사라


할머니는 자주 이런 말을 하셨다.

궁핍한 순간이 와도 외상은 절대 하지마라.”

살기 힘들어도 빚은 지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힘들다고 외상을 하면 업자 또한 힘들게 하는 거라고 하셨다.


어느 날, 파라솔 벤치에서 간식을 먹자고 권하자 할머니는 노상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용인하지 않으셨다.

배고픈 사람이 지나가다 맛있게 먹는 우리를 보면 불편할 테니 밖에서 먹지 마라.”




자영업을 하시던 부모님 가게에서 소위 말하는 ‘어음’의 형태를 목격하거나, 일수 대출을 갚는 형태 또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외상을 하지 말라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이 느껴졌다.


그 시절에는 분식점에서 사 온 컵 떡볶이를 손에 쥐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흔했고, 익힌 옥수수나 고구마 따위를 비닐에 담아 간식으로 들고 다니는 어른들의 모습도 흔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니 불공평하게 느꼈었다.


어린 시절 대부분 집안 어른들께 삼키기 어려운 말을 들으며, 그 말을 지키는 행동을 보며 지냈다. 그 당시는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태반이었다.



나는 항상 해지기 전에 집에 귀가했다. 친구네 집에서 놀다 늦어진다는 연락을 넣어도 부모님은 거의 받아주지 않았다. 친구네 자주 놀러 가는 것도 그리 탐탁해 하시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 위험하기 때문도 있었지만, 친구 가족들의 시간을 방해하는 거라고 하셨다. 차라리 친구를 집에 데려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항상 친구에게 부모님이 글쓴이네 집에 있는 걸 아시느냐고, 전화 넣으라고 당부하셨다. 그 당시에는 부모님이 나의 치안을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폐를 끼쳐 미움을 받을까 봐 걱정하셨다.


(드라마 '닥터 하우스' 장면 중에서)


아빠는 막내인 나를 대장이라고 부르셨다. 대장으로서 덕목을 자주 읊어주셨다. 다툼이 나면 먼저 사과해야 하고, 반성할 줄 모르면 대장이 아니라고 했다. 잘못을 알면 적극적으로 상대방이 용서할 때까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주장이 강하고 당찬 내 모습이 염려되셨는지 허튼 자존심은 내세우지 말라고 자주 충고하셨다. 말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은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었다.


아빠는 옛날 사고방식에다 아주 엄했다. 혼자 있을 때도 누군가 지켜본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질리도록 말씀하셨다. 아빠가 지나쳤거나 내가 민감해서 인지, 질리는 그 말 때문에 어린 시절 대부분 혼자 있어도 감시당한다는 불안감 속에 지냈다. 또한, 쓰레기를 함부로 밖에 버리거나 정해진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처벌받았다. 잘못하면 무조건 벌쓰거나, 잘못의 강도만큼 매를 맞아야 했다.


아빠의 사고방식은 엄한 이면에 정서적이었다. 쓰레기를 버리면 지구가 아팠고, 꽃을 꺾으면 벌이 먹이를 잃었다. 사과를 안 하면 상대의 상처가 낫지 않고, 사람보다 약한 개를 외면하면 개는 비참하게 살다 죽어야 했다. 항상 훈계의 내용은 그런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나를 위하고, 나를 보살피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언제나 나 외의 대상을 생각해야 했다. 그래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배웠다. 결국, 좋은 사람이 돼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훌륭함의 기준 자체도 어려웠고, 훌륭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콤플렉스가 생겼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도둑질을 한 적이 있다. 값진 물건이나, 갖고 싶었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었다. 다들 주머니에 돈도 있었고 사실 없어도 그만인 물건만 훔쳤던 거 같다. 우리는 배고파하는 세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는 유행이나 관행 같은 행동이었다. 그때도 애들 앞에서 대범한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해서 한두 번 모험을 한 후에는 더는 마음이 불편해서 대범한 척하지 않았다. 훔치지 않거나, 자리를 피해버렸다. 온갖 센 척은 다 했지만 나는 친구들이 도둑질이 완전히 고쳐지기 전까지 아주 많이 떨었고, 눌려 지냈다. 아무튼, 나는 도둑질보다 남에게 폐를 끼친 사건은 아마 없다.



(드라마 '닥터 하우스' 장면 중에서)


아빠는 어린 나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약한 사람은 대장일 수 없었다. 곧, 부정한, 잘못한, 이기적인 사람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대장은 정의롭고 사려 깊어야 했다. 어쩌면 대장이라는 이름에 쓸데없는 무게와 의미를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대장이 되고 싶었다.


인제 와서 양심 없이 살고 싶은 건 아니다. 사람은 실수하고, 잘못하고, 죄짓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매일 느끼는 가치 없는 죄책감을 내려놓고, 더러운 기분에서 해방되고 싶다. 이 정도는 나쁜 게 아니라는 걸, 괜찮다는 걸 내 마음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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