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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진 Sep 04. 2021

2021년 9월 4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날씨가 무척 화창하다.

계속 몹시 덥거나 습도가 높거나 비가 내리던 주말을 생각해보면 오늘의 날씨는 기쁨 아닐까?

여름 내내 갑작스럽고 슬프고 멍한 기분으로 보내, 어딘가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좋아하던 책도 못 읽었다.

그저 음악을 듣거나 끊임없이, 멍하니 sns를 들여다보거나 했을 뿐.

9월이 되고 이제 조금 새로운 기분으로, 언제까지 여름의 기억 속에서 지낼 수는 없지. 출퇴근길 가방에 다시 책을 넣어 다니기 시작했고, 다소 기쁜 일이 있어 올해 나 자신 수고했다는 마음으로 맑은 주말 정말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다.

쇼핑은 거의 하지 않고 옷이나 가방은 대부분 빈티지를 사기 때문에 백화점 의류 매장에 들어간 건 정말 20년도 더 된 것 같다.

정말 잘 신을 것 같아 눈여겨봐 두었던 부츠를 하나 고르고 (신어보니 그냥 내 거라 안 살 수가 없었다)

항상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다녀 테두리가 다 닳은 카드지갑을 대신할 새 카드지갑도 하나 골랐다.

평소 동물병원 아니면 결제할 일이 없는 금액이지만, 내가 얼마나 오래 아끼며 잘 사용할지 나 자신이 몹시도 잘 알기 때문에 이 정도는 지불할

가치가 있다.

약간의 수선이 필요해, 수선증 때문에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기재하는데 오늘 내 시착을 도와주고 설명을 해준 스텝분이 깜짝 놀라며 나와 이름이 같다고 한다.

요즘은 꽤 많이 생겼지만,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내 이름이 흔치는 않아 이름이 같은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성도 아주 비슷해 반갑고 놀라웠다.

내 성이 그리 흔치는 않아 자주 사람들이 혼동하던 바로 그 성을 가지셨기에.

나는 오늘 부츠와 카드지갑과 그걸 결제한 금액으로 이런 따뜻한 이야기도 가지게 되었다.

오래, 아마도 아주 오래, 아주 낡을 때까지 나는 그것들을 아끼며 사용할 테고

그리고 그때마다 나와 이름이 같았던 매장의 스텝을 떠올릴 것이다.

신기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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