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은 삶의 한 부분이다.

회자정리. 넋두리.

by 즐거운 사라

우리는 태어나면 언젠가 돌아간다. 그리고 만나면 헤어진다. 죽음이든, 상황이든 어쨌든 헤어진다. 상실의 고통은 죽음의 고통처럼 숨이 막히고 극단적이다. 우리는 태어나면 죽는 존재임을 증명하듯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만남을 반복한다.


사망자에게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난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이별 또한 그렇다. 연인과 헤어지면서 움직였던 내 자리로 돌아간다.


연인과 이별하고, 친구와 절교하고,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이 죽는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이별을 겪는다. 어쩌면 이별은 본디 나로 돌아가야 하는 적기다. 온전히 홀로 남은 채로 상실감을 느낀다.


우리는 원래 ‘온전한 나’로 태어나는데, 대개 태어난 뒤 가족 및 어떤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 된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형제로, 친구로, 동료로 공동체는 확장된다. 그러다가 누군가와 이별하면 빈자리가 생긴다. 내 자리에서 애써 확장해 앉혀놓은 존재가 사라지면 서늘함이라는 고통이 온다.


또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자로 존재하기에 이별에 대한 기억이 온갖 번민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시린 자리의 고통,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 그리고 이제 손을 뻗어 만질 수 없는 그리움.



실연은 고통이다.”


그런데 더는 감당하기 싫은 이별을 망각하고 또 만남을 시작한다. 사랑받고, 존중받고 상실 없는 지속을 원한다. 꾸준히 삶의 이치를 깨는 시도를 한다. 대체 왜 이별의 고통을 알면서도 또 만나는가.


누군가는 사람의 빈자리는 사람으로 채워야 한단다. 누군가는 우리가 망각의 존재이기에 달콤한 순간에 빠져버린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별이 있기에 만남이 가치 있다고 말한다.


마치 맛을 알았으니 또 그 맛을 느끼러 먹는 것 같다. 매워서 온갖 음료를 들이켰던 순간이 고통이었지만 쾌락으로 다가온 듯 또 그 매운맛을 찾는다.


그런데 어떤 만남이든 결국 헤어지기에, 좋은 것은 한때고 상실은 영원하다. 나는 내가 잃은 것을 잊을 수 없다. 부분적으로 지우기도 힘들다. 영리한 존재라서 기억에 시달리고, 감성의 존재기에 내가 만들어낸 감정으로 괴로워한다. 후회한다고 시간이 되돌릴 수 없고,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해서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연인을 만나도 지난 연인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죽은 이의 뼛가루를 항아리에 담아도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세상 이치로 물 흐르듯 흘러간 것인데 나에겐 상실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짙었던 감정은 흐려진다. 전처럼 울지 않는다. 웃으며 넘길 수도 있다. 그래도 매일 상실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죽어도 상실감은 이어진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돌아간다. 그게 삶의 순환이다. 이치다. 진리다.


사랑받고, 존중받고 이별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사랑하고, 존중하고 곁에 있고 싶어.”


우리의 가여운 욕망은 이치를 거스른다.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순환에 역행하면서 고통스러워한다. 그래도 쉼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원(圓) 속에 거꾸로 걷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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