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후반인 나에게 보내는 편지

(사진: 16살 당시 모습.)

by 즐거운 사라
15살 경포대에서.jpg 15살, 경포대에서.


그쯤, 이십대 후반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30대가 되면 어떤 자리에 있을지 막연했었던 내가 떠오른다.


내가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보며 꿈꾸던 ‘섹스 칼럼니스트’가 되어 있단다. 그 꿈은 일찌감치 이뤘고, 더욱 확고히 되고 지경을 넓히고 있단다. 정말 좋은 소식이지?


그리고 내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기자라는 직업을 하게 됐어. 글을 쓸 생각만 막연하게 해왔던 네가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직업을 갖게 됐단다. 물론, 내 꿈이 아니라서 의아할 것도 같아. 왜 기자를 하게 됐는지도 궁금할 거 같네. 우연히 하게 됐단다. 그저 우연히. 칼럼을 쓰면서 밥 빌어먹기는 힘들었거든. 그런데 알바만 전전하면서 직업이 없던 시기에 우연히 기자라는 세계에 발을 딛을 수 있게 되었어.


그래도 내 바람대로 글을 쓰고 있으니 정말 잘됐지? 그런데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는 더 하지 못하고 있어서 미안하다. 성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 심리학 등을 마스터하고 싶어 했잖아. 공부는 중도에 하차하게 됐어. 그러나 배움에 대한 갈망은 아직도 있단다. 나는 전공을 바꿔 문예창작을 공부하려고 목표를 잡았어. 그럼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니?


지금 남자친구는 없어.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남자는 항상 있단다. 그저 연애와 결혼에 대해 지금은 자신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거지. 뜨겁게 연애했고, 결혼도 꿈꿨었단다. 내 인생에 기억남을 남자들도 만들고 말이야. 후회 없이, 많이 연애했단다.


행복하지는 않아. 그러나 때때로 행복하단다. 불행한 상황일 지도 몰라. 그러나 언제나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단다. 내 삶은 초반에는 피지 못하고 녹록찮게 살아가고 있어. 십대 시절처럼 지금도 그리 빛을 바라지 못하고 있단다. 우울한 현실과 상처받는 일이 나를 찾아오곤 했어. 그러나 인생이 그렇다는 거, 나는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말이야. 나의 높은 자존감은 많이 떨어졌어. 성년이 되면 현실이라는 게 너무 무거워서 자존감을 짓누르는 거 같아. 그래서 삶의 만족도가 떨어질지 몰라. 그러나 난 내가 꿈꾸던 일을 하고 있고, 확실하게 하고 있다는 걸 명심해. 자랑스러운 일이란다.


친구들은 절반 정도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갖은 친구들도 있단다. 친구들은 나름대로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어.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어색하지 않은 사이란다.


아참, 나는 이십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살이 많이 쪘어. 상상도 못할 만큼 말이야. 그리도 적응하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단다. 그래도 나는 아름다우니까 말이야.


항상 장시간 버스를 타면서 사색에 잠기던 내가 떠오른다. 이제는 운전을 하고 다닌단다. 물론 내가 워낙 물욕이 없고, 현실적이어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지는 않아. 나는 항상 내가 물욕이 없어서 남들이 하는 것들을 안 하고 살 거라고 생각했잖아. 비단, 운전이나 자취 같이 돈이 많이 드는 것이나 해외여행이나 비싼 취미 활동 같은 거 말이야. 거의 안하고 산단다. 물론, 가끔은 여행도 가고 나름대로 취미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말이야.


내 가치관은 그대로 이어졌어. 돈을 많이 벌지도 않고, 돈을 많이 벌려고 노력하지도 않아. 그래서 적게 쓰고 최소한의 생활을 한단다. 당연히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욕심은 없어. 그렇지만, 네가 좋아하는 피자는 자주 사먹을 정도가 된단다.


그런데 남을 돕고 살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아. 그 바람은 아직 못 이루고 있구나.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이룰 수 있을 거야.


나는 항상 어른스럽다고 자부했었지. 그러나 내 이십대 초반을 바라보면 그리 어른스럽지 않았어. 스무살이 되기 전부터 나는 술에 빠져 일 년 정도 망가진 채로 살았거든. 물론 술을 잠시 끊으면서 생활을 되찾기는 했단다. 지금은 그래서 술을 가까이 하지 않아. 가끔 마시는 정도란다.


내가 술에 빠져 살았다고 하니 의아하지 않니? 난 술을 잘 못 마셨잖아. 그런데 난 많은 실수를 하고 살았어.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일도, 많이 실수했단다.


생각보다 나는 늘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뒤떨어지거나, 못났을 때가 많았단다. 그러니 자만하지 않길 바라. 그러니까 모든 일에 자신하지 말라고. 나를 너무 믿지 마. 상황은 언제나 변해.


우리 가족은 잘 지내고 있어. 언니는 결혼도 했어. 놀랍지? 곧 조카도 생기고, 신기한 일이 벌어지겠지? 엄마와 새아버지도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아빠는 돌아가셨어. 나는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어. 많이 힘들지는 않아. 견디고 살만해. 그러니까 다시 돌아간다면 아빠에게 덜 소리 지르고, 더 많이 참아주고,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십대인 내가 이 편지를 받는다면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큰 상실감과 슬픔이 밀려와. 그러나 나는 잘 견딘단다. 내가 언제나 미리 준비했던 ‘회자정리’라는 단어 덕분일지도 몰라. 난 언제나 누군가를 잃을 거라고 두려워했잖아. 그리고 그걸 미리 대비하고 마음은 단단히 먹고, 집착하지 않기로 했잖아. 나는 이별에 적당히 슬퍼하고, 적당히 괴로워하면서 잘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어. 두려운 삶이 펼쳐지지는 않는단다.


혼자를 좋아하지만, 외로움을 많이 탔잖아. 지금도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단다. 외롭기도 하고, 심심할 때도 있지만 혼자가 좋은 건 여전해. 사람도 무척 좋아하지만, 만남이란 건 피로감이 크잖니.


나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가면서 느끼고 있어. 크게 행복하지도 너무 절망하지도 않는단다.


그래도 막연했던 성인의 시간은 그럭저럭 보내고 있어. 딱, 네가 막연하다고 느낄 정도로 미지근하게 살고 있단다. 삶은 갑자기 역전되지 않아. 그러나 네가 하는 걸 계속 하면 이루어질 수 있어.


- 그럼 이만. 어른의 길을 가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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