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퇴사일 기준 D-32 이다.
사장님과 향후 7년 품목 세일즈 Forecasting에 대한 리뷰를 하는 날이다. 어떤 분인 줄은 대충은 알기에 사장님 컨펌을 받고 제출해야 한다는 이 장기 세일즈 예측이 처음부터 하기 너무 싫었다. 곧 회사를 퇴직하는 사람이 왜 내가 책임지지도 못할 이 세일즈 예측을 해야 하며 발표까지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었다.백번 양보해서 나 대신 할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해야 한다면 왜 이걸 사장님 앞에서 발표까지 하게 시키는지 야속했다.
숫자가지고 사람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팀장이 이번에는 대충 대충 리뷰한다. 2번 함께 리뷰하고 들어갔다. 내 제품은 SKU가 7개가 있고 정제가 있고 시럽제재로 되어 있어서 예측하는 게 다른 제품보다 기본4배 이상의 수공이 든다. 몇 날 몇 일을 붙들고 앉아서 소설을 완성하고 드디어 사장님과의 리뷰 날.
첫 번째 장을 보자마자..
사장님 : “응? 이거밖에 없나요? 경쟁품은 없나요?"
린제이 : " 있습니다 뒷 장에 준비했습니다."
사장님 : 아.. 응? 누가 그럼 쉐어를 다 가져간거죠? 다 떨어지고 있네요? 여기 나와있지 않는 나머지 제품들이 엄청 큰 거네요.“
린제이 : " 네 맞습니다 탑 경쟁품 대비 나머지 제품들이 엄청 컸습니다."
사장님 : " 아 그렇군요. 전 나머지 제품들을 함께 넣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전 그것없이 전 이걸 리뷰하지 못하겠어요. 혹시 정제와시럽 시장을 따로 분류해서 볼 필요는 없나요? "
린제이 : " ....... "
사장님 : "그럼 이거 언제 리뷰 또하죠? 내일까지 글로벌 제출아닌가요? 기한을 늘려달라고 해야겠어요.”
나와 함께 들어간, 내가 리뷰해준 새로 입사한 팀원의 품목은 아주 가볍게 넘어간다.
"A님은 1번 2번만 수정하시고요, 그냥 제출하시죠!^^"
아..이 무슨.. 기분이 아주 더럽다. 이건 아주 애매하지만 고의적으로 일가지고 괴롭히는 전형적인 직장 내 괴롭힘 아닌가? 남편에게 카톡으로 이 상황을 얘기했다. 이것 땜에 어제밤 늦게까지 일한 걸 아는 사람이기에, 자기가 다 열받는다며 내가 밖으로 꺼내지 못한 욕들을 시원하게 갈겨준다. 간만에 남편이 좀 맘에 든다.
정제와 시럽 시장을 다시 나눠서 경쟁품 포케스트를 해서 기존에 했던 거랑 맞추기까지 하려면 시간이 20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래, 내가 더 잘했어야지...' 집에 가서 할까, 이걸 조금이라도 해놓고 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중, 고맙게도 근처 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벙개 연락이 와서 바로 수락하고 맥주 한잔을 했다. 친구도 최근에 겪은 열받은 스토리를 밥 먹는 내내 디테일하게 늘어놓는다. 나는 그 얘기가 20프로 밖에 안들린다. 마치 유체이탈한 것처럼 친구가 말하고 있는 모습은 보이나 음소거 된 것처럼 소리는 전혀 안들린다. 최근에 만난 우리 회사 다른 사업부에 다니는 공황장애온 것 같다는 선배가 "린제이야 아까 네가 이런 저런 말 했잖아. 사실 나 아무 말도 안들렸어. 쪽팔리지만 요즘 내가 이래." 했던 선배가 이해가 되면서, 이러다 퇴사 하기 전에 내가 진짜 공황장애 오는 거 아닐까 걱정도 된다. 29일만 욕먹으면 된다는 남편 말이 다시 귀에 맨돈다.
친구와 대충 헤어지고 집에 터덜터덜 들어가면서 애써 이 상황을 긍적적으로 해석해본다.
" 사장님이 나 많이 좋아했나보네. 내가 나간다고 하니 많이 속상하셨나봐. 나 회사 나가기 전까지 자주 보고 싶으신가보지. 그렇게 바쁘신 분이 내 작업물에 피드백을 주신다면 나는 감사하게 생각하자. 사장님의 피드백을 직접 무료로 받기가 쉬운가? 배울 수 있는 경험으로 삼자! "
이러지 않으면 내가 너무 힘드니깐. 이상하게 또 이렇게 생각하니 좀 괜찮다. 역시 긍정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