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ist&writer 교집합 속에서3]
이제는 지방지 기자 신분이 아니고 다시 기자 일을 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절대 안 돼”는 아니다. 손을 뗄 수 있을 만큼만 경험해봤다고 생각한다.
원래 기자를 꿈꾸거나, 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우연으로 시작하게 된 일이었다. 그때 생각지 못하고 감도 잡히지 않는 일을 앞두고 “우선 6개월만 해보자”고 스스로 부담을 놓았다.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일이니 장기적인 목표를 잡을 수 없었다.
6개월이 다가올수록 욕심이 생겼다. 외롭게 바닥 치다가 금세 성장하는 게 느껴졌고, 주위 반응도 따라왔다. 영입제의도 왔었다. 그러니까 더 자신감이 생겼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더 배우고 싶었다.
흔히 출입처에서 신입 기자들을 보면 신문방송학, 정치외교학, 언어 관련학과 출신 등 기자가 되기 전부터 관련 지식을 채우거나 준비해왔다. 또한, 언론인에 대한 꿈이나 목표가 있었다.
소위 메이저사 기자들은 선배 밑에서 훈련받으며 일을 한다. 선배가 하란 대로 움직이고, 모든 것을 그때그때 보고하며 직속 선배의 손바닥 위에서 일하는 것이다. 선배가 하라면 하염없이 출입처에서 뻗치기를 하거나, 갑작스러운 연락으로 신출귀몰하게 움직여야 한다. 정확히 “인턴”과 같았다. 인턴 어원의 뜻은 ‘벽 속에 갇힌 자’로 경력이 인정되는 않는 신입은 모두 벽 속에 갇혀 일하는 거로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기자가 되려면 “사스마와리”는 필수과정이다. 사스마와리란, 경찰+돈다(경찰 출입 기자)는 뜻의 일본어로, 사건·사고 기사 거리가 많은 경찰 쪽을 도는 기자를 말한다. 신입은 경찰부터 시작해 하나씩 출입처가 늘어나고, 시간이 흐르면 출입처가 고정된다.
사실 사스마와리(일본어인 거부터 부정적으로 느껴진다)는 너무 잘못된 관행이다. 인간의 기본권을 철저히 배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침이 밝는 새벽부터 어두운 새벽까지 경찰을 돌면서 억지로라도 사건·사고 기사를 짜내야 하는데, 기자의 의식주가 흔들리는 비인권적인 시스템이다.
나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특이하게 마와리는 오후에 했다). 언론, 기사작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었다. 거기다 마이너 회사였으며 따라다니며 배울 선배도 없었다. 여러모로 조건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기회를 쫓아 다른 회사 선배들을 따라다녔다. 일부러 조언을 구하고, 취재현장에 동행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나름대로 배우는 기회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비인권적인 훈련이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대신 배우려면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나도 비슷한 시기에 기자를 시작한 이들처럼 기사를 써내야 했고, 현장취재를 다녀야 했다. 본사 소속이었지만, 훈련 프로그램도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부족한 게 많았다(나 자신도 부족했다). 그래서 더욱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생겼다. 어느 순간 메이저사 기자들을 신경 쓰고 있던 것이다.
‘그들이 하는 것이라면 나도 한다’는 마인드는 허용이 안 됐다. 내가 먼저 취재현장에 나가야 하고,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알아야 했다. 그들 앞에서 메이저·마이너 따위 생각지 못하게 일해야 한다고 의식했다.
성급한 열정이었다. 나는 이미 6개월이라는 한도를 정했었다. 열정이 생길수록 지쳐갔다. 어쩌면 낮은 목표를 가지고 더 큰 일을 한 게다. 열정으로 추가 목표를 잡으려 할수록 무너져갔다.
기자로서 목적이 있는가?……. 없었다.”
목적 없이 ‘열정 목표’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 없이 사막을 걷는 것과 같았다. 물이 고갈 나기 전에, 혹은 물이 고갈 나면 길을 돌아 도시로 가야 하는데 오아시스를 찾겠다고 막연히 걷는 거다.
결국, 커져 버린 오해와 갈등으로 그리고 고갈돼 병든 몸으로 그만해야 했다.
그리고 그만두는 그때, 기자로 돌아가지 못하게 확실히 발을 묶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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